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Cuba2008. 9. 15. 20:43
어느나라든 화폐에 인쇄된 인물들은 그나라 역사를 통틀어 등수 안에 드는 위인들입니다. 쿠바의 역사는 비록 짧지만 그들의 페소 화폐에도 역시 호세 마르띠(Jose Marti), 시엔 후에고(Cien Fuego) 등 주로 쿠바 혁명에 이바지한 사람들 위주로 인쇄되어있죠. 그런데 쿠바 하면 체 게바라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체 게바라 하면 그가 태어난 아르헨티나를 제끼고 쿠바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그는 쿠바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체 게바라는 단 3페소 화폐에 등장합니다. CUP 3페소가 150원, CUC 3페소는 3천원 정도고. 최고액권은 100페소 지폐입니다. (참고로 쿠바에는 CUP 와 CUC 두가지 화폐가 있습니다. CUP : Cubano Peso, CUC : Cubano Convertible, 1CUC = 24CUP, '08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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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 3페소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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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C 3페소 앞면

씨엔 후에고와 카스트로 형제등과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체 게바라는 혁명 이후에 쿠바국립은행(Banco Nacional de CUBA) 총재로 임명됩니다. 이부분도 약간 이해가 되질 않죠.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를 정치 일선과는 거리가 있는 보직에 뒀다는 건 대략 그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가 죽은 이후로도, 지금까지 체 게바라는 쿠바 사람들에게 아미고(amigo, 친구)로 통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3페소짜리죠.

드물지만 CUP 3페소의 경우 지폐만 아니라 동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3페소 동전에도 체 게바라가 양각 되어있죠. 여기에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동전이 사기꾼들의 사기 수단으로 쓰인다는 건데요. 우리 돈으로 150원도 안하는 작은 돈이기 때문에 지폐도 있지만 동전도 유통되었던 거겠죠. 그런데 CUC 를 주로 쓰는 관광객들이 CUP 화폐를 얻을 기회도 쓸 기회도 흔치 않을뿐더러 희소한 3페소짜리 CUP 동전을 접할 기회는 더더욱 없죠. 그래서 길거리 기념품 상인들이 이 동전을 마치 귀한 기념주화인 양 속여서 비싸게 팔곤합니다. 그들이 1CUC 만 받아도 대략 8배를 부풀려 받는 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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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에게 선물받은 CUP 3페소 앞면

제가 체 게바라가 새겨진 3페소 동전을 처음 갖게 된 건 트리니닫TRINIDAD에서 였습니다. 함께 여행하던 루이스와 트리니닫 북쪽 언덕의 무너진 옛 병원(Ermita de Nuestra Señora de la Candelaria de la Popa)에 올랐을 때 그곳에서 기념품 행상들을 만났죠. 사실 그때만해도 저는 이 동전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서 그것이 기념주화인 걸로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행상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안좋아했기 때문에 피해있었고, 반면 루이스는 그걸 사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의 성격상 아마 가격협상을 했을테지만, 그래도 훨씬 비싸게 속아서 샀을겁니다. 그때 루이스는 저에게 주려고 그걸 하나 더 샀던가봅니다. 그리고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날 제게 선물로 주더군요.

그 이후로 쿠바를 돌아다니면서 저는 CUP 로 궁거질 하는 데 익숙해지게 됐습니다. 그러던 무렵에 거스름돈으로 받은 CUP 동전들 속에서 체 게바라 얼굴이 보이는 3페소 동전을 발견했죠. 게바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사실을 깨닫고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스를 회상하며 그리움에 빠져들기도 했고요. 여행을 하는 중에 여행을 그리워했던 건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