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1. 23. 10:36

여행이 끝나갈 무렵 다시 찾은 뉴델리. 역전의 빠하르간지 메인바자르를 따라 걷다보면 여행자들에게 꽤 유명한 라씨(요구르트 음료) 가게가 보입니다. 처음 그곳을 지날 땐 그런게 눈에 잘 띄지도 않았을뿐더러 발견했다 해도 들어가질 못했었는데, 이제 라씨가게에 찾아들게 될 만큼 이곳에 익숙해진 거죠. 그런데 그럴 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라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라씨 한 잔을 주문하려는데 왠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는 자기도 한 잔 사달라고 합니다. 여행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게으른 인도 사람 중 하나였을 그의 이름은 "언감생심" 이었죠. 내가 왜 너에게 사줘야 하느냐고 웃으며 놀려주곤 보냈습니다. 그렇게 라씨 한 잔을 받아들고 라씨 가게를 등지고 서서 메인바자르 거리를 바라보며 라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앞을 지나가던 오토릭샤 한 대가 서더니 저에게 "미스터 리" 하고 소리치더군요. 빠하르간지 골목을 걷고 있자면 그렇게 저를 불러잡고 "웨어 아 유 고잉?" 하는 릭샤왈라(릭샤 운전사)들을 무척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은 릭샤왈라들에게 눈길도 안 주고 무시하기가 일수였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건 제 이름을 불러준 릭샤왈라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바라봤을 때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죠. 처음 델리에 도착했을 때 저를 태우고 다녔던 릭샤왈라 슈림버 였습니다. 그때와 옷도 똑같더군요. 나름 작업복이었을까요?

그는 사실 제가 델리에 도착하고 이틀째 되는 날 온종일 저를 태우고 다녔던 오토릭샤 운전사였죠. 제가 델리를 떠날 때 델리에 다시 들르게 되면 연락달라며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델리에 돌아왔을 때 낯선 사람보단 나을 꺼란 생각에 그에게 전화를 해볼까 했었죠. 하지만 아무데서나 잡히는 릭샤를 타기 위해서 굳이 전화를 걸어야 할까 하고 망설이던 중이었는데 그렇게 그를 다시 만난 겁니다. 결국 그런 우연한 만남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줬지요.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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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짜기 오토릭샤를 세우더니 담배를 사러 달려나간 슈림버.


슈림버 아저씨는 착하고 재밌는 사람입니다. 자꾸만 쇼핑을 시키려고 해서 귀찮았고, 그럴 때마다 시간 없으니 안된다고 할 때면 가끔 못들은 척하거나, 이해 못 한 것처럼 능청떠는 게 얄밉기도 했지만 잔머릴 굴리거나 하는 낌새를 느낄 수는 없었죠. 그래서 그의 오토릭샤를 타는 건 참 편했습니다. 그는 운전하면서도 심심찮게 영어 단어를 나열하는 식의 의사소통을 저에게 시도했는데, 제가 이해를 못했을까봐 시간이 좀 지나서도 같은 말을 다시 반복하곤 했고 전 그런 그를 재밌어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죠.

"폴리스 컴, 노 미털? 유, 미털, 미털"

그 말은 경찰이 와서("폴리스 컴") 미터기 안 쓰고 있냐고 묻거든("노 미털?"), 미터기로 가고 있다고("유, 미털, 미털") 대답해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한 세 번은 들은 것 같아요. (지방마다 다르지만 델리의 오토릭샤는 흥정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달려있는 미터기는 그냥 폼이었습니다. 그런데 슈림버는 아마도 단속이 두려웠나보죠. 그러나 한 번도 경찰이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가 필요한 모든 이야기를 저에게 했죠. 저역시 제가 아는 영어를 전부 동원해 그에게 제가 필요한 말들을 했지만 그가 알아듣기엔 너무나 불피요한 단어들이 많이 섞여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사실 유창하지도 못 한 제가 그에게 유창한 것처럼 영어를 말할 필요가 없는 건데 말이죠. 결국 그렇게 어렵게 영어를 쏟아내고 있는 제가 우스워지더군요. 아마도 의사소통이 목적이 아닌, 영어를 목적으로 공부해왔기 때문인가 싶어지기도......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