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India2009. 11. 1. 03:24

바람의 궁전, 하와 마할

2005년의 새해를 맞이한 곳은 인도의 핑크시티 자이뿌르였다.

인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델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자정이 되기 두어시간 전이었는데, 새벽에 출발할 기차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될 무렵이기도 했다. 기차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전화가게에 들러 쓸쓸히 새해를 맞으실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인도는 아직 2004년이었다.

내가 예약해놓은 기차는 일반적으로 배낭여행자들이 이용하는 SL 클래스가 아닌 2A 클래스였다. 하나의 컴파트먼트의 양쪽 벽에 3개씩 총 6개의 간이침대가 설치된 SL 클래스와 달리, 2A 클래스는 더 넓고 깨끗한 간이 침대가 벽에 2개씩 총 4개가 설치되어있고 게다가 에어컨에 식사까지 나온다. 화장실 역시도 뭔가 묻을 것 같아 쪼그리고 앉기 어렵게 만드는 SL 클래스의 그것과는, 일단 앉지 못할 거부담이 없다는 정도로 달랐다. 자기 자리가 아닌데도 껴서 타는 현지인들과 섞여야 하는 SL 과 달리 내 공간을 침범하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2A 클래스 표를 사는 현지인들의 카스트(?)가 달라서 되려 내가 천민인 것 같은 미안한 느낌마저 든다. 한마디로 인도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황송한 여행이 가능하다. 기차삯도 2A 는 SL 보다 두 세 배 이상이다. 그렇다고 돈으로 서로 다른 카스트를 넘어 설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거기서 외국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SL 이 아닌 2A 클래스를 선택한 이유는 그런 안락함(?) 때문이 아닌 다른 데 있었다. 자정 넘어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시간까지 숙소에서 머물다가는 자이뿌르의 비싼 숙박비 하루치를 더 부담해야 할 판이었다. 전 날 새벽에 체크인했음에도 자정을 넘기면 돈을 더 내야한다고 융통성 없이 구는 숙소 리셉셔니스트에게 맘이 상해버렸다. 자정 전에 체크아웃을 하게 된다면 그 시간에 딱히 갈 곳이 없었고, 결국 화장실과 샤워시설까지 있는 --- 그런 게 있어도 별로 이용할 것 같진 않지만 --- 깨끗한 대기실(waiting room)이 제공되는 2A 클래스를 예약한 거다. 어차피 비싼 자이뿌르의 하루 숙박비를 보태면 SL 에서 2A 로 점프가 가능했으니 기회비용을 따졌을 때 2A 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마지막 행선지 델리를 앞두고 인도사람들에게 상당히 피곤해져있었다. 그래서 2A 클래스 열차는 여행에 지친 나를 달래는 일종의 장치 같았달까. 인도의 기차역에서는 마치 추석 귀성 열차표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울역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은 양반이다 싶게 여겨질만큼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 걸 보게 된다. 그렇게 또 현지 사람들 사이에 시선을 받으며 둘러쌓이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연착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기차를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고보니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건 바로 휴식이고 위로였다. 아마 그시점에 새해를 맞으며 부모님 생각이 났던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던 듯. 일반 대기실이 아닌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의 기다림은, 비록 그 안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심심하긴 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휴식이 되어준 것 같다.

꽤나 빡빡했던 여행 일정 속에서 이제 코 앞의 델리행 기차를 놓치지 않는 것 외에도 내겐 해결되지 않은 걱정거리 하나가 남아있었다. 나는 과연 델리에 도착해서 트리베니에서 보낸 사람을 만나 시타르를 건내받을 수 있을까!

트리베니 뮤직센터에 처음 갔던 날 시따르를 주문하면서 돈을 지불할 때 레디시는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에 악기를 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케이스 제작을 이류로 한 번 미루고 두 번 미루더니 결국 받지 못하고 바라나시를 떠날 판이 되었다. '그럼 그렇지' 하며 화가나기까지 했다. 인도는 당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약속이란 건 있지도 않을 뿐더러 해도 믿을 것이 못되는 곳이란 걸 되새기게 됐다. 그리고 그건 인도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중 하나였다. 

내가 할 말을 잃고서 난감해하자 레디시는 내게 앞으로의 행선지를 물었다. 다른 도시들을 며칠간 돌다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델리로 들어갈꺼라고 했더니 델리에 머무는 날에 맞춰 숙소로 사람을 보내 내게 악기를 건내주겠단다. 그러면서 운송료로 2000루피를 요구했다. 일단 그 운송비란 게 상당한 금액이었고 악기 출고를 미룬 게 그들임에도 운송비를 내가 부담해야하는 상황도 따져묻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악기를 인편에 전해주겠다는 그 말을 믿어도 될지가 내겐 가장 큰 의문이었다. 만약 그게 사기라면 나는 너무나 바보 같이 행동해서 어디 말하지도 못하는 창피함을 인도에 대한 상처로 가져야 할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행내내 커다란 시따르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건 되려 다행이었고, 또 나흘간 매일 트리베니로 레슨받으러 다니면서 봤던 그들과 얼굴 붉혀가며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냥 환불을 요구해서 시타르를 사오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던지, 밑도 끝도 없는 약속을 받아들이던지 둘 중 하나였다. 낯선 곳인 델리에서 누군가와 접선을 시도해야하고 실패하면 더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도 컸지만, 결국 2000루피를 더 줘버렸다. 뭔가 모를 좋은 기운에 이끌려서 그들과 믿지 못할 약속을 해버린 거다. 영수증이야 받았지만 이틀 머문 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델리에서 그런 게 무슨 소용있겠나. 더구나 인도에서.

그런 사연이 델리에 들어가면 뭔가 일이 벌어질 꺼란 긴장 섞인 불안감을 피워냈고, 난 그걸 차분히 눌러가면서 자이뿌르 기차역 대기실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델리보다 더 '관광사기업'에 집중하는 아그라와 자이뿌르에서 나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시도하는 인도 사람들로부터의 시달림에서 벗어나 모처럼의 한적함을 즐기고 있었다. 나 말고도 한 무리의 현지들 서넛이 거기 더 있었지만 난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참동안 정적이 유지되나 싶었을 때 그들이 갑짜기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번갈아 얼싸안으며 큰 소릴 내기 시작했다. 자정이 되어 그들끼리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있음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내게도 새해 인사를 건내며 다가왔다. 그러면서 그들과 말문을 트게 됐는데, 그때만큼은 그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니 피하고 싶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그들의 새해 인사가 의외로 내게 커다른 위안이 됐던 것 같다.

인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은 후로, 난 외로웠던가보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