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16. 11. 3. 11:12

며칠전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켜니 구글뉴스에 그의 사망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잠들기 전 그에 대한 최신 뉴스를 찾아봤던 터라 구글신은 짓궂게도 내가 잠든 사이 영원히 잠들어버린 그의 소식을 찾아내 내게 알린 것이다.


그 어떤 뮤지션의 죽음이 이정도의 아쉬움을 남겼던가. 좋은 음악만 만들어준다면 그들이 마약 좀 하면 더 잘된 것 아니냐던 나로써는, 그동안 많은 뮤지션들의 부고를 접하면서 거의 항상 앞으로는 그들의 과거만 쫓으면 될 뿐 미래를 쫓느라 신경쓸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일수였다. 하지만 Roland Dyens 은 다르다.


오늘은 이 연주를 들으면서 뜬금없이 라마누잔 이라는 천재 수학자가 떠올랐다. 그는 복잡한 수학문제를 신께서 주신 아이디어로 공식을 만들어 풀어내지만 정작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수학적 지식이 없었다고 한다. 범인들로써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이지만 그는 그냥 그걸 직관적으로 알아내는 그런 수학자였다.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날 그는 택시 번호 1729 를 보고는 아주 흥미로운 숫자라고 말한다. 두 정수의 세제곱의 합의 형태로 서로 다른 두가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숫자들 중 최소값이라는 것이다. (1729 = 1^3 + 12^3 = 9^3 + 10^3) 그런 그를 보고 동료 수학자는 모든 정수는 라마누잔의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인 즉 모든 정수 하나하나에 대해 라마누잔은 그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Roland Dyens 가 바로 그런 독특한 천재 였던 것 같다. 혹자는 재즈 뮤지션들 중에서 Egberto Gismonti 나 Ralph Towner 가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클래식기타리스트인 Roland Dyens 는 역설적이게도 재즈 뮤지션인 그들에게 없는 직관적 천재성을 갖고 있다. 계산하거나 연습하지 않고도 그냥 그 음이, 그 감성이 저 악기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작곡, 편곡, 혹은 연주를 하는 것.


천재들은 단명하더라. 라마누잔 역시 마흔을 못 넘겼다. 61세에 타계한 그가 너무 짧게 느껴지는 아쉬움은 그다지 많은 족적을 남기려 하지 않았던 바람 같은 뮤지션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 또 후 하고 불어지나칠까 우린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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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16. 5. 15. 15:00

길 가다가 포스터를 봤는데, "원스", "비긴 어게인"에 이어 존 카니 감독이 세번째 음악영화를 개봉한다고 한다. 이 감독은 음악을 소재로 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걸까? 두번째까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복제만 반복하는 감독의 세번째 영화를 볼 생각은 없다.


아뿔싸, 그러고 며칠 후 실수로 영화 "곡성"을 봐버렸다. 포스터나 홍보물에 나홍진 감독의 또하나의 자극적인 폭력물 또는 공포물이라고 써줘더라면, 이런 영화를 15세 관람가라고 사기 쳐놓지만 않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쉬신 나오는 공포물이라도 이런 저질 공포물은 사양하겠다. 관객들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어두컴컴한 유령의 집에 몰아넣고 갑짜기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식으로 깜짝 놀래키기의 연속일 뿐이고, 자극적인 죽음과 분장으로 관객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이 블로그 같은 데 맛집이라고 가는 식당에 가보면 막상 맵고 짜고 단 음식들 뿐이더라. 영화 곡성은 블로깅 잘 된 맛집에 다름 없다.


시나리오의 개연성도 없음에 대해서는 천우희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배역의 행동에는 아무런 동기부여가 되어있질 않다. 그 반대편에서는 그냥 악마라는 설정이면 충분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럼 천우희는 천사인 건가? 아하, 그걸 이제 깨달았군! 천우희가 천사라고 하면 말이 좀 되는 것 같다. 황정민이 언제부터 악마가 되었는지도결말에서 관객에게 "속았지?" 하기엔 억지스럽고 두루뭉술한 설정이다. 혹은 처음부터 악마였다면 왜 악마에 대항해서 살수를 날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혹은 악마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카메라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변명꺼리라도 미리 만들어놓거나. 끝에 곽도원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매하게 해놓는 것도 이젠 짜증스러운 클리쉐가 됐다.


곽도원과 장소연의 캐스팅에도 그 배우들의 개인적인 사연 때문에 불만이 있다. 쓸 데 없이 긴 영화에 그 둘의 불필요한 정사씬이 나오고 그 정사씬을 아이가 봐버렸다는 내용도 필요 없으면서도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였다고 본다.


이런 영화가 칸느 영화제에 초청됐단다. 그러고보면 칸느 영화제에 초대되는 한국 영화들의 공통점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맵고, 짜고, 달고.



이 영화는 그냥 황정민이 악마다 하면 더이상 볼 이유가 없어지는 자극적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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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14. 11. 11. 20:56

세월호 사고 직후에 트위터에서 한 뮤지션과 한 평론가와 나머지들간의 설전이 있었다. 뮤지션은 이언 이었고 평론가는 서정민갑이었는데, 논쟁은 뮤지션들의 음악적 사회참여를 아쉬워하는 서정민갑의 기고문에 대한 이언의 반론에서 시작됐다. 내가 보기엔, 뮤지션의 사회적 이슈 참여는 선택의 문제인데 그런 기고문이 참여적이지 않은 뮤지션에 대한 비난으로 비춰보일 수 있다는 걸 우려하는 뮤지션의, 속된 말로 "니가 그러면 난 뭐가 되냐" 는 싸움이었다. 그당시는 모든 사람들이 탓할 사람을 찾기 바빴거나 본인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슬퍼하던 무렵이었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설전에 주목하거나 말 한마디 보태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사회참여적이지 않은 뮤지션 입장에서는 세월호가 가라앉은 게 내 탓이냐고 따져묻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얼마전에 김태춘의 "가축병원블루스" 음반을 사서 듣고 있는데 문득 그때의 논쟁이 떠올랐다. 사실 그 논쟁보다 유신시대 때 금지곡 지정하는 것에 모자라 음지로 끌고 가버렸다던 시절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 것만 같은 이른 걱정이 먼저 엄습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비속어나 음탕한 말들이 가사에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김태춘 같은 뮤지션이 저런 노래를 부르면 20년전에 없어졌던 사전검열제도가 다시 호출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태춘의 음반이 나온 시점이 세월호 사고보다도 1년이나 더 이른데, 내가 좀 더 일찍 들었다면 혹시 그때의 논쟁에서 참신한 의견을 보탰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 참여적 뮤지션들이 많아져서 그때문에 사전검열 제도가 부활면 어쩔 꺼냐는, 요즘 트랜드대로 인과관계를 뒤집은 논리로 말이다. 사전검열제도가 없어진지 꽤 됐고 이제 그랬었던 시절이 있었다며 우스개말로 추억하기도 하는데, 정작 표현의 자유가 주워졌다고 생각하면서(혹은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이때에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음악도 함께 없어진 것을 우리가 자각하고는 있나?


잠깐동안 이 또한 시장논리 때문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누군가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같은 테이프를 만들어 노래부르고 있는데 팔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내 귀까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없어진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거라는 식으로 시장만능주의를 탓해보려고 한 거다. 김태춘의 음반이 1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벌써 없어진 한 듣보잡 팟캐스트에 의해 우연히 발견 되면서 내가 사서 듣게 된 것 만큼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장의 불빛"은 양지에서 유통될 수도 없었고 테이프를 복사해서 옮겨들었는데, 우린 클릭 두어번으로 복제해서 듣는 시절에 살고 있잖나. 아무도 그런 노래를 돈 주고 사지 않는다고, 팔리지 않으니 상품으로 진열되어있지 않다고 해서 들을 수 없게 되는 거라고 한다면, 뮤지션도 밥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노래를 만들고 있지 않은 거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불법복제를 해대는 대중들중 하나이거나 배 고파가면서도 음악을 열씸히 하다가 심지어 죽기까지도 하는 뮤지션 본인일테니 거울 한 번 보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겠지. 외면하고 싶은 거다, 나처럼, 우리처럼.


저항의 음악이 사라졌다. 이미 경찰 곤봉에 맞아죽었거나 모멸감에 자살하거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근로자들을 노래하고 있는 음악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 혹은 쥐새끼나 마녀를 욕하는 노래도 좋다. 곧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모독 방지법" 같은 것도 없는 이 때 뮤지션들이 대통령을 모독할 참 좋은 기회이니, 있다면 있는 만큼 "사" 모아서 즐겨 듣다가 혹시 언젠가 금지되면 열씸히 복제해서 저작권과 모독법을 강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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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14. 10. 1. 01:25

내가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부모님께서는 심심찮게 해외로 떠나셨다. 아버지께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셨던 반면 어머니께서는 좀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다. 당신들 안계실 때 집에서 마구 소리지르다가 내가 김종서도 되고 김경호도 되더니 심지어는 신효범도 된다는 걸 발견하는 등 나름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는 걸 당신들께서는 모르신다. 이건 앞으로도 비밀이어야 하는 것이, 당신들께서 나를 안타깝게 여기신 건 기실 당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기대에 걸맞게 무척 불편하고 쓸쓸한 시간들을 보낸 것이어야만 한다.


사실 그렇게 쓸쓸하게 보낸 척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있었다. 바로 음반과 담배인데, 떠나시기 전에 CD 또는 VHS 목록을 적어드리곤 했다. 한국에서는 하나도 구할 수 없는 것들로 적어드려도, 한국에서는 음반가게 자체를 가보질 않은 분들이었음에도 해외에서는 아무 음반점에서는 그냥 흔하게 막 건져지는 물건들이었던지 적어드린 것 중 절반은 가지고 오셨다. 담배는 감히 부탁한 기억이 한 번도 없는데, 어머니께서 항상 "이것만 피우고 끊어라." 라고 하시거나 혹은 건강에 덜 헤로워보인다며 "Mild Seven"을 보루째 사다주시곤 했다. 담배를 피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렸지만 담배값 굳는 건 좋은 일이었다.


사운드가든의 Louder Than Live 라는 공연실황 비디오도 그때 얻을 수 있었던 물건이다. 당신께서 비행기 타고 낯선 곳에 건너가 물어물어 음반 가게를 찾아가신 후 내가 적어드린 목록을 꺼내보이시면서 무겁게 들고 돌아오셨던 것들 중 하나인데, 이제 단 몇번의 클릭을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당신들께선 다행히도 세상이 그렇게 간편해졌다는 걸 나만큼 실감하고 계신 것 같진 않다. 단 몇번의 클릭이 당신들께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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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12. 5. 6. 08:45

글에서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은 것 같지만, 평양냉면에 대한 서론을 좋게 해석하여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평양냉면이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맛을 평양냉면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극명한 취향문제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어벤져스의 재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맛이 있기 때문이라는 시작이겠죠. "취향" 에 관해서라면 어디서나 다 통하는 일반론을 가지고 너댓문장이면 될 것을 절반이나 차지하는 평양냉면 이야기 읽다가 이게 혹시 어벤져스에 빗댄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숲을 보지 못하는 예시나 비유를 통한 각론을 하지는 않겠어요.  냉면에는 없지만 영화에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좋은 스토리는 인물의 등장이나 사건의 발생에 있어 개연성을 갖습니다. 아니, 너무 당연하게 갖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스토리의 요소라고 할 수도 없고, 그게 없으면 나쁜 영화라고 해야 맞죠. 그런 관점에서 대표적인 나쁜 영화는 심형례의 "디 워" 가 있고요.


영화 어벤져스의 개연성은 영화 안에 있지 않고 영화 밖에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다시 말해서 "아이언맨"은 기본이고, 캡틴 어메리카가 나오는 "퍼스트 어벤져", 에릭 바나가 아닌 에드워드 노튼의 "인크레더블 헐크" 를 봐야지만 영화가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그 모든 작품을 다 본 사람들에게 느끼는 재미는 새로 나온 "어벤져스"의 탄탄한 스토리에서 느끼는 재미가 아니라 "발견의 재미" 입니다. 본문에서 평양냉면 이야기를 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보는 어벤져스의 맛" 예시들은 그런 "발견의 재미" 인 거죠. 그리고 "아이언맨", "퍼스트 어벤져", "인크레더블 헐크" 를 안 봤거나 봤지만 잘 기억 안나는 사람들에게 개연성을 찾아내지 못해서 재미 없다고 얘기할 노릇은 아닌 거죠. 


그 개연성이란 걸 반드시 하나의 작품 안에서 찾아야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역시 전편, 또는 후편과 이어지는 내용들이 많죠. 그런데 그건 서로 전편과 후편으로 연결되는 시리즈물인 경우고 원작소설 또한 그렇게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 어벤져스가 어떻게 다른지는 한 번 생각해보세요. 마블코믹스 이야기 나오면서 산만해질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물론 영화는 고유의 특성을 갖는 시각적인 창작물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갖는 비중이 다른 스토리 기반의 창작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가 부실해도 등장인물(또는 배역)이 흥미롭거나 컴퓨터 그래픽이 볼만해서 흥행하는 예시들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거죠. "어벤져스"는 바로 그 두가지 경우에 해당되는 영화입니다. 헐크의 자발적/우발적 변신을 놓고 끼워맞추는 식으로 수수께끼 푸는 재미가 있어서가 아니고요.


ps. 영화 어벤져스에 대한 어떤 블로그 해설에 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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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11. 12. 6. 14:49
일찌감치 예매해둔 백건우 티켓 한 장을 취소해야 한다. 두장씩 예매하고 하루 전날 취소하는 게 대체 몇번째인지 모를만큼 나에게 흔한 일이지만, 백건우 콘서트는 한 장이라도 취소하기가 너무 아깝다. 그리고 취소하기 아까워지니 별게 다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지인들에게 "공짠데 볼 사람" 하고 물어보면 보겠다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백건우에 관심있는 게 아니라 액티비티에 관심있는 사람들 뿐이다. 그들중에는 심지어 본다고 해놓고 퇴근 전에 술약속 따위가 생기면 거기로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끼리끼리 모인다던데 내 주변엔 왜 나 같은 사람이 없는 걸까.

나는 개인적으로 아는 뮤지션의 공연이나 혹은 공짜표를 주겠노라고 뮤지션이 초대를 해도 (어차피 비싼 표도 아니니) 내 돈 주고 가겠다고 하는 편이다. 그런 태도는 뮤지션이 마련한 무대의 가치를 인정해줄 기본적인 준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친분이 그에 대한 매너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 거기에 같은 뮤지션에 대한 취향까지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 지인들중에 단 한 명도 없다. 매너가 있어도 취향이 다르고, 그보다 흔하게 취향은 있지만 매너가 안된 경우는 많다. 결국 원망할 일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난 두장씩 예매하고 하루 전날 취소하길 꾸준히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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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over Beethoven2011. 11. 27. 21:59
mp3 같은 매체로 음악을 들을 경우 일단 허전해지는 것이 손에 잡히는 자켓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반을 플레이어에 넣고 나면 CD 나 LP 나 mp3 와 똑같은 음악이 나오는 건 사실입니다만, CD 나 LP 는 알맹이가 빠진 자켓이 손에 남게 되죠. 앨범 아트웍을 제쳐두고서도 자켓에는 곡목들부터 시작해서, 앨범을 소개하는 liner note, 어떤 작곡자나 연주자들이 참여했는지 등에 대한 album credit 들이 적혀있습니다. 그밖에도 어디서 언제 프린트된 건지 따위의 자질구레한 읽을 꺼리들이 있죠. 특히 이런 정보들은 새 음반을 처음 뜯어 플레이어에 걸었을 때 습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첫 곡과 함께 즐기곤 하는 반찬같은 존재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mp3 는 그런 게 없습니다. 검색으로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지만 mp3 위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중 album credit 을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요? 앨범의 주인공만 관심있을 뿐 누가 작곡한 건지, 누가 연주를 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아지는 게 mp3 로 즐기는 편리한(?) 음악일 겁니다. 휴대하기 편한만큼 버려지거나 생략된 것들도 있는 거죠. 그럼에도 음악만 들었으면 됐지 그딴 정보는 필요 없다고 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음악 듣는 즐거움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Marc Ribot 이란 기타리스트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방가르드 재즈 기타리스트로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추앙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그를 아는 음악 애호가를 저는 몇 명 만나본 적이 없긴 합니다.) 아래 자켓 사진들이 제가 갖고 있는 Marc Ribot 의 앨범자켓들입니다. Marc Ribot 의 음반들은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편이어서 두 장밖에 없었는데 얼마전에 좀 희귀한 CD 를 하나 더 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실험성이 가득한 음악들입니다만 근래에 비 상식적인 금액을 지불하고 구한 "Solo works of Franc Casseus" 의 경우는 일반적인 클래식기타 음악이 담겨져있습니다. Marc Ribot 이 어려서 클래식기타리스트 Franc Casseus 를 사사했다고 합니다. 이미 80년대부터 아방가르드 재즈 씬에서 활동을 해온 그가 2000년에 발표한 음반이 바로 그의 스승 Franc Casseus 헌정 음반이었고, 그가 전혀 보여준 적 없었던 클래식기타 음악들이 들어있다는 건 참 뜬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소장가치 때문에 가격도 비상식적이게 된 거겠죠. 
Marc Ribot - Shrek

Shrek

Marc Ribot - Yo! I killed your god

Yo! I killed your god

Marc Ribot - Yo! I killed your god

Solo guitar works of Franc Casseus


사실 제가 Marc Ribot 을 처음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건 그의 리더 작품들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80년대 뉴욕에서 활동했던 The Lounge Lizard 라는 밴드의 "No pain no cakes" 음반에서 처음 그를 알게 됐죠. 밴드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Marc Ribot 은 여러차례 이 밴드에 찬조출연 형식으로 공연을 하거나 음반을 녹음했었는데, 아무래도 연주곡들이다보니 연주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 album credit 을 보다보니 그의 이름이 눈에 익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알지 못한 채 여러 재즈 음반들에서 이미 그의 연주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대중적으로 꽤 유명한 Medeski Martin and Wood 의 음반에서, 혹은 Dave Douglas 등의 음반에서 그의 이름을 나중에서야 발견하게 되었죠.
The Lounge Lizard - No pain no cakes

The Lounge Lizard - No pain no cakes

Dave Douglas - Freak in

Dave Douglas - Freak in

Dave Douglas - Freak in

Medeski Martin and Wood - End of the world party


알고보니 그는 재즈 음반에서만 아니라 팝이나 컨트리 음반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컬렉션들 중 의외의 앨범들에서도 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Tom Waits 입니다. Tom Waits 의 가장 최근 음반 "Bad as me" 에서도 연주한 Marc Ribot 은 이미 1985년의 명반 "Rain Dogs" 에서부터 연주를 했고, 이를 포함해 제가 갖고 있는 Tom Waits 음반 중 세 장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Tom Waits - Rain Dogs

Tom Waits - Rain Dogs

Tom Waits - Real Gone

Tom Waits - Real Gone

Tom Waits - Real Gone

Tom Waits - Bad as me


그의 이름이 credit 에 있기 때문에 산 음반들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09년 그래미를 수상한 Robert Plant 와 Alison Krauss 의 "Raising Sand" 가 있죠. 컨트리 스타일까지 커버할 수 있는 Marc Ribot 의 연주는 Alison Krauss 의 이후 작품들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또 한참동안 제 휴대전화 착신음을 장식했던 Lucien Dubius Trio 의 "Ultime Cosmos" 음반의 경우 Marc Ribot 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국내 재즈팬들 사이에도 큰 호평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이 앨범에는 DVD가 포함되어있어 Marc Ribot 이 음반을 녹음하는 장면을 직접 볼 수도 있었죠. 마지막으로 얼마전에 산 Rebekka Bakken 의 "Morning Hours" 음반도 Marc Ribot 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사지 않았을 겁니다. 노르웨이 포크송 스타일이 짙은 Rebekka Bakken 의 초기작에는 기타리스트 Wolfgang Muthspiel 이 있어서 좋아하게 됐었는데, Wolfgang Muthspiel 이 작업에서 빠지고부터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죠. 그래서 새 음반이 나와도 관심갖질 않은지 몇 년 됐는데, '09년에 발표한 이 음반의 credit 에 Marc Ribot 이 올라와있는 걸 보고 망설임 없이 샀습니다.
Robert Plant & Alison Krauss - Raising Sand

Robert Plant & Alison Krauss - Raising Sand

Lucien Bubuis Trio & Marc Ribot - Ultime Cosmos

Lucien Bubuis Trio & Marc Ribot - Ultime Cosmos

Lucien Bubuis Trio & Marc Ribot - Ultime Cosmos

Rebekka Bakken - Morning Hours


Marc Ribot

Marc Ribot 의 저 기타를 한 때 갖고 싶어서 찾아봤었는데, 구할 수도 없을만치 오래된 빈티지 기타였다.

Marc Ribot 의 음악적 폭이 얼마나 넓은지는 제가 갖고 있는 음반들 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일이지만 찾아보니 그보다도 더 하더군요. 정말 뜬금없는 음반에 가서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Elton John, Elvis Costello, John Mellencamp 등입니다. 기타리스트가 여기저기 세션으로 출연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한다면 일단 그가 주로 하고 있는 음악이 어떤지를 들어본 후에 이야기할 일입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뮤지션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음반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들어야 하는데 mp3 로 듣는 음악이 그런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나요? 또 그렇게 깊은 취미를 위해 찾아듣는 일 자체가 mp3 라는 매체의 틀에서 가능하기는 할까요?

그저 유행에 따라 듣는 음악에서는 음악 듣는 이런 즐거움을 찾을 일이 거의 없겠지만 연주음악, 특히 재즈에서는 음반을 통한 음악감상이 필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여러 뮤지션들이 서로의 다양한 음반에서 연주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재즈에서 한정해서 따질 일도 아닌 것이, Michael Brecker 나 Pat Metheny 가 팝 음반에서 연주하는 걸 들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음반 재킷이 없다면 아주 민감한 귀가 아니고서야 듣고도 모르고 지날 일이죠.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1. 11. 27. 13:28

글을 쓴 이홍주는 예술에 쏟는 흥미가 줄지 않고 있음을 점점 더 부담스러워하는 재즈 애호가다. 대부분의 시간을 밥벌이에 전념하고 있지만,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지는 않는다.

월간 재즈피플 기고자 소개.

간간히 공연리뷰를 기고했던 월간 재즈피플에 기고자 소개 내용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직접 쓴 문장인데, 매번 좀 수줍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매번 원고를 낼 때마다 원고 끝에 적어서 보내줬었고, 시험삼아 살짝 바꿔봤더니 정말 그대로 반영되어 서점에 나오더란 말이죠. 다시 말해 잡지사는 저 글귀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던 거고, 저는 저 스스로를 소개하는 내용을 제가 쓴게 아닌 것처럼 3인칭 시점으로 적었던 거죠. 저 글에 담긴 의미는 글자 그대로의 "이어폰 음악 감상"은 아니었습니다만, 저 문구가 다시 떠오르게 된 건 제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게 된 시점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Sony D-777

처음 샀던 휴대용 CDP

Sony 의 혁신적인 휴대용 CDP D-777 모델입니다. 샵을 지나가다 무심코 보고 사버렸었죠. CDP 가 이렇게 작을 수 있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가 작용했을 뿐이었는데 이후로 한참동안 어딜 가든 항상 함께 다니게 됐습니다. 약간 특이하게 생긴 상자 모양의 가방을 사서 십여장의 CD 들과 함께 넣어서 다녔고 그덕에 "전자인간" 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었죠. 지금으로써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mp3 가 나오기도 전이었던 때니까요. 그러다가 픽업 수명이 다해서 더이상 쓸 수가 없게 되었고, 그 후로 휴대용 기기로 음악 듣는 일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한참 지나서 갖게 된 iPod 은 갈아 끼울 CD 들을 들고다닐 필요 없이 충분히 많은 음악들을 휴대할 수 있게 해줬죠. 하지만 이미 이어폰은 부자연스러운 게 되어버려서 아이팟은 거치형 스피커에 꽂아서 사용하게 되더군요. 이어폰이나 헤드폰, 그리고 휴대용 음악기기들이 아니라 저는 mp3 같은 매체도 듣기 불편합니다. 아마도 CDP 의 고장과 mp3 시대의 도래라는 것이 맞물려서 제게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는 일 자체를 그만두게 하다시피 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음악은 음반을 스피커로 들어야 제맛이죠.

그러다가 제게 새로운 휴대용 CDP 가 생겨났습니다. 맥시코와 쿠바 여행을 앞두고 항공경유지인 일본의 오사카 전자상가에 들러Sony D-NE20 을 샀고, 상자 따위들을 다 버리고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여행중에 만나게 될 CD 들을 mp3 로 아이팟에 넣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실제로는 쿠바와 맥시코에서 CD 를 구해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행중에 만난 음악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다 환상적인 음악이라고 우긴다면야 길거리 시장에서 넘쳐나는 불법 CD 들을 가지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쿠바나 맥시코가 그리 문화예술적으로 발전해 있는 곳은 아닙니다. 되려 그 반대죠. 그러니 양질의 음악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우리나라보다 더 불법 복제 CD 가 보편화되어있는 환경에서 그 음악을 양질의 CD 로 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짐만 되다시피 했던 CDP 는 여행중에 이미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충전이 되질 않는 고장이 생겨서 여행중에도 건전지를 끼워 사용했었는데, 그역시 건전지 사용량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문제로 여의치 못했죠. 결국 그상태로 수년을 묵혀두다가 최근에 서비스 센터에 맡겼는데, 허탈하게도 CDP 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소위 껌전지라고 부르는 충전지에 문제가 있다는군요. 지금은 Sony 가 CDP 를 더이상 만들지 않기 때문에 껌전지를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간단한 문제었다면 벌써부터 껌전지를 교체했으면 됐을 일이었던 건데 말입니다. 아마 고장이라고 판단했던 때부터 휴대용 음악기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고쳐서 쓸 의지가 없었던 걸 겁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CDP 가 필요해졌습니다. 앉아서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졌고 앞으로 더할 거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포장조차 뜯지 않은 많은 CD 들을 한번씩은 들어줘야 겠는데, 그러니 이동중에라도 들어야겠더군요. 그래서 결국 여분의 껌전지도 구했고, 인터넷에서 배터리 에러를 고치는 방법을 찾아 직접 고쳤습니다. 그러고나니까 기분이 좋아졌네요.

Sony D-NE20

남아돌아 붙여본 애플 스티커는 괜히 붙인 듯.

Sony D-NE20 분해

분해된 D-NE20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8. 24. 13:14
이 글은 지난 8월 20일 EBS SPACE 공감에서 벌어진 티어니 서튼 밴드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9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8월 20일 EBS SPACE 공감
티어니 서튼 Tierney Sutton(보컬),
크리스천 제이콥 Christian Jacob(피아노),
케빈 액스트 Kevin Axt(베이스),
레이 브린커 Ray Brinker(드럼)

“재즈는 자유로운 음악이고, 즉흥연주를 통해 이를 만끽하는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동의할 만한 것이, 스탠더드 곡들의 전통적인 명연들처럼 아직도 주제 뒤에 즉흥연주가 따르는 형식의 연주를 우리는 흔히 보고 듣기 때문이다. 그 경우 연주력과 곡 진행의 구성적 매력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재해석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티어니 서튼 밴드의 공연은 전통적인 연주뿐 아니라 바로 재해석이라는 면에서 차별성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현시대의 재즈만을 놓고 보았을 때, 재즈가 자유로운 음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치밀하게 짜인 복잡한 구성물로서, 처음 들을 때는 단순하게 다가왔다가도 곱씹어 들었을 때 정체를 드러낼 때가 많다. 현대 재즈를 감상 음악으로 두드러지게 만드는 요소들은 지나가면 없어지고 말 즉흥성이란 말로 얼버무려지지 않을 뿐더러, 단순히 자유가 느껴진다고 말하기엔 그 치열함에 비해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재즈가 변화하고 있는 순간 속에서 함께 살며 느끼기로, 현대 재즈는 작곡과 구성 그리고 해석이란 요소에 비중을 두고 들었을 때 더 큰 감동을 준다. 즉흥연주 또한 이런 요소들과 어우러져 연주됐을 때 효과가 크다.

티어니 서튼 밴드의 공연은 현대 재즈의 주된 감상요소 중 ‘재해석에 의한 독창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음반에서 듣던 것에 현장감을 더한 채 모든 곡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있었고, 밴드는 자신들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표현하는 데 열중하며 보란 듯이 무대 위에 서있었다. 스탠더드에 대한 이들의 재해석이 뛰어나다 할 수 있는 데에는 여러 부연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밴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장 17년을 함께 해온 밴드에 의한 편곡은 프로젝트 리더의 주도에 의한 해석보다 훨씬 아기자기한 결과를 나았고, 개개인의 연주력에 의존하지 않은 채 다른 밴드의 음악과 차별화시키고 있었다.

현대 재즈의 음악적 지향과 가치를 대중성에 놓고 보면 치밀함이나 독창성 같은 감상 요소들에 대한 언급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티어니 서튼이 세 차례나 그래미 후보로 올랐을 뿐 막상 수상하지는 못한 까닭이 거기에 있잖을까?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5. 9. 20:30


동물원에 가면 뭔가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래서 가보고 싶게 만드는 노래. 동물원에서 어떤 일이든 벌어진다고 했다는 가사 속의 누군가(someone),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순진하게 믿었던 걸 수줍어하면서도 노래로 만들어 들려주고 있는 사이먼. 거기 동물원에 가면 평소엔 없었던 이야기들,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다고 한다.

+

틀에 박힌 이야기들과 똑같은 반응들이 순서만 달리 배치되는 걸 매일매일 격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에 무덤덤해지기엔 너무 예민하고, 지겹다고 느끼고 있는 걸 감추기엔 너무 솔직하고, 그냥 거기에 동화되기엔 내가 너무 강한 나는,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데 이야기에 쓰이는 소재들과 어휘들을 잊어가고 있다.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데 이야기가 재미있는 상대방이 절실하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5. 8. 00:29

이 글은 지난 4월 8일 EBS SPACE 공감에서의 "3색의 재즈 스펙트럼"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5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4월 8일 EBS SPACE 공감
송영주,배장은(피아노), 써니킴(노래), 김인영(베이스), 숀 피클러(드럼)

올해 4월로 EBS 스페이스 공감이 개관 6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면서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세 여성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기회가 마련됐다. 피아니스트 송영주, 배장은과 보컬리스트 써니 킴이 그 주인공들인데, 여기에 베이시스트 김인영과 숀 피클러(Shawn Pickler)의 드럼이 더해져 듀오에서부터 두 대의 피아노가 주도하는 퀸텟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편성을 들려줬다.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그간 EBS 스페이스 공감을 포함해 여러 무대에서 접해왔던 뮤지션들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사리 카페에서 만나게 될 것 같은 음악인들을 대하는 상투적인 느낌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건 공연 전에 머리로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막상 공연에서는 알면서도 속게 되는 마술 같은 홀림을 경험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번 공연이 마술 같았다는 비유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른 얘기지만, 마술쇼는 얼마나 뻔한 내용을 담고 있던가. 커다란 상자에 들어간 미녀의 허리가 곧 잘릴 거란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허리가 잘린 미녀는 말도 하고 심지어 잘려진 몸이 따로따로 움직일 거란 것도 안다. 그게 다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커다란 칼이 상자를 두 동강 내는 순간 더 실감나게 비명을 지르는 건 관객들이다. 재즈 공연도 쇼 비지니스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어느 공연이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획과 연출의 중요성을 빗대어 생각해볼 수는 있다. 수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양질의 공연과 방송을 제악해온 EBS 스페이스공감이 지난 6년 동안 올곧게 걸어온 것처럼 말이다.

그중 특별한 기획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재즈, 클래식을 품다'에서 인상 깊었던 '나비부인'을 이날 송영주와 배장은의 듀엣으로 다시 듣게 된 건 반가운 일이었다. 이어진 'Monk Medley' 에서 두 사람은 델로니어스 몽크를 모창하는 듯한 연주로 이 거장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영화 <Out Of Africa>를 통해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 익숙함 때문에 진행될 멜로디가 미리 떠오르는 곡이기도 하지만, 재즈 연주 속에서 이어질 멜로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전달됐다. 이날따라 써니 킴은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을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발성을 들려줬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작년에 가진 단독 공연 때도 연주됐던 'Everywhere' 의 경우 그런 발성이 보컬 이펙터와 시너지를 이뤄 또 다른 느낌으로 연출됐다. 전반적으로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를 펼쳤고, 특히 송영주의 'Yellow Brick Road' 에서 인상적인 드러밍을 들려준 숀 피클러에게는 환영인사를 전하고 싶다. 국적을 떠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좋은 연주자들이 많아지는 건 당장의 반가움 이상으로 좋은 일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의식적으로 공연에 너무 빠져들지 않으면서 어떤 특징적인 소재들을 찾아내고 연주 내내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을 이어가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느새 음악에 정신을 놓게 되는, 머리로는 어떻게 안되는 곤란한(?) 공연이었다. 이는 공연에 홀려버렸다는 앞서의 말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아껴 모든 용돈으로 음반 한장을 후회 없이 사기 위한 아슬아슬한 고민들을 동반하며 음악에 빠져들던 필자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줬던 매체는 바로 라디오였다. 이제 라디오에서 그런 음악방송이 사라지다시피하고 있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방송이 호기심어린 세미마니아들에게 대안으로서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들이 점차 자신의 취향에 깊이를 더해 마니아가 되었을 때 결국 무대까지 찾게 되지 않을까. EBS 스페이스 공감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아는 이들이 찾는 '무대'가 있는 한편, 음악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에게 깊이 있는 음악을 소개해주는 '방송' 또한 동시에 만들어진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그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면서, 또 앞을 향한 씨앗이 되기도 할 거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4. 29. 00:22
우연한 기회로 알게된 공연이었습니다. 일부러 찾아다니는 공연이 대부분인 '비싼' 저로써는 우연한 기회로 발걸음한다는 것이 단순 호기심 정도의 의미는 아니죠. 게다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다른 나라 사람이 흉내내는 정도의 공연처럼 어설플 것 같다는, 그래서 후회하게 될 수 있다는 위험요소가 있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평판이 좋은 인도 레스토랑이라고 가보면 전혀 인도음식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인도 레스토랑을 흉보거나 하진 않았죠. 인도의 느낌을 얻는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가 오늘 공연에서 기대했던 건 무용 자체에 대한 감흥보다는 인도의 향취만이라도 느껴보고자 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도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을 것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무용수 금빛나의 '오디시'는 인도 전통의 것을 흉내내는 수준의 설익거나 어설픈 것은 아니더군요. 저는 사실 '오디시' 무용을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금빛나의 무용이 어설픈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것을 처음봤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군요. 말하자면 무용 그 자체가 즐길 수 있을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을 때, 그것이 '오디시' 라는 이름을 하고 있건 다른 종류건 상관 없이 훌륭한 것이고, 그런 훌륭한 몸짓이라면 이미 뭔가를 흉내내는 수준의 예술인에게서 나오는 훌륭함일 수가 없죠. 제가 만약 '오디시'에 대해 일각연이 있거나 혹은 오늘 본 것과 비교해볼 수 있는 경험이 있었더라면 오리지널인지 아닌지, 또는 전에 본 것과 어떻게 다른지에 더 얽매여서 보게 됐을 수 있기 때문에 되려 무지 상태에서 본 것이 판단하는 데 더 좋았다라는 거죠.

사실 무용이란 분야 자체가 낯설기도 한데, 이번 공연을 보면서 춤과 무용이란 게 어떻게 다를까 생각했습니다. '오디시'는 무용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 거죠. 사전을 찾아봐도 제 생각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데, '오디시'는 흥에 겨워서 추는 춤은 아닙니다. 의도와 감정을 음악에 맞춰 드러내는 '오디시'는 바로 무용인 거죠. 오늘 제가 본 '오디시'는 이야기이면서 연주기도 했습니다. 마치 입으로 이야기를 말해주기라도 할 듯한 몸동작들의 연속이었고 음악과 함께 움직임과 동시에 그것에 섞여 연주하기도 하더군요. (발목에 작은 종 꾸러미를 차고 있어서 마치 탭댄스 처럼 발 장단에 따라 소리가 납니다.) 얼굴 표정은 물론 눈동자의 방향까지도 연기하는 섬세한 예술이었습니다.

음악은 녹음된 걸 틀었기 때문에, 라이브 연주가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시타르 연주자를 붙잡고 악기를 배울 방법을 물어볼 작정이었기 때문에 더 실망스러웠죠. 하지만 음악은 무척 좋더군요. 나중에 따로 연주된 음악이 뭐였는지 알아낼껍니다.

여담이지만, 금빛나의 '오디시' 공연은 지난 일요일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한 번, 오늘 수요일 용인시여성회관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치러졌습니다. 굳이 평일이면서 더 멀기도 한 용인시를 찾아간 이유는, 요즘 그게 뭐던간에 문화행사라면 엄마들이 시끄러운 아이들을 몰고다니는 게 보기 싫어서였어요. 예상대로 용인시여성회관은 자리도 넉넉하고 한산하니 좋더군요. 이곳저곳 전시장들 따위에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은 문화행사 장소에 아이들을 풀어놓기만 한다고 교육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스스로 즐길줄 아는 취향을 갖춘 부모를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는 걸 깨달았으면 합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2. 23. 13:43
이 글은 지난 2월 5일 EBS SPACE 공감에서의 송준서 트리오의 "강렬한 자화상"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3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2월 5일 EBS SPACE 공감
송준서(피아노), 김인영(베이스), 정승우(드럼)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피아니스트들이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연주한 연간 기획 시리즈 "재즈, 클래식을 품다"가 펼쳐졌다. 그 마지막 무대였던 "근현대 음악"의 피아니스트 송준서는 다른 연주자들과 어딘가 달랐다. 네 명의 여성 피아니스트들 속에서 남자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나, 그가 다뤘던 현대음악의 상대적 낯설음도 분명 작용했을 거다. 잠시 생각해보면 '자화상'이란 다분히 회화적인 소재다. 그림이 종교나 왕권을 표현하던 수단이었을 때도,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금기시됐거나 억압됐을 때도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만큼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묻어난 것이 자화상이다. 송준서의 자화상 같았던 이 무대는 어렴풋했던 그의 색깔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스퍼트까지 숨차게 달리는 듯한 그의 연주는 예쁘기보단 힘 있고 굵직한 리듬과 멜로디가 묵직한 터치로 가득 채워졌다. 'Windows'나 'Spain'이 포함돼 있기도 했지만 칙 코리아나 곤잘로 루발카바 같은 부피감과 섬세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곡 스타일의 피아노 독주로 마무리해 대비 효과를 준 쇼팽의 'Preludes No.4 in E minor'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는데,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스타일을 만나게 된 반가운 느낌이었다. 그의 즉흥연주에선 귀에 익은 클래식 멜로디들이 들키지 않을 만큼 들리기도 했다. 송준서는 클래식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소재로 자신의 색깔을 표현해내는 연주자다.

솜씨 좋은 사람이라도 음악을 글로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다시 오지 않는 순간에 대한 공연리뷰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이 날처럼 인상 깊은 연주를 접했을 땐 한 장의 앨범을 건네주듯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없음이 큰 아쉬움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에 대해서는 그게 가능하다. 녹화된 방송을 보는 방법도 있고 다시보기도 있기 때문이다. 송준서의 <Portrait> 앨범 레퍼토리로 연주된 공연이었지만 앨범과 또다른 맛이 있었다. 본방사수로 필자와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2. 3. 22:23
최근 음반 시장에 유행 중 하나가 박스셋입니다. 도이치 그라마폰 111주년 기념 박스셋, 블루노트 70주년 박스셋 처럼 특정 레이블에서 만들어낸 박스셋이 있는가 하면, 비틀즈 리마스터 전집, 마일즈 데이비스 콜럼비아 전집, 가장 최근의 정경화 40주년 기념 전집 등 특정 뮤지션들의 전작 컬렉션 박스셋들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유명 레이블을 대표하는 음반들의 모음이거나 음악적 시기나 장르를 통째로 대표할만큼 유명한 뮤지션의 음반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홍보도 많이 이뤄지고 예약판매까지 이뤄질만큼 인기가 좋죠.

정경화 데카 데뷔 40주년 기념반

반면 알게 모르게 시장에 나오는 박스셋 또는 그에 준하는 세트 기획상품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 우리나라에 수입조차 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않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40주년을 맞은 '69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다양한 패키지 구성의 박스셋이 출반됐죠. 이경우는 우리나라에도 감독판 DVD, 편집된 LP 또는 CD 세트 정도가 들어와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더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으로 기획되어 발매되었죠. 또다른 예시로 Pixies 의 박스셋 Minotaur 와 Henry Cow 40주년 박스셋이 있는데, 이미 전작 컬렉션을 둔 상태임에도 개인적으로 무척 갖고 싶은 박스셋들이지만 둘 다 가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있죠. 이런 전작 컬렉션 박스셋까진 못되더라도 뮤지션을 대표하는 3 장의 음반을 묶은 트릴로지Trilogy 박스셋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이랬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세트 구성을 이루는 기획음반들이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경향을 알게 해줍니다.

Woodstock: 3 Days of Peace & Music Director's Cut

Pixies "Minotaur"


박스셋 상품들 중 차라리 잘 알려지진 않았고 게다가 고가이기까지하지만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경우는 다릅니다만, 유행 같은 저가형 박스셋 발매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음반 시장이 끝물 장사를 떨이로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매우 짙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치 폐업 정리 세일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2. 2. 00:27
Pat Metheny 의 새 음반이 발매됐습니다. 참 대단한 상상력이다 싶지만, 어쨌든지 음악이 좋아야 하는 겁니다. 눈으로 봤을 때 신기하다고 현혹되어 좋아한다면 그로써는 써커스를 한 샘이 되고 스스로 오욕이라 여기겠죠. 언제던 누구던 음악이 실망시키면 있는 그대로 실망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확률적인 믿음만 있을 뿐이죠. 그러니 새로운 "Orchestrion" 도 어서 음반으로 음악을 들어봐야 할 일인데 말입니다. 수입음반이 아직 들어오질 않아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공연은 티켓 오픈하자마자 예매했고요.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1. 31. 17:10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두 번 녹음했습니다. 그래서 말러 전집이 도이치 그라마폰에서 하나, 소니에서 하나 이렇게 두개 존재하죠. 이중 DG 녹음은 구스타프 말러 녹음들을 통털어서 가장 좋은 평을 듣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소니에서 나온 전집보다 대중들의 선호도가 높은 건 당연하고요.

그런데 DG 전집도 두가지 버젼이 있습니다. 16CD 가 박스로 된 게 있고 나중에 나온 건 사진에서처럼 6CD, 5CD, 5CD 로 세개의 박스로 나뉘어서 판매되며 가격도 더 싸졌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버짓budget 전집이라고 라고 부르죠. 내용도 음원도 같고 박스 디자인만 다르며, 버짓 세트와 마찬가지로 세개의 박스로 구성된 걸 아웃케이스로 씌운 것이 오리지날 전집세트죠. 오리지널 전집에는 꽤 두꺼운 해설집 하나가 더 들어있는데, 버짓 전집에는 해설집이 각각의 박스에 따로따로 들어있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오리지널 전집은 번스타인과 말러가 마주하고 있는 흑백 인쇄가 꽤 멋있지만 가격 차이가 몇 만원 나기 때문에 이름 그대로 버짓 전집이 실리적인 선택이죠.

소니뮤직에서 나온 말러 전집은 작년 2009년에 리마스터링 되어 10만원도 안하는 가격에 12CD 로 재발매 되었습니다. 셋 다 구하기 어렵습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1. 27. 01:19
바이얼리니스트 정경화의 데뷔 40주년 기념 전집이 나왔습니다. 5천개 한 정 약 한 달 전부터 예약주문을 받았다는데 예약주문으로만 3천개 정도가 팔렸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클래식을 매우 즐기는 건 아닙니다. 정경화에 대한 흥미는 있었지만 사고 싶은 음반들은 언제나 넘쳐나기 때문에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죠. 그런데 이번 전집 발매는 구매를 위한 우선순위를 앞으로 껑충 뛰어오르기에 충분했어요.

첫번째 이유는 피아니스스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 박스셋의 한정발매에 대한 전례입니다. 더이상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고 워낙 소강가치가 높다보니 중고시장에도 나오질 않습니다. 나오더라도 가격이 상당해서 왠만큼 바라지 않고서야 새 걸 살 때만큼의 구매력을 발휘하긴 어렵겠죠. 이번 정경화 전집도 5천개 한 정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야 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가격입니다. 19장의 CD 와 1장의 DVD 로 구성된 전집의 정가가 163,700원 입니다. 물론 온라인 할인가에 각종 쿠폰 등을 더하면 13만원 정도에 살 수도 있죠. 그녀의 데타 레이블 전작 컬렉션을 하려면 그보다 두배 이상의 돈이 들 게 뻔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도 구매력을 자극하죠. 전집을 사지 않고서 맘에 드는 것만 샀을 때 7,8 장 정도만 골라도 전집의 가격이 돼버립니다. 물론 절판되어 개별적으로 구할 수 없는 음반도 있으니 그걸 세번째 이유로 삼아도 되겠죠.

다른 이유는 개봉을 하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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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은 두꺼운 화보집 하나와 세 개의 gate-folded 재킷으로 되어있고, 각각의 재킷에는 미디어 20장이 한가득 나뉘어 꽂혀있습니다. 화보집은 한글과 영어로 설명된 내용들과 다양한 사진들이 수록되어있고 꽤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올해 5월 4일 예술의 전당에서 정경화 협연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습니다. 손가락 부상 이후 5년만의 무대 복귀라죠. 왠만한 표 값이 정경화 전집 하나보다 비쌉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10. 1. 25. 09:27

이 글은 지난 1월 5일 EBS SPACE 공감에서의 "얘들아, 재즈를 부탁해"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1월 5일 EBS SPACE 공감
김인영(베이스), 홍성윤(기타), 한웅원(드럼), 박진영(피아노), 강채리(피아노)

작년 재즈피플 12월호에 "재즈야, 우리 아이를 부탁해"라는 기획특집이 실렸다. 글을 쓴 재즈비평가 김현준은 자라섬국제재즈콩쿨의 결선 무대에서 만난 두 어린 피아니스트 박진영과 강채리를 조명하며 그들이 자라왔고 앞으로 자라날 우리 환경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기획의원으로 있는 EBS 스페이스 공감은 이 글의 제목을 반전시킨 "얘들아, 재즈를 부탁해 - 미래를 짊어진 한국의 재즈 악동들" 이란 타이틀의 공연으로 2010년 첫 무대를 꾸몄다. 지면을 통해 보여줄 수 없던 부분을 메워주려는 기획의도가 엿보였다. 한국 재즈에 대한, 그 미래를 책임질 연주자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채 말이다.

박진영과 강채리 뿐 아니라 작년과 올해 재즈피플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된 한웅원, 김인영, 홍성윤 등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한국 재즈의 미래를 짊어질 연주자들이 물론 이들 뿐은 아닐 것이다. 김인영, 홍성윤, 박진영, 강채리는 자라섬국제재즈콩쿨의 결선에 오른 연주자들이고, 한웅원은 작년 재즈피플이 선정한 라이징 스타 중 한 명이다. 공연은 의도한 듯 다양하게 계획된 편성을 통해 모두의 개성을 잘 보여주었고, 한국 재즈의 미래를 조망해보는 기분을 갖게 했다. 말하자면 신년 사주팔자랄까.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이날처럼 이렇게 다양한 앙상블을 다시 만나면서 흐뭇했던 점괘를 떠올리게 되길 바란다.

보틀렉 슬라이드 기타로 스타일리쉬하게 시작된 에스베욘 스벤숀의 'Tide of Trepidation'이 공연의 첫 순서였다. 개성 있는 편곡에 이어 기타리스트 홍성윤은 자작곡인 'Not Yet'을 들려주었는데, 15박자의 이 곡도 그랬지만 이후 다른 이들과의 연주에서도 독특하고 인상적인 박자감각을 선보였다. 그의 트리오 멤버인 정진욱과 김민찬의 연주도 단 두 곡으로 그치기엔 아쉬울 만큼 좋았다. 쿨한 소리를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드러머 한웅원은 능청스럽고 장난기 어린 잔재미까지 더해줬고, 최근 들어 수차례 무대를 접하면서 드디어 보잉을 처음 들려준 베이시스트 김인영의 독주 'Bye Bye Blackbird' 또한 인상 깊었다.

피아노 솔로를 사이에 두고 연결된 접속곡 형태의 'King of Spade/Queen of Heart'에서 박진영은 후반으로 갈수록 곡의 구성 면에서 극적인 맛을 더해가는 작곡과 연주를 보여줬다. 뒤에서 독주로 연주된 강채리의 'Hand Stand'가 때 묻지 않은 소녀의 감성으로 완성됐다면 박진영의 감성은 상대적으로 음울하다. 왠지 그 모습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나이이기에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국내에선 이런 지향을 가진 연주자가 많지 않아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데 음악적인 강점이 될 수 있겠다. 한 대의 피아노로 박진영과 강채리가 함께한 즉흥연주는 연주 자체의 완성도보다 그들 각자의 개성을 대조해보는 기회가 됐다. 미려한 멜로디보단 무거운 감성과 곡의 구성적인 면에 강점을 드러내는 박진영이 피아노의 왼편에, 스윙 감각이 돋보이는 발랄한 강채리가 오른편에서 연주하여 이 두 피아니스트들의 서로 다른 개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제 막 자아가 완성돼 가는 10대들이 과연 한국이란 나라에서 개성을 발산하는 게 가능한지 갸우뚱해지지만, 아이들에게 똑같은 억양의 웅변을 쏟아내도록 가르쳐놓고 그 안에서 옥석을 기대하던 게 이젠 옛날 일이구나 싶어 반가웠다.

필자는 작년 "퓨쳐스 앙상블 2009"의 공연 리뷰에서 어느새 정착된 한국의 재즈교육 환경과 거기에서 자라난 세대에 대해 설레는 기대감을 이야기했다. 언젠가부터 재즈 공연에 있어서만큼은 해외 연주자의 내한 공연보다 국내 연주자의 무대를 더 즐기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서 재즈가 대중들에게 더 즐거운 일이 될 거란 점괘는 바로 이런 무대를 근거로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다. 피곤한 몸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하루짜리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찍고' 가는 해외 유명 연주자들 덕분이 아니란 말이다. 물론 이 신세대들의 연주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미완의 단점들은 '발전 가능성'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이는 한국 재즈, 혹은 어린 연주자들에 대한 관대한 시선이 결코 아니다. 이들의 연주를 오늘, 내일만 볼 게 아니기 때문에 갖는 그럴 듯한 기대감이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12. 21. 19:12
이 글은 지난 12월 2일 EBS 스페이스공감에서의 오정수밴드 공연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2010년 1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BS Space 공감 2009년 12월 2일
오정수 어쿠스틱 듀오 오정수(g), 김창현(b)
오정수 일렉트릭 밴드 오정수(g), 배장은(k), 김지석(as), 최은창(b), 이도헌(d), 김민채(vo)


악기의 톤을 테크닉으로만 본다면 그건 키스를 글로 배운 것과 같다. 기타의 경우 손의 자세, 손톱의 모양, 탄현 방법 등 물리적인 요소들도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 좋은 톤을 만드는 건 8할이 음악에 대한 느낌을 살리는 일이다. 다른 악기도 방법이 다를 뿐 이치는 같다. 그렇기에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톤이란 그것이 어쿠스틱이거나 전자악기거나 상관없이 결국 음악을 만드는 요소로서 다르지 않다. 나아가 테크닉 또한 음악 위에서 만들어지기에 연주를 해보지 않은 대중들도 그 차이를 느끼게 되는 거다.

이날 EBS 스페이스 공감의 무대에는 좋은 작곡과 해석을 바탕으로 최선의 톤을 빚어낸 연주자가 있었다. 오정수는 명징한, 기억에 잘 남는 작곡을 보여준다. 이날 연주된 'Song for Nature'나 'New York' 같은 곡에서는 다이내믹하게 전환되는 구성과 리듬이 돋보였고, 대부분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그 특징들을 잘 살린 솔로와 톤을 들려주었다.

공연은 베이시스트 김창현과의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됐다. 오정수의 <Invisible Worth> 에 수록된 곡들이 연주됐는데 음반에서 조지 가존(George Garzon)이 연주한 주선율들을 오정수의 어쿠스틱 기타로 들을 수 있었다. 이후 배장은의 글루미한 피아노 전주와 오정수의 심장 고동소리 같은 기타효과음을 시작으로 피아노-기타 듀오의 'Throughout'이 연주됐다. 그에 이어진 즉흥연주부터는 최은창, 김지석, 이도헌 등이 가세한 밴드로 연주됐고, 중간에 객원보컬 김민채가 등장하는 등 다채로운 편성을 보여줬다.


연주는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를 더했지만, 'Throughout'부터 이어진 즉흥연주와 'The Weak' 까지의 연결에서는 관객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공연 프로그렘에는 'Throughout', 'Free Improvisation', 'The Weak'로 구분돼 있었는데, 오정수는 이 셋을 분위기 전환만으로 이어붙이면서 각각의 곡을 명확하게 마무리 짓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낯설음이었다. 다양한 공연을 많이 경험해도 그런 가능성을 이성적으로 머리에 넣고 있거나 혹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훈련된 감상자는 드물다. 관객들을 눈치9단으로 단련시켜주는 자유즉흥 또는 구성즉흥 무대라면 모를까, 이날의 관객들에게서 연주자의 의도에 대한 인사이트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곡들이 전환되며 이어지는 두 개의 공간에서 단 한명도 박수로 흐름을 끊지 않았다는 건 무척 고무적이었다. 짐작하건데 누군가 기침소리라도 냈다면 그것을 핑계 삼아 관객들은 참았던 박수를 터뜨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 두 번의 정적 속에서 오정수 밴드가 의도한 음악에 집중하며 침묵을 지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들의 의도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 이러한 우연은 까치설날이나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바란다고 해서 이뤄지지도 않고, 예측 후엔 틀리기 마련이며, 아니라도 즐거움을 망치진 않는---즐거움이었다고나 할까?


주목받는 뮤지션은 음악적 행보에 '발전'과 '변화',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대중의 기대에서 이내 멀어지게 된다.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것만큼이나 작품을 신중히 선택해서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영역을 넓히듯---하다못해 성형수술을 통한 '변신'도 '변화'로 봐주자.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대중이므로---재즈 또한 발전과 변화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생각이다. 변화는 발전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그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짧은 인생에서 발전보다는 변화의 한계점이 더 멀기 때문에 변화에는 시도의 의미도 반영될 수 있고 완성도에 대해 관대하기도 하다.

오정수는 이날 공연에서 두 가지 편성을 보여줬고, 그 자신이 곡마다 연주의 변화를 준만큼 다른 멤버들과 함께한 음악 색깔 또한 다양했다. 공연이 짧게 지나갔던 것은 다행히도 그런 의도된 변화가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냈고 지루할 틈 없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사실 더 많은 걸 보여주려는 부담에서 자유로웠을, 예전에 마주한 클럽 공연에서 오정수는 더 인상 깊었다. 하지만 앞으로 오정수의 음악이 재즈 팬들을 '숨죽이게 할' 발전과 변화의 연속일 거라는 기대를 품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12. 19. 16:19
70CD + 1DVD 로 구성된 Miles Davis The Complete Columbia Album Collection 을 샀습니다. 전에도 컬렉션 중에 마일즈 데이비스가 가장 많았지만 이제는 다른 뮤지션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압도적인 게 되버렸네요.

컬럼비아에서 나온 음반들만 박스셋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전부터 가지고 있던 컬럼비아 음반들을 정리했습니다. 일본에서 발매된 LP 미니어처 시리즈와 리마스터드 수입음반, 일반 수입음반, 그리고 Plugged Nickel 실황 박스셋으로 나눠서 팔았는데 번거롭지 않게도 한 사람이 모두 사갔죠. 게다가 중고로 판 돈이 새 박스셋을 사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남는 장사였다는 느낌은 안드네요. 일단 한 장 한 장 고민해가면서 사 모은 음반들에 묻어있는 제 손때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십수년 전에 샀고 감격스러워해가며 들었던 Bitches Brew 음반을 2CD 임에도 라이센스 음반이라는 이유로 일관 판매시의 '덤'으로 처릴 해버린 게 안타깝네요. 또, 8장짜리 Plugged Nickel 박스셋은 새로 살 박스셋에 고스란히 들어있을 걸로 믿고서 팔았는데, 새로 산 박스셋에는 한장짜리로 편집된 버젼이 들어가 있더군요.

재킷에 CD 가 들어있는지나 확인했을 뿐, 저걸 언제 다 듣겠다 싶습니다. 결국 괜한 짓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