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8. 4. 4. 12:47

당신에 대한 좋은 기억 중 하나는 당신이 음식을 좋아하는 것 이상이란 걸 느꼈던 때였죠. 우리의 짧지 않은 인연을 당신의 음식으로만 정리해보면, 처음엔 당신의 음식이 맛있었고 그러다 음식을 공부한다고 유학을 떠났으며 다시 돌아왔을 때 당신은 음식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한 번도 말로 들었던 적은 없네요. 그냥 알 수 있을만큼 당신은 명확했거든요.

어제 친구들과 저희 동네의 닭집에 갔습니다. 다섯 명이 모여서 닭 네마리를 먹었는데 자리를 파할 무렵엔 후라이드치킨이 다 식어버린 채 좀 남았었죠. 그때 문득 당신을 떠올렸어요. 게다가 그자리에 있던 사람 중 하나는 당신의 이름을 안다고 했기에 더 그랬나봅니다. 그래서 저는 남은 닭을 포장해달라고 했던 겁니다.

그날도 아마 이렇게 친구들과 모여서 잠실의 페밀리레스토랑에 갔던 걸로 기억해요. 한참을 왁자지껄 떠들었지만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었죠. 그러고보면 당신을 만났던 때마다 제가 모르는 당신 주변 사람들 틈에 끼어있곤 했기 때문에 전 당신한테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아마 그래서 더 잘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날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 남은 음식들을 싸달라고 했었어요.

저에겐 꽤 훌륭해보였던 음식들을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곤 했었죠. 그러다가 막상 그렇게 자리에 일어설 땐 남은 음식을 가지고 가겠다며 애착을 보이는 게 처음엔 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분명 "없어보이는 행동" 쯤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 묻지 않고도 당신이 그렇게 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어제 친구들 앞에서 당신을 떠올렸을 때 저는 소통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소통의 기억 같은 것들을요. 글을 쓰고 말을 해서 과연 얼마나 전달이 될까 하는 당신의 소통에 대한 의문도 함께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말 하지 않았던 당신과의 소통이 제게 있었음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커피를 마시러 갔습니다. 포장된 음식을 들고서요. 그곳에서 저는 실수로 음료를 여섯잔이나 주문해버렸죠. 계산을 다 마치고 여섯잔의 음료를 다섯 친구들에게 들고갔을 때서야 '아!' 하고 저는 알았습니다. 또다른 소통이라 쓰기에는 좀 쑥쓰럽긴 하지만, '그리움' 같은 것도 가능하잖을까요. 많이 라기보다 그냥 문득이라고 말하는 게 우리에겐 더 잘 어울릴 것 같긴 하지만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