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3. 9. 23. 15:27
정말 정말 사랑했던 후라이드 치킨과 헤어진 후 새로운 사랑을 찾았어요. 바로 립톤 아이스티 피치 340ml!! 사실 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치킨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이스티 때문에 치킨과 헤어진 것은 아니에요. 치킨과 헤어진지 1주일밖에 안됐지만 그래도 우리는 애절하게 사랑하고 있답니다. 그동안 몇 번 아이스티를 울리기도 했지만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우린 매일 만나고 있어요. 오늘도 두번이나 만났답니다.

치킨은 밤에만 먹게 되잖아요. 그게 그녀와 헤어진 이유였어요. 살찔까봐서... 치킨에겐 미안하지만 더운 여름에 맥주를 찾게 되면서 그녀를 더욱 자주 만나게 되던 저의 불안한 마음을 아마 그녀도 이해해주겠죠. 제가 아니더라도 치킨을 사랑해줄 사람은 많으니까... 행복해야해, 후라이드 치킨!

그러고보니 제가 아이스티를 사랑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답니다. 수 년 전 회사 탕비실에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던 저지만, 몇 달 전 월마트 판촉 아줌마가 그녀와 미팅시켜줬을 때 그 맛을 알지 못했던 저지만, TV 광고에서 미친 개시끼가 건방지게 해변에서 귀 펄럭이고 있을 때도 그녀를 못알아봤던 저지만, 그녀의 길고 긴 기다림을 생각하면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동안 그녀를 여러 번 울린 건 저의 바람끼 탓이었어요. 길을 가다가 그녀가 보고 싶어 들렀던 편의점에 그녀가 없어서 그만 네스티를 집어들었지 뭐에요. 저도 무척 실망했지만 그녀도 무척 슬펐을 꺼에요. 또 한 번은 복숭아 향이 없어서 레몬향 아이스티를 샀는데 아뿔싸, 처제가 될 사람과 바람이 날 뻔 했던 거지요. 더군다나 처제는 245ml 이었는데 날씬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물이 중요한 거란 깨달음을 얻었지요. 또 그런 일들이 있은 후에 "유사품을 주의하시오." 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고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됐답니다.


처제

역경도 있었어요. 사실 그 일 때문에 제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얼마전 지하 매점에 갔을 때 냉장고에 그녀가 없었지요. 네스티, 실론티, 아이스티 245ml 등의 유혹을 뿌리치고 저는 매점을 지키고 있던 여자분에게 다음부터 꼭 립톤 아이스티 피치향 340ml 을 빼놓지 말라고 당부를 했답니다. 그녀는 그때 저의 그런 모습에 감동했을 꺼에요. 어쨌든 그녀의 갑짝스런 부재를 격고 나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됐던 거죠.

원래 모습과 바뀐 모습

사실 얼마 전 그녀는 겉 모습이 약간 달라졌어요. 저에게 더 예뻐보이려고 했던 것인지 "ICE TEA" 란 글자가 더 작아지고 그대신 "Lipton" 이 더 커졌으며 복숭아가 반쪽이었는데 1/8 쪽 쯤으로 작아졌답니다. 약간 알록달록하던 피부색도 밋밋하게 바꼈고요. 하지만 제 사랑은 변함이 없답니다. 전에도 깨달았드시 저는 그녀의 외모보다 내용물의 맛과 풍만한 용량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복숭아가 1/8 쪽으로 줄어든 것이 맛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이상 그냥 믿기로 했어요.

오늘 지하에서 그녀를 두번이나 만났는데 역시 살찌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엄습하더군요. 그녀의 엽구리에 써있는 "설탕"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한 것이 더더욱... 그래서 저는 결심했답니다. 그녀를 더욱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 지키기 어렵겠지만 저는 그녀를 낮에만 만날 꺼에요.

그녀의 옆구리

우리 사랑을 축복해주세요. 아, 부끄러...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3. 1. 13. 00:00
아직 좀 시간이 남았지만 아무리 늦어도 2월 10일 전에는 역삼동으로 이사를 간다. 모아놓은 거 한꺼번에 풀고 대출도 졸라 받았다. 방 구하러 다니면서 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하지만 나도 이제 침대에서 자게 됐다. 빨래를 널 베란다도 얻었다. 작은 식탁도 있으니까 가끔 라면을 끓여먹더라도 바닦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지 않아도 되겠지...

어제 밤 잠을 청하면서 조그만 카페트를 사서 깔고 그위에 나무 탁자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 책 읽는 걸 상상해봤다. 책장도 하나 사서 바닦에 탑을 쌓던 책들도 가지런히 꽂아놓아야지 했었다. 자리가 좁아서 악기 연습할 때마다 보면대와 의자를 꺼내고 정리해야하는 것이 귀찮았는데, 이제는 아예 한쪽 구석에 늘상 보면대를 펴놓고 지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밖에도 많이 있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 어떤 사람들은 상상할 가치도 못느끼는 것들이... 난 행복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조금 우울하다. 왜냐면 내가 내 부모님의 보호를 받던 시절에는 너무 당연하게 갖었던 것들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 다시 얻고 있고 그 과정이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자기들이 이미 갖고 있어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나의 우울함에 공감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행복해하길 바란다. 나역시 그런 방법으로 우울함을 매워보련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