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8. 1. 28. 00:31

아버지와 성묘를 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아버지께서 운전을 시작하신 후부터 어린 나를 조수석에 태운 채 향했던 그 길이다. 길은 넓혀지고 닦이면서 조금씩 변하기도했지만 변한 건 길뿐만이 아니다. 그길을 밟았던 아버지의 차도 포니부터 세번이나 바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그 길을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서 내가 운전해 간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떠나곤하던 아버지의 고향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늘상 조수석에 앉았던 난 항상 졸거나 자면서 아버지의 차를 타고갔었다. 하지만 그래도 얼추 다 기억나는 길이다. 처음 출발하면서는 꼬마였다가 도착할 때 쯤 되면 현재의 나로 성장해 있는 느낌을 주는 그런 길이니까. 내가 어린 나를 기억하는 만큼 아는 길이다.

아버지와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길은 아버지께서 늘상 잠든 나에게 매년 똑 같이 "숙박비 받아야 겠다"시며 놀리시곤 했던 그 길이다. 매년 잠들었다 일어나면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에게 언젠가부터 나는 가식적인 웃음만으로 응답하곤 했었다. 그랬던 그 길에서 이제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 내가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버지께서 운전기사 있으니 편해서 좋다고 하시며, 당신의 어릴 적 말씀을 곁들여 고향에 다녀온 기분을 한껏 내셨다. 조금 더 일찍 면허를 딸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 없이 조용해지셨다.

아버지께서 주무신다, 내 옆에서...




앞으로 내달려가던 나는 아버지의 속도로, 천천히 속도를 줄인다.

나이드시면서 변하는 법을 잊어버리시고 점점 살아오신 고집만을 지키려하시는 아버지. 그분을 꺽지 못해, 나를 이해시키지 못해 갖었던 불만들이 어린시절부터 내가 앉았던 조수석에 함께 잠들어버린다. 그 모두를 아버지의 낮잠과 함께 잠재우고 이 순간만큼은, 잠든 나를 태우고 20여년을 묵묵히 당신의 어린 시절을 향해 운전해가셨던 그 길 위의 아버지가 되어본다. 아빠가 되어본다. 아빠... 아...

도착할 때쯤 아버지께서 깨시면 "숙박비 받아야겠어요." 할 생각이다. 아버지의 웃음이 기대된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