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10. 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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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나오면서 천가방을 술집에 두고 나온 적이 있었다. 인도 여행중에 산 이후로 지금까지도 즐겨 들고다니는 천가방이었다.

"왕걸레 가져가셔야죠."

술집 문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던 나를 뒤쫓아나온 여자 종업원이 그렇게 불러세웠다. 그녀에게 내 가방은 '왕걸레'로 보였나보다. 물건을 잊고 나온 쑥쓰러움과 그녀의 '왕걸레' 소리에 웃음이 났다. 그순간 트리베니 뮤직센터 생각이 났는데, 내가 거기서 봤던 파파그루의 가방 역시 처음엔 왕걸레로 보였던 탓이다. 지금의 내 것보다 훨씬 더 걸레에 가까웠던 그 가방이 탐이나서 결국 같은 걸 사기까지 했으니 그녀의 '왕걸레'라는 표현이 기가 막히면서도 반가웠다.

바라나시에 머물던 중 하루는 파파그루가 매고 있던 천가방이 눈에 띄었다. 걸레같은 모습이었지만 묘한 매력을 느꼈기에 결국 파파그루에게 어디서 샀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의 짧막한 대답은 알아듣기에 아리송했다. 우물쭈물 눈치를 보다가 다시 질문했는데 그제서야 아들 레디시를 불러 뭐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레디시는 나중에 자기 딸을 따라가보라고 통역하듯 알려주었고, 결국 난 할아버지에게 질문하고 대답은 손녀에게서 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다지 삼대를 기다려서 깨달아야 할만한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날의 시타르 레슨이 끝난 후 파파그루의 손녀딸은 나를 데리고 겐지스강 주변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쳐갔다. 그리고 어느새 우린 옷과 첫가방 만드는 상점에 도착했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에 나에게 한마디도 건내지 않은 채 그저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뒤를 돌아봄으로써 따르는 나를 인도하던 그아이는, 상점 주인에게 뭐라고 몇마디 말하곤 돌아서더니 나에게는 내가 찾는 곳이 여기라는 눈짓만을 남기고서 돌아서려고 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삼대를 기다렸음에도, 결국 현자를 만나게 해줬으니 또다시 깨달음을 빌어보라는 거다. 말 한 마디 없이도 우린 그렇게 통했다.

난 그 깜찍한 아이에게 주머니에서 5루피짜리 동전을 내밀었다. 인도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도움으로 응당 기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의 길안내 심부름이 무척 기특하고 똘똘해보였던 이유가 더 컸다. 다시 말해 그건 댓가성이라기보단 나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아이는 싫다는 손짓을 하더니 내가 다시 권할 틈도 주지 않고 망설임 없이 나를 지나쳐 돌아가버렸다.

그순간은 나에게 정말 충격이었다. 주는 돈을 받지 않는 것도 낯설었거니와, 인도에서 처음으로 댓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받았기 때문일 거다. 같은 날 오전에 트리베니를 찾아가던 길을 헤매다 (그곳을 찾아갈 때마다 헤맸다. 물론 돌아올 때도 헤맸다.) 우연히 만났던 여자아이와도 대조되어 더욱 그랬다. 그 아이는 자기 사진을 찍으라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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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불러 세우고는 옆에 묶여있던 염소를 끌어안고 포즈를 취하더니 결국 내가 예상했던 바대로 돈을 달라고 했었다. 인도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그런 식이다. 귀찮게 따라다니며 아무 이유 없이 돈을 달라고 조르거나 내가 바라지도 않은 친절을 쏟아내고는 결국에 가서 손을 내밀곤 하는 꼬마아이들을 도처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 둘러쌓이다시피하여 길을 거닐다보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일조차 피곤함으로 다가올 때가 생긴다. 그런 피곤함도 어느정도 익숙해졌을 때 별다를 게 없어보이는 여자아이 하나에게서 느꼈던 게 바로 휴식같은 친절이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그 트리베니의 소녀가 머뭇거림 없이 돌아서서 가버렸을 때 나는 멍해져버렸다.

그리고 그건 이 왕걸레스러운 천가방이 아직도 내게 소중한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술집 종업원의 '왕걸레'라는 장난스런 부름에도 난 기분 상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친절'에 감사할 뿐이다. 물론 그녀가 부르지 않았더라도 바로 찾으러 들어갔겠지만.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