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15. 9. 10. 13:35

아버지 머리 맡에 "대통령 박정희" 라는 책이 놓여있다. 어머니는 종편 채널에서 돌고래호 뉴스를 보시며 "또 박 대통령에게 살려내라고 하려나?" 그러신다.


그 느낌 아나, 좀비들이 득실득실 하는 곳에서 내 가족들이 감염된 걸 보는 기분. 나도 좀비가 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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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5. 3. 25. 15:56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4. 11. 6. 01:59

기도


나를 절망의 바닥끝까지 떨어지게 하소서
잊고 살아온 작은 행복을 비로소 볼 수 있게
겁에 질린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라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입술을 주시고, 
내 눈물이 마르면 더 큰 고난 닥쳐와
울부짖게 하시고 잠 못 이루도록 하시며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노력한 것 그 이상은
그저 운으로 얻지 않게 뿌리치게 도와주시기를..
거친 비바람에도 모진 파도 속에도 흔들림 없이 나를
커다란 날개를 주시어 멀리 날게 하소서
내가 날 수 있는 그 끝까지

하지만 내 등 뒤편에서 쓰러진 친구 부르면
아무 망설임 없이 이제껏 달려온 그 길을
뒤돌아 달려가 안아줄 그런 넓은 가슴을 주소서



오래전 난 그의 가사처럼 바랬었다. 그런데 쓰러진 친구도 쓰러질 친구도 없다. 그가 했던 노래 그대로를 보여주고 영원히 가버린 그의 뒤에서 다시 한번... 혹시 앞으로 친구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넓은 가슴을 다짐해보리라.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4. 4. 10. 22:59

네이버에서 우연히 발견한 "다레스(dares)". 다음에선 어쩌나 싶어 찾아보니 다행히 다음은 멀쩡. 엉뚱하게도 영화가 궁금해진다.



네이버 영화 담당자 영어실력 보래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4. 4. 2. 19:51



오래전부터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듣는 음악이 싫어졌다. 그건 이동중이 아닌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은 공연장에서 듣는 게 가장 즐겁고 혹은 오디오 앞에 앉아서 음반 뒤집어가며 듣는 것이지, 이어폰으로 세상과 나를 단절시켜놓고도 모자라 딴짓해가면서 듣는 음악은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그 둘은 최선과 차선 또는 선택과 타협의 대상도 못 되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그냥 안 듣게 되는 음악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로인해 불행은 시작됐다. 가만히 앉아 음악을 즐길 여유가 없어지자 수천장의 소장 음반들은 단지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이사를 가야 할 때면 그 장식품으로써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공간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지켜온 장식품을 바라보는 느낌은 멍청한 만큼의 뿌듯함이기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한 괴로움이었다. 그나마도 이제 이사짐 박스 안에 잠재운 채 고국에 두고 이렇게 멀리 와버린 것까지, 불행이라고 정의하기에도 창피할만한 욕심과 후회 그리고 미련의 뒤안길.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복감이 찾아왔다. 알기나 했나, 저 작은 USB 스피커와 80GB 만큼 셔플링할 수 있는 아이팟이 나를 밖에 나갔다가도 얼렁 들어오게 만들고 방에서 못 나가게 붙잡아두기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언제나 엘범 단위로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솔직히 왜 "셔플" 기능 따위가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 못했었는데, 셔플로 온종일 틀어놓는 음악이 이렇게 좋을줄이야.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4. 3. 5. 23:42

뭘 못 버리는 성격에 책 사면 짐 되더라. 헤어지기 아파서 연애 못하랴, 주변에 도서관이 참 많고 왠만한 책은 적는 대로 사주더라. 이제는 우리말 통하는 사창가도 못가게 되니, 전자책만이 대안이 되어주고 있다. 아, 싸이버 딸딸이 말고, 만지고 싶다.


그래도 차마 시집을 전자책으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책값보다 비싼 해외배송비를 지불하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시집은 쇄를 늘리지 않는 모양다. 헌책은 해외배송이 안된다. 그러나 절판된 책을 구할 때 가끔 통했던 최후의 방법이 남아있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하악~하악~" 하면 보내주더라.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3. 8. 7. 16:05

오늘 방송을 마지막으로 30여년간 방송된 뽀뽀뽀가 끝났습니다.


80년대에 1대 뽀미언니 왕영은씨를 TV 에서 보고 자랐던 저는 이 소식을 CBS 김현정의 뉴스쇼 어제 방송에서 왕영은씨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 시작부분에 왕영은씨는 낯익은 목소리로 "뽀뽀뽀 친구들 안녕하세요~" 하고 청취자들에게 인사를 했고 


그순간 저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어린이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는 "뽀뽀뽀 친구들 고마웠어요~, 안녕~" 했는데 갑짜기 유년시절이 없어진 기분이 들면서 서글퍼지더군요.


그 목소릴 듣고 있으니 지금도 엄마가 깍아준 바가지 머릴 하고 있을 것 같았는데,


방송이 끝나고 거울을 보면 주름져버린 저에게 많이 실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3. 5. 10. 20:31


얼마전 저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 집에 돌아와보니 검둥개 네로랑 마당에서 뒹굴고 있더라고. 동네에서 못 보던 개라서 의아했지만 놀다가 가겠거니 하고 신경 안썼어. 다음날 되니까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더라고.


그런데 어디선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어. 왜 있잖아, 개가 낑낑댈 때 내는 그 얇상한 소리.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찾다가 세탁실 세탁기 통 속에 빠져서 못 나오고 있는 저녀석을 발견했지. 그때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어. 어딘지 모르겠지만 이녀석은 도망쳐서 여기로 숨어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니나다를까 동네 아저씨가 잡아잡술려고 시장에서 사온 개더라고. 그걸 알고나서 동네 슈퍼에 아저씨들 탁배기 하실 때 찾아가서 함께 술마시며 저녀석을 팔라고 설득을 했지. 아저씨가 엄청 먹고 싶었긴 했나본데 결국 그날 술 다사고 5만원 드리고 저친구 데려온 거야. 


아, 이름? 노루스(Nowruz;نوروز). 파르시로 "새로운 날" 이란 뜻이지.


맞아, 시골 동네다보니 이웃에서 뭐 하는지 서로 다 알지. 그러니 아저씨가 날 속이진 않았을 꺼야. 그건 도시 사람들이 서로 하는 생각이고, 여기서 그랬다가는... 그러니 아저씨가 자기개가 아닌데 나한테 팔았다거나 웃돈 받고 득보시진 않았을 꺼야. 하지만 노루스 대신 곧 다른 개가... 저기 담 넘어 건너편에 보이는 저 집 있잖아. 저 집 아저씨가 개고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그런데 왜 한국 어른들이 개를 죽일 때 고통스럽게 때려서 잡잖아. 그러면 고기가 야들야들해진다고 믿는 것 같더라고. 벌써 세번 들었어, 개 비명 소리. 스위스 사람들이 얼마나 개를 좋아하는지 너도 봤잖아. 문화적인 차이가 있으니 개를 먹는 것까진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정말 그 소리 다시 듣고 싶지 않아.


노루스, 정말 살갑잖아? 그래, 어쩌면 네 말대로 여전히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지.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3. 5. 8. 23:39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타국에서 부모님을 생각에 뭐라도 해드려야 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꽃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왕왕 이용했던 양재동화훼단지를 찾았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간혹 찾아갔었는데 꽤 만족도가 높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치만 기억했지 이용했던 꽃집을 정확히 알진 못했고, 결국 작년에 이용했던 카드 명세까지 뒤져가며 그 가게를 찾아내긴 했습니다. 그런데 카드 명세서에 적혀있는 업체명을 검색해보니 양재화훼단지가 아니라 분당 옆 고속도로변에 있는 꽃유통센터 같더군요. 제가 보냈던 꽃은 양재동화훼단지에서 직접 만들어진 꽃다발이 아닌, 전국 꽃배달 체인을 통해 보내진 거였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긴, 부모님이 계신 대전에 꽃을 보내면서 서울에서 꽃다발을 만들어 내려보내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죠. 그저 직접 꽃집에 가서 주문했다는 것에 스스로를 위로했을 뿐인 걸 압니다.


그래서 대전에 있는 꽃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에는 이미란꽃집이라고 오래전부터 꽤 유명한 꽃집이 있습니다. 제가 이용해본 적이 없으면서도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지역 광고에서 많이 봤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제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꽃집인지라 처음에는 솔깃했지만, 막상 꽃배달 체인의 원조격이거나 혹은 그렇게 변질되어버린 이미란 꽃집의 이미지를 보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꽃배달 체인 가맹점이 아니라 그냥 꽃집을 찾기 시작했죠. 직접 인터넷지도의 로드뷰를 통해 꽃집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서울에서 중국집 찌라시만 보고서 배달만 시켜먹다가, 알고보면 그 집은 손님접대용 홀도 없고 그냥 지하에 주방만 차려놓고 배달만 하는 가게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 집들은 간판만 바꿔가면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서비스 마인드는 커녕 위생관리 같은 것도 기대할 수가 없죠. 꽃집도 똑같습니다. 음식 자체보다 배달에만 전념하는 꽃에 편리함 이외의 의미가 담길 수 있을까요? 


저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검색과 (대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드물게 적혀있는 리뷰를 보면서 결국 타샤의 정원이라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사실 다른 가게들에 뭔가 흠을 잡아가며 탈락시키다가 타샤의 정원이 마지막으로 남았던 거지, 어차피 인터넷으로 진열된 꽃을 주문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그런식의 선택이었던 겁니다. 다만 타샤의 정원 카네이션에는 한가지 제 마음에 들면서 장점이 되었던 게 있는데, 제가 주문한 카네이션 상품에는 카네이션 두 송이를 부록으로 준다는 상품 설명이었습니다. 자식을 타지에 둔 부모님께 꽃다발만큼이나 가슴에 꼽고 일부러라도 밖에 나갈 수 있는 카네이션 송이에 의미를 두게 되었던 거죠. 어차피 인터넷으로 주문한 거 꽃 상태를 보장할 수 없으니 최선은 못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싱싱한 꽃이 풍성하게 갔으면 하는 마음에 선택한 상품에 2만원을 추가로 결재했습니다. 그렇게 꽃이 어버이날 하루 전날 도착하도록 해놓고 저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참 편리하죠, 어차피 인터넷으로 사진보고 주문하는 거 뭘 해도 도진개진일텐데, 그렇게 해놓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니......


조금아까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가 보낸 꽃에 무척 기뻐하고 계셔서 저는 다시 만족스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꽃 상태를 확인 안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화면을 통해 꽃다발을 확인했죠. 다행히도 꽃은 싱싱하고 풍성하게 배달되었고, 짐작하건데 꽃집에서 일하는 분께서 직접 가져다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카네이션 두 송이를 빠뜨렸더군요. 그로써 제가 부여했던 의미가 무너진 샘입니다. 다행히 부모님께선 멀리 사는 제가 보낸 꽃다발에 만족하셨지만, 자식 키운 부모로써 자랑스럽게 가슴에 걸 훈장을 드리지 못한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물질사회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값어치과 가치를 따로 생각하지 못 하고 있어 제 마음을 오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빼빼로데이에 빼빼로 팔듯 어버의날 되면 편의점에서도 파는 카네이션 두 송이 값을 손해본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에 마침 메일유업의 떠넘기기식 납품과, 편의점 가맹주들에게 발주품이 아님에도 제품을 할당하는 대기업들의 횡포가 기사화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편의점에서 편리하게 사는 빼빼로나 카네이션과 꽃집에서 만들어 파는 꽃의 가치를 달리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벽에 열리는 꽃도매시장에서 직접 꽃을 가져오고, 배운 기술로 정성스럽게 꽃을 다듬고 이쁘게 포장해서 꽃마다 담긴 의미에 따라 손님들에게 꽃을 파는 꽃집이 이제는 모두 편의점처럼 운영된다고 생각해봅시다. 꽃은 아마 꽃공장 같은 데서 상대적으로 험하게 다뤄진 채로, 꽃의 싱싱함보다는 어떻게 하면 유통기한이 다 지나 시들시들해진 꽃들을 잘 숨겨 포장하거나 적당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팔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담긴 채 우리들 앞에 진열될 겁니다. 꽃을 좋아해서 꽃집을 열었거나 꽃꽂이를 배운 아름다운 꽃집아가씨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겠죠. 그대신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도 보장 받지 못한 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비정규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저는 제가 편리하게 선택한 타샤의 정원이 그런 가게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혹시 삶의 피곤함에 찌들었거나 반대로 여유롭게 살만큼 살게 되어 더이상 초심을 지키고 있지 않더라도, 부디 당신들이 꽃에는 꽃말과 함께 의미가 담겨있고 그걸 통해 사람들끼리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하는 참 순진한 바램이죠. 그래서 저는 타샤의 정원에 글을 남겼습니다. 이미 날짜가 지나 카네이션은 의미가 없어졌으나, 어머니께서 장미꽃을 좋아하시니 단 두송이라도 정성껏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면 제 마음이 나아질 것 같다고요.


우리가 너무 흔하게 "안 사면 그만"이라고 하고 또 "안 팔면 그만"이라고들 하죠. 만약 타샤의 정원에서 제 상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달래준다면 저는 앞으로도 저 편한대로일지언정 꾸준히 부모님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게 됩니다. 혹여 타샤의 정원에서 안 팔면 그만이라 생각한다고 해도 제가 뭘 어쩔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이미 아는 것처럼 그런 걸 기대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니 실망하진 않겠지만, 우리가 꽃 몇송이에 담아 전하는 마음을 한번 더 기대해봅니다. 


우리들이 꽃을 보면서 웃을 수 있도록.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3. 2. 12. 23:55

계속 흐린 날의 연속이었다가 날이 쨍하자 몸 좀 말리자고 드래곤스 백 트레일(Dragon's back trail)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잘 못 알고 간 것 같아 다녀와서는 다시 검색을 해봤는데요, 역시 쓰레기 바다인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가 저를 오해하게 만든 거였더군요. 이 글이 트랙백하고 있는 글은 그나마 가감 없이 사실대로 쓴 편이고요, 그밖에 다른 글들은 대게 인터넷에서 본 내용들을 옮기다가 말 하나씩 빠뜨리면서 드래곤스 백 트레일을 히말라야쯤 되는 곳으로 만들려는가봅니다.


블로그들에 씌어진 내용들을 보면 짧은 홍콩 여행중에 반나절 이상을 드래곤스 백 트레일에 할애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일부러 드래곤스 백 코스 때문에 일부러 홍콩에 왔다는 경우도 있더군요. 한국 등산객들의 특징대로 복장과 장비를 완벽히 착용하고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된 이유이면서, 다녀온 후에 의미부여 하기 위한 말이기도 하고, 블로그마다 서로들 퍼나르며 빠지지 않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타임지 선정 아시아 최고의 하이킹 코스" 


오늘 다녀온 저는 이 말이 뭔가 이상해서 잘못된 걸 꼬집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찾아보니 04년 11월 22일 아시아판 타임지에 커버로 "The Best Urban Hike in Asia" 라고 소개되었더군요. "Urban" 이 빠진 건 상당히 큰 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소개된 내용에도 가장 큰 장점으로 도시에서 상당히 가깝다는 점을 쓰고 있죠. 그걸 감안해오늘 그 길을 걸으면서 대체 그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 하이킹을 다녀보고 감히 그래곤스 백 트레일을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쓸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자한테 뭘 기대하겠어요, 더구나 아시아판 타임지한테. 사진기자가 찍어온 사진들 보면서 쓴 기사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 소감으로 드래곤스 백 트레일은 한국의 동네 뒷산 정도입니다. 물론 동네 뒷산이라고 하기엔 코스가 긴 게 사실이지만, 버스가 거의 산의 능선까지 날라다주고요,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약간만 올라가면 그 이후부터는 거의 평지입니다. 중반부터는 능선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거의 평행으로 계곡을 가로지르며 닦여진 흙길을 지나게 되고, 후반에는 시멘트 길도 나옵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코스라는 게 제게는 가장 큰 감점요소 입니다.


등산의 개념보다 운동으로써의 달리기, 자전거 타기, 또는 피크닉에 더 적합한 길입니다. 홍콩 사람들은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한국의 등산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내리막 길을 못 걷더군요. 그걸 감안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드래곤스 백 트레일은 오솔길 정도의 난이도일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양손에 지팡이 짚고 등산곡에 배낭까지 무장을 하는 건 분명 뭘 잘못 알고 온 거죠.


홍콩에 관광온 분들은 여기 가지 마세요. 풍경이 멋있다고는 하지만 며칠 안되는 여정을 할애하기엔 한국사람 성격상 신발부터 모자까지 챙겨야 하니 아까운 시간과 무거워진 짐 생각하면 정말 아까운 일입니다. 혹시 한 열흘정도 체류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서쪽에 해변 산비탈에 지은 아파트들 보이고요, 동쪽에 조그만 부자동네 하나랑 골프장 하나 보이고요, 그리고 끝에 아주 작은 해수욕장 하나가 보게 되는 풍경의 전부 입니다. 히말라야 같은 데 가려고 비행기표 사는 건 이해가 가지만 심심하게 2,3시간 걷는 것이 홍콩을 찾는 이유라면 인터넷 블로그들 너무 믿지 말고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사람들이야 이미 다녀왔으니 좋았다고 의미부여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2. 7. 26. 02:52

대졸 구직자들이 입사지원서 한 장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에 관한 보고서가 있었다. 두어달 전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들은 내용인데, 대졸자가 일반적으로 요구받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비용을 입사지원자들이 만드는 이력서 숫자로 나누어 통계낸 것이었다. 대학등록금만이 아니라 어학 점수 및 자격증을 따기 위해 들인 학원 및 시험 비용, 그리고 어학연수 비용까지를 포함한 금액 등은, 그렇게 한줄씩 장식한 이력서 한 장의 가격을 상상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만들고 있다. 대학 입시가 과열되자 대학의 수를 늘려 고등학생의 80%를 대학에서 수용하게 했다. 졸업자 수가 늘어나니 당연히 취업의 문이 좁아졌고 단지 서류전형의 변별력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능력을 스펙으로 갖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는 대기업 신입사원들 중에 1,2년 정도의 인턴사원 경험을 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어졌는데, 이력서 한 장의 가격 통계는 이런 거품 가득한 취업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더이상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게 어떨까?


사실 이 생각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신입사원 초봉 인상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다. 수많은 대졸자들이 변별력 없는 이력서를 접수하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는 뽑아도뽑아도 남아돌기만 한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 뛰어난 인재들이 지원해주길 바라고, 이또한 기업들간의 경쟁일 수밖에 없다. 한편 대졸 신입사원들은 입사합격 후에 연수원에 들어가있다가도 갑짜기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구직자들에게도 입사하고 싶은 대기업의 순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위는 보통 기업이미지라는 말로 포장된 "대졸자 초봉" 에 크게 좌우된다. 결국 대기업들은 대졸 신입사원들의 연봉을 수년 간격으로 올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졸 초임의 연봉 수준이 재직자들과 함께 연동되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데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신입사원의 연봉 등급이 올라가더라도 같은 시점에 대리나 과장이 받게 되는 연봉의 수준이 함께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재직자들의 연봉 등급도 수년마다 한번씩 인상되기도 하지만 신입사원들의 연봉이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미약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직자는 경쟁을 통해 도퇴시키고 교채해야 할 존재들이므로 신입사원들과는 대우하는 방법이 다르다. 재직자들에게는 비교적 별별력있는 그 회사만의 기준을 적용해서 선별적으로 연봉인상을 해주므로써 필요한 인력만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란 연차간 연봉 수준의 역전 현상이다. 간단하다. 대졸 초임이 3천5백이었을 때 들어온 신입사원이 4년쯤 지나 대리가 되면서 4천만원의 연봉을 받게 되었는데, 막상 대리가 되었을 때 들어온 신입사원은 인상된 초봉을 적용받아 3천8백 정도를 받게 되었다고 하자. 낮은 연차의 연봉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 2백만원의 차이는 2,3년 안에 역전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대리가 과장이 되었을 때에 또다시 신입사원 연봉이 인상된다면, 높은 연차의 낮은 인상률을 적용받기 때문에 역전을 한 번 더 당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사실 연봉계약서에 연봉을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은 이런 문제를 감추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월급장이가 부속품일 뿐인 이 나라의 노동환경에서, 고용주의 입장은 한참 능력을 활발히 발휘할 4, 5년차 직원들의 단물을 빨아먹은 후 후배들에게 역전당하여 자연스레 도퇴시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본가들에게 유리하고 부속품들에게는 슬픔인 이런 현실을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업의 비용도 줄이고, 더불어 사회적인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대기업이 더이상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앞서 적었던 것처럼 대졸 신입사원들의 초봉 인상은, 어차피 변별력이 없는 신입 지원자들의 유치를 놓고 경쟁하기 위한 비효율적인 비용투자가 된다. 거기다 그렇게 뽑아놓은 신입사원들은 2년 정도의 직간접 수련을 거쳐야 제몫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 까지 드는 교육 비용과 --- 연수훈련 기간동안 월급도 주고 교육비용도 지출하지만 막상 일은 별로 못 시키는 --- 기회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적지않은 돈이 버려지는 샘이다. 


만약 대기업에서 2,3년차 경력사원들만을 채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졸자들은 중소기업에 분산지원을 하게 될테고, 몇몇 대기업으로 몰릴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의미 없는 스펙쌓기 과열경쟁은 사그라들게 된다. 상대적으로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격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이 될 수 있고, 동시에 대기업이 자리한 수도권으로 빨아올리기보다 지방의 기업에서 지역인력을 유치하기도 쉬워진다. 그렇게 중소기업에 분산된 대졸자들이 결국에 대기업으로 이직하겠다면 2,3년의 경력을 쌓는 동안 실질적인 변별력을 갖춰야 할테고, 그런 과정 속에서 대졸신입자들의 노력은 단순 스펙쌓기보다 훨씬 더 생산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경력사원을 유치한 대기업은 잘 훈련된 인력을 채용해서 적은 교육비용으로 활용하다가 단물 뽑아먹고 버릴 수가 있게 된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2. 2. 29. 21:39
저는 문제에 관심을 갖으면 그 과정도 지켜보려고 합니다. 생업이나 기타 다른 일들이 바빠서 그게 어려울 때가 많지만, 결론이라도 찾아보는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문제만 들쑤시고 지나쳐 가버리는 가벼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윤선씨의 Red Sea Jazz Festival 참가 문제에 대해서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올리브나무를 통해 뭔가 진척된 내용을 보일 줄 알았는데요. 나윤선과 관련되어 주도하셨고 제 글에 대해 위에 댓글을 열씸히 다셨던 냐옹님 말씀으로도, 나중에 글 올라오면 꼭 읽어봐달라고 하셨더랬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과정도 결론도 없습니다. 적어도 냐옹님께서 이야기하셨던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적 보이콧" 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죠.

결국 과분한 관심을 보인 게 되어버린 저로써는 실망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고, 팔연대를 사람만큼 가벼운 조직으로 오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저 냐옹님만의 책임지지 못할 해프닝이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당신은 참 가벼운 사람입니다. 비록 서로 반하는 의견을 갖기는 했어도 저는 성의를 다해 사유하고 이야기했었고, 이제 그걸 후회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간절함을 갖고 있긴 하나요? 그에 대한 문제를 오래 끌어가면서 해결할 인내심이나 자질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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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2. 1. 19. 18:46

무관심 속의 진실로 퍼져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왜곡되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있다. 인간이 너무 쉽게 반복하는 "착각" 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어왔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흥미가 갖기 시작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그러나 남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쏟기에 팔레스타인은 거리가 멀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와 관련된 아무런 동기부여가 없었다. 만약 문화적 흥미라도 갖게 됐더라면, 어쩌면 난 지금쯤 그곳에 여행도 가봤겠고, 그곳 문제에 대해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단체가 있다. 최근 그들이 운영하는 "올리브나무" 라는 웹진에서 흥미를 끄는 소재가 등장했는데, 이스라엘의 Red sea jazz festival 에서 공연할 계획인 재즈뮤지션 나윤선에게 공연에 대해 문화적 보이콧을 촉구하는 공개 편지였다.("이스라엘에서 공연을 계획하신 나윤선씨께") 재즈는 내가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품어온 대상이었다. 재즈는 적지 않은 음반컬랙션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종사자를 제외한 애호가 중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재즈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건 나의 관심의 방향이 해외를 통해 브랜딩되어 들어오는 뮤지션만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찾기 어려운 다양한 국내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향해있다는 데 있다. 나에게 재즈란 흥미를 넘어선 사랑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고,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은 채 국산(?)을 소외시키지 않는 등의 해야 할 일들을 기꺼이 하고 싶은 대상이란 말이다. 그렇게 재즈를 사랑해온 사람으로써, 동시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써,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공개편지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내용이 그럴싸하게 읽혔다. 하지만 한켠에 공감할 수 없는 다름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번 떠올려 생각한 끝에 그 다름이란 바로 "사랑"임을 알았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게 사랑이 있을까? 사실 그런 의문을 문장으로 만들지 않았을 뿐, 이 단체를 알게된 시점부터 품고있던 의구심이었다.

매번 올림픽이나 월드컵, 그밖의 국제적 스포츠 행사들을 볼때마다 대중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뻔뻔함, 비겁함, 잔인함 같은 게 있었다. 국내 축구리그 경기에는 관심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국가대표의 경기를 보면서는 실력을 질책하고 투혼을 강요하곤한다. 올림픽 메달 효자종목들 중에는 비인기종목이 상당수 있다는 것 자체로 사람들의 무관심을 탓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땄을 때 국민들이 보이는 실망을 보면서 참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닐꺼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적 관심 또는 애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윤선의 음악을 좋아하고, 재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미 계약되어있는 이스라엘 공연 스케쥴에 대해 문화적 보이콧을 하길 기대하는 것과, 단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리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대조적인 일이다. 그건 마치 나는 네가 운동경기하는 걸 지금 처음 봤음에도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우승을 통해 국위선양하길 강요한 것도 당연한 일이며, 네가 실망시켰기 때문에 그 결과가 너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이미 우리에게 널리 퍼진 그런 비겁함과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문화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사랑을 바탕으로 한 어떤 기대가 있을 수는 있을지언정 메달을 땄기 때문에 사랑해주겠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앞서말한 비겁함이 첫번째 이유고, 또한 문화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들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올리브나무에서 지난 18일에 번역게시한 "이스라엘에서 공연을 취소한 Tuba Skinny의 공식입장문"은 유치한 짓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Tuba Skinny, 그들의 정의로운 보이콧, 그제서야 들어보게 된 그들의 음악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된다는 싸구려 문화의식이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게 정의감이 있을지언정 사랑은 있는 걸까? 나윤선에게 문화적 보이콧을 요구하는 것은 정의감인가 사랑인가? 만약 사랑이 있다면 그건 가까운 우리의 뮤지션을 향한 사랑이기보다 멀리 이국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가까운 사랑일 것이다. 사실 이부분은 처음 이 단체를 알게 됐을 때부터 시작된 의문으로, 가까이서 사랑할 수많은 대상들을 넘어 그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어떤 것일까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니 사랑은 던져버리자. 단지 그들의 일련의 활동들이 정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들이라면, 정도를 넘어서 대중을 선동하는 식의 강요를 유도해서는 안된다. 문화인으로써 사랑 받기도 어려운 이땅의 뮤지션에게 대중들이 엉뚱한 이유로 돌을 던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건 정의를 명분으로 자행하는 또다른 부정이다.

지난 16일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사무실에서는 나윤선의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이야기마당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Tuba Skinny 의 보이콧 입장에 대해 웹진에 게시한 것을 보면 슬프게도 그들은 정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느라 문화적인 사랑은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난 그런 활동이 앞으로도 설득력을 갖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건 땡깡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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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2. 1. 6. 14:09
나같은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볼 일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 주변 사람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서 주변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올해 총선은 대선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희망적인 구도가 거기서 결정되버릴테니까. 

그 희망적인 전개는 이런 거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대패하게 되면 당 쇄신에 실패한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일 수가 없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까지 망가진 한나라당이 더이상 뭉쳐서 시국을 버텨내며 대선을 준비할 이유가 없어진다. 한나라당을 뒷배 삼아 국회의원이 되는 데 실패했으니 각자 살 길을 찾아 탈당을 하던가 다시 헤쳐모여하는 식이 될테니까. 이건 미리 예상하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일이다. 이미 천막당사도 한 번 했던 역사가 있는데 또 그럴꺼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

그 상황이 되면 야권 후보들은 누가 됐건 여당과 그를 추종하는 보수의 단결에 영향받지 않고서 다양한 대안이 되어 선택받을 수 있게 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선이 치뤄지는 게 가장 희망적인 전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총선에서 야권이 패하거나 애매하게 이겼다면 대선은 오로지 한가지, 정권을 바꾸기 위한 선택만 가능할 뿐이고 그 자체로는 옳은 선택이 될 가능성이 낮다. 언제나처럼 "대안이 없는 상황"으로 느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되어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해왔기 때문에 결국에 "정권 교체"만을 위한 선거가 반복되면서 이렇다할 대안을 만들지도 선택하지도 못했던 것 아닐까? 그런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단일 야권후보를 만들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결국 표는 분산되고 정권교체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일조차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 된다면 2012년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이 된다.

한번 더 나가 생각해보면, 현재의 민주통합당의 태도를 봤을 때 이미 이런 판세를 읽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양보해가며 당 차원에서 야권을 통합할 필요도 없고, 국회에 불출석해가며 더이상 한나라당에 대항할 필요도 없이 정권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들에게 각인시켰으며, 혹시 부족하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이 망가지면서, 또는 떨거지 야당들이 마져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이번 총선에 주력하여 근소한 차이로라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기에 몰두해있을 거다. 그러다 대선 때에 가서 나머지 야당들에게 "정권교체"를 볼모로 단일후보 협상을 시도하는 길이 그들에게 정권을 가져오는 데 가장 확실한 카드가 된다. 이번에 유례 없었던 국민경선을 펼치는 것 또한 "정권교체"를 볼모로 단일후보 협상을 이끌어내는 시점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 떨거지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 될 거다.

같은 논리로 한나라당을 지게 하기 위한 총선이 되서도 안된다. 하지만 그들의 참패는 결국 국민적 관심으로 이뤄질 일이므로, 한나라당의 참패를 호소하려는 게 아니라 2012년 선거에 유례 없는 관심과 토론이 주변에서 많이 일기를 바란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 4월 총선에서 범국민적 관심으로 한나라당이 참패하는 거다. 그러면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누군가 나서고, 통합진보당에서 문재인을 모셔다 세우고, 안철수나 조국 교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해도, 국민들은 여러 "가능성 있는" 대안들을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선거란 선출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이는 "캠페인"의 내용도 중요하며, 다양한 후보들의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서로 고민할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거기까지는 먼 이야기라 할지라도 정권 교체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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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1. 12. 15. 14:27
어제 비슷한 듯 서로 많이 다른 친구들과 모여 이야길 나눴다. 이야기 하는 내내 이 사회가 물류의 유통이 지배하고 있어 병들고 있다는 평소의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어 불편했다. 그런 이야길 꺼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우리들 중에서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감자를 유통시키려는 사람만 많아지고, 하고싶어 감자를 키우려는 사람은 없어지고 있기 때문. 돈이란 것은 땅에서 자라나는 가치에 대한 대한 지불 수단이기보다 허공에서 부풀려진 공허한 것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단 더 많이 갖어야 하는 욕심을 품게 되나보다. 우리가 감자를 키운다면 그리 돈이 많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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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1. 10. 31. 14:23
어느날에 문득 담배를 참기 시작하고서 5년이 지나도록 담배를 끊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담배 연기가 싫어지고 그 냄새가 몸에 밴 사람이 불편해질 정도가 되어서도 나 스스로조차 담배를 끊었다는 자신이 서질 않았다. 언젠가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났을 때 한 개피 담배가 그렇게나 간절했던 걸 꾹 참아낸 적이 있었는데, 그걸 간신히 참아낸 데 대한 안도와 함께 담배는 여전히 참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란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엔 교통사고의 충격보다 컸지만 지나서는 유치하기 그지 없는, 누구나 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상투적인 이유로 나는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담배연기였는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상관관계야 없겠지. 하지만 나 스스로가 담배가 되어갈 수록 이걸 다시 물게 만든 그 순간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으니까. 시간이 지날 수록 다시 헤어나올 수 있을까 걱정스럽게 만드는 건 담배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마는 그런 순간이 아니란 걸 알게 해줬으니까 말이다.

처음 그랬을 때처럼 이번에도 큰 결심 없이 문득 찾아온 어느날이 있었다. Beer Lao 를 핑계삼아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을 눌러앉힌 곳, 라오스의 국경에서였다. 각자 세 병째 비우던 중 한참동안 담배를 끊었던 친구는 내게 담배 한 개피를 달라고 했다. 내게 단 두 개피만 남아있는 걸 보고 그는 바로 사양했지만, 그 순간이 오래전에 문득 찾아왔었던 어느날과 같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나눠 피운 후로 지금까지 난 잘 참고 있다. 이제 지나고 나서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렇게 훈련된 나는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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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1. 2. 15. 15:07
이 사회에서 다수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먹고 살건 

비굴하게 먹고 살기는 마찬가지거나 예술가 아닌 자들이 더할 겁니다.

특히 그 삶의 비굴함이 은행 대출금이나 사교육비 마련 때문이라면 

차라리 시대가 낳은 보편적 인간성에 묻어갈 수나 있겠지만,

음악 복사해서 듣고, 영화 다운받아 보고, 예술이랑 하등 관계 없는 성공 매뉴얼책만 사보면서,

그러면서 누군가 배고픈 예술가가 죽었는데 누군가 배부른 예술가는 낭만주의나 말한다는 둥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보다 무서운 사람이 또 있을까요? 더욱이 그런 스스로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1. 1. 11. 20:16
지금처럼 길에 눈이 많이 쌓이고 있을 때, 

별준비를 못했던 고양이들은 머물 곳을 찾고 있겠지. 

봐둔 곳이 있는 놈들은 이미 들어갔을 꺼고, 

들어갔더니 혹시 누가 차지하고 있더라도 

부디 싸우지 말고 밤을 외롭지 않게 보내렴. 

오늘밤 우리 건물 현관도 열어놓을께.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0. 9. 25. 12:21
유혹과 핑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봤어. 넌 이미 나와 함께 달리면서 앞으로 할 이야기를 내게 들었었단다. 그때 너의 반응은 좀 신경질적이었는데, 어쩌면 그토록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자꾸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짜증났을 수도 있었을 꺼야.  아니면 그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해봤으면 좋겠구나.

우린 그때 1km 를 6.5분 페이스로 뛰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7분을 살짝 넘기는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지. 그래서 결국 10km 를 1시간10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고. 그런데 코스 후반부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르막길을 만나면 걷고 내리막이 시작되면 다시 달리기 시작하곤 했던 걸 너도 봤지? 그 날의 코스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그렇게나 많을 거라고 내가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꽤 많은 날들을 달리면서 보냈기 때문에 후미 그룹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게 될 거라는 걸 예상하고는 있었어. 사실 그때문에 너에게 천천히 뛰더라도 절대 걷지 말자고 다짐을 받아뒀던 거란다. 주변에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커다란 유혹과 핑계로 작용하게 될테니까. 더구나 내 옆에서 열씸히 달려줬으면 하는 친구의 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거든.

10km 를 1시간 안에 들어오는 그룹에서는 그런 모습을 별로 볼 수가 없어. 그렇게 쉬어가다가는 그 시간 안에 들어올 수가 없거든. 바꿔 말하면 성의껏 준비한 노력보다는 의욕이 더 컸던 사람들 중에서 체력이 그 의욕을 받쳐주지 못하게 되는, 너무 당연히 찾아오게 될 그 시점부터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내리막에 스스로를 의지하게 되는 거야. 너와 함께 달리다가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들을 가리키며 너에게 내가 그렇게 말했었잖아.

"얼마나 삶에 대한 약은 태도니."

넌 짜증을 냈었지. 푸훗.

그렇게 약은 사람들은 출발선에서도 수백의 사람들을 비집고 되도록 앞에 서려고 한단다. 일일히 맞춰보지 않고서도 그렇다고 판단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내가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을 때, 나역시 선두그룹에 들어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중반 이후부터는 엄청 많은 사람들을 앞질러가게 되거든. 그렇다는 건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페이스란 것 자체를 모를 만큼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나보다 앞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거지. 더 힘차게 뛰어서 앞지를 생각을 하기보다는 시작부터 남들보다 앞에 서서 뛰려고 하는, 이또한 나에게는 자신에게 겸손하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보이기도 해.

사실 단지 하루 기분 좋게 땀을 내고 싶었을 뿐인 그들은 자기가 그렇게 앞섰던 의욕만큼 많은 추월을 당하게 되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을 꺼야. 또 그렇다한들 그게 비난 받을 일도 아니지. 더구나 그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혹시 너도 내 말을 들으면서 너를 거기 포함시켜넣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던 건 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약간 더 진지할 뿐인데, 그런 내게 그들이 어떻다고 평가할 자격은 없는 게 맞아. 그런데 내게 아무런 득이 될 것도 없는 손가락질을 하겠다는 건 아니란다. 그런 사람들과 섞여서 달리는 내가, 그리고 또 네가 가장 크게 얻었으면 하는 한가지가 있을 뿐이야.

내리막길에서 뛰고, 오르막에서 걷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보게 됐는지 생각나니? 오르막에서 우리가 그들을 앞질렀었는데 내리막에서는 도로 역전당하길 반복했었고, 그래서 낯익은 차림의 사람들이 주변에 계속 보였던 거고 아마도 결국 우리의 골인 기록도 그들보다 나을 게 없었을 꺼야. 우리가 그들을 앞지를 수 있었던 건 오르막에서도 달렸기 때문이고, 그들이 우릴 다시 앞지르게 된 건 내리막에서도 우리가 페이스를 유지했기 때문이란다. 어찌보면 달리다가 걷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분수에 맞는 페이스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야.  

앞에서 내가 그들의 겸손하지 못함과 약았음을 이야길 해놓고도, 결국엔 그들과 추월에 추월을 반복하면서 비슷한 기록의 결과를 냈다면 당연히 이렇게 의문을 갖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 '우리의 마라톤은 달리나 마나한 일이었던 걸까?' 그렇게 걷고 싶고 쉬고 싶은 유혹을 참아냈고, 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쉬어가고 있다는 핑계를 물리치면서 달렸는데도, 그렇게 순간, 순간들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그게 약음보다 나을 게 없다라면, 우리가 했던 마라톤과 네가 나와 했던 약속은 큰 의미는 없는 일이 되는 걸까?

사실 내 대답은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하나 마나 한 거였다는 것에 가까워. 남들보다 더 진지했던 시간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과는 같다는 것이 나에겐 약오르는 일이거든. 그런데 그런 결과에 대한 차이는 다시 또 그 진지함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아주 간단해. 네가 평소에 꾸준히 달렸더라면 추월했던 사람들에게 내리막에서 도로 추월당하는 일은 없었을 꺼야. 남을 이기기 위한 연습은 혹독할지 몰라도, 나의 진지함에 대해 공허해지지 않을 만큼의 훈련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결국 다시 말하건데, 인생도 마라톤도 출발선에 서서 시작되는 이벤트가 아닌 거야. 이미 우린 달리고 있다는 걸 너도 알잖아. 남을 이겨내기 위해 긴장을 유지하고 혹은 독기를 품고서 뛰는 일들은 난 정말 싫어. 하지만 내가 즐기는 것들을 대할 때, 말하자면 일할 때도, 달릴 때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친구인 너를 대할 때도 내리막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보다 오르막에서도 멈추지 않겠다는 진지함과 꾸준함, 그게 바로 너와의 마라톤에서 내가 귀하게 얻어낸 마음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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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10. 9. 22. 22:13
추석연휴에 운동을 하려고, 날씨 예보를 봤더라면 챙기지 않았을지도 모를 운동화와 운동복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그저께 고향에 내려왔단다. 그런데 오늘도 어제도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 막상 비내리는 걸 보고 의지가 좀 꺽이긴 했었는데, 오래전 누군가의 질문이 떠오르더구나.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있던 그는 내일 비가 내려도 행사가 열리는 지를 내게 물어왔어. 그가 갸우뚱 했던 대답이 나에게는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잠깐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나. 그 어떤 대회도 비 때문에 취소되진 않아. 비는 왠만큼 내려서는 달리기를 방해하지 않거든. 결국 그 생각이 나서 어제도 오늘도 부슬비를 맞으면서 달릴 수 있었단다.

평소에 나의 의지를 꺽는 유혹들이나 핑계들이 너무나 많아. 나 스스로도 그것들을 잘 못 이기는 편인데,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주로 하려고 하는 편이란다. 누군가 의지가 약하다면, 그 말은 의지를 필요로하는 그 일이 그 누군가에게 억지를 써야 할만큼 즐기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 의지박약으로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억지를 써가며 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어려움만큼 보람이 크지도 못할테니까.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고 그럴 가치가 있다면 다른 유혹들 앞에서 강해져야 하고, 핑계를 만들지 말아야 해. 다행히 그 일을 하고싶은 만큼이 다른 유혹들을 이겨내게 도와주기도 하고, 핑계를 만들 필요도 없게 하는 것 같아. 그러니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혹은 나를 후회하게 만들고, 핑계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더라. 왜냐하면 핑계는 스스로를 합리화 해버리고 다음번에도 또 반복할 수 있는 선례로 남아서 후회조차도 하지 않는 더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거든. 유혹은 외부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미연에 차단해버릴 수도 있지만, 핑계는 마치 남이 만들어준 상황인 것처럼 말하곤하지만 기실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 합리화인 경우가 많아. 그래서 유혹보다 핑계가 더 위험해.

마라톤같이 시간이 많이 필요로하는 운동은 그 사이에 많은 유혹도 작용하지만, 핑계를 동반한 자기 합리화도 많이 만들어내게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인생에서 단 한 순간도 우리에게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한 편리한 시간과 상황으로 주어지지 않을 텐데, 그것들의 방해를 이겨내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출발선에 서도 되는 걸까? 마라톤은 출발선에 서서 풀리지도 않은 운동화 끈에 조바심을 더해 묶으며 시작되는 게 아니라, 평소에 달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데서 시작이 된단다. 흔히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건 인생이 고작 출발선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벤트 같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걸 준비해온 훨씬 더 긴 시간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시간과 장소가 달라져도 땀을 흘린 후에 시원하게 씻어낼 수 있는 상황만 된다면, 비가 약간 오더라도 그게 달리지 못할 핑계가 될 수는 없지. 더구나 그렇게 준비해온 사람이라면 겨우 비 때문에 대회가 취소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비 때문에 대회가 취소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잠시 말문이 막혔던 이유가 바로 그거야.
 
비속에서 달려보지 않고서는 그런 걸 모를 수 있어. 하지만 비가 내릴 때 달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서는 영영 알 수도 없단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