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8. 9. 16. 14:38
아들이 고향집에 오면 어머닌 자식의 뱃 속 장에 각종 음식물을 순대 소 집어넣듯 계속 넣어주십니다.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대꾸도 안하신 채 정말 묵묵히 날라다 주십니다.

어쩌면 울 어머닌 저를 살찌워서 잡아드시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가 도로 서울 올라갈 생각을 하니 땀을 좀 빼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밤늦게 학교 운동장을 하염없이 뛰었죠.

그대로 씻고서 뻗어자다가 아침 8시경에 일어났어요.

거실 쇼파에 기어올라 다시 잠들었는데 어머니께서 소릴 지르시며 깨우시더군요.

왠지 밥먹으라는 목소리에 신경질이 배어있으신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눈치를 좀 살폈습니다.

혹시 오늘이 절 잡아먹는 날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식탁에 차려진 아침을 보니 제 꺼 하나만 있더군요.

아버진 이미 식사를 하셨고, 저 때문에 상을 두 번 차리셨나봅니다.

조용히 식탁에 흘러 올라가서 잠도 덜 깬 채로 입맛 없이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죠.

좀있다가 어머니께서 식탁에 앉아있는 절 내려보시며 물으십니다.

"오늘 스케쥴이 어떻게 되는고?"

"저 점심 먹고 올라가려고요."

잠깐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를 점심 먹고 잡아드실지 아니면 그전에 잡으실껀지 생각하시는 걸까요?

왠지 분위기가 서먹해서 혹시 저 때문에 밖에 못 나가시나 싶어지기도 해서 살랑거리며 여쭤봤죠.

"엄닌 스케쥴이 어케 되시는데용?"

그랬더니 돌아온 싸늘한 대답...

"스케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인이 무슨 스케쥴이 있겠어?"

갑짜기 왜 그러셨던 걸까요. 더욱더 토실토실해져야 할 아들이 간밤에 땀 빼고 들어와서 실망하셨던 걸까요?

여하튼 그말씀에 기운이 쑥 빠져서 저도 함께 삐져버렸고 그자리에서 숟가락을 놓고 내려와버렸습니다.

"그럼 저 점심 안 먹고 그냥 올라갈께요."

제 방에 들어와서 문닫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삐졌다고 울진 않았구요.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엄니께서 문을 벌컥 여시며 들어오셨어요.

무슨 약물을 컵에 담아 들어오셨는데, 누워 널부러진 저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시며 컵을 내미시더군요.

아마도 사약인가 했습니다. 드디어 제 몸 바쳐서 부모님 봉양할 시간이 온 거죠.

부모님께 제가 못해드릴 게 뭐있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마셨습니다. 영지버섯 달인 물이었어요. 아직은 때가 아닌가봅니다.

빈 컵을 받아든 어머니께서 역시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시며 이말씀 남기신 채 방을 나가셨습니다.

"점심은 비빔국수다."

당신은 제가 비빔국수에 죽는다는 거 아시는 거죠.

점심 안 먹고 갈까봐서 미리 들어오셔서는 안 먹고는 못 가도록 슬쩍 점심 메뉴를 흘리고 나가신 어머니의 쎈쓰.

나중에 시간이 좀 더 지나 어머니께서 잡아드시겠다 하실 때 미련 쫌만 갖고나서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