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무렵에 도착한 숙소는 무척 생경했다. 사실 공항을 빠져나온 후부터 계속된 그 느낌은 낯설음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서울과똑같은 건 어둠 뿐이었다. 낯선 피부의 사람들이 오고가고, 지나치는 나무들이 평소 보던 것들과 다른 모양을 하고있거나 서울보다 짙은 매연에 코가 찡한 곳이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그것들이 평소 생활했던 곳처럼 정돈되어있지 않고 어지럽게 흩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둠이 가린 채 첫 만남에 그것들을 다 보여주지도 않고 있었다. 내가 익혀왔던 살아가는 방법들이 이곳에서는 아무짝에 소용없을 것만 같았다. 그냥 똑바로 길을 걷는 일조차도 말이다.

한참을 걸려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역시 그랬다. 창문 하나 없이 벽 네 개와 출입문 하나, 그리고 침대가 전부인 걸 방이라고 불러보긴 처음이었다. 문을 걸어잠그고 침대에 누웠을 때 천장에 메달린 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선풍기를 발견했다. 비록 사물이었지만 나말고도 이곳에서 숨을 내뿜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는 걸 발견하고서 약간은 안심했다. 지금은 12월, 이내 선풍기도 낯설어졌다. 다행히 긴장감을 잠재울만큼, 나는 피곤했다. 쿠션이 다 망가져서 스폰지 같았던 침대 메트리스가 내 몸을 빨아들였다.





잠에서 깨었을 땐 아직 어둠이 가시기 전이었다. 어제 나는 이곳 빠하르간지 메인바자르(Main Bazaar)의 길가에 사이클 릭샤(인력거)를 세워놓고 잠들었었다.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종종 그렇게 하곤 한다. 그 이름처럼 이곳이 시장이긴 하지만, 사실 물건 사러온 손님들보다 훨씬 더 큰 돈벌이가 되는 건 여행자들이다. 뉴델리의 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묵고 있거나 인접해있는 "뉴델리 기차역" 에 드나드는 여행객들로 언제나 넘쳐난다. 여행자들이 흥정에 익숙해져있긴 하지만 여전히 나같은 릭샤 왈라(꾼)들에게 후한 편이어서 다른 곳보다 이곳에서의 벌이가 좋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깍았을지언정, 적어도 시장 손님들보다는 많이 준다.

하지만 오토릭샤들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내가 먼저 입질을 해도 내 뒤에서 오는 오토릭샤 왈라에게 손님을 빼앗기는 일들이 점점 더 자주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들에겐 오토릭샤 요금마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더 편한 수단을 선택하는 걸 꺼다. 그게 더 편하다는 것은 더 빠르고 안락해서일 수도 있지만, 힘들여 페달을 구르는 나를 등 뒤에서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릭샤 페달 밟으며 산다는 게 조금씩 더 어려워진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끄는 릭샤를 델리에서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밟아 가고 있잖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오토릭샤가 일을 나오기 전부터 난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거다.



시차를 극복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첫날부터 부지런을 떨 작정이긴 했지만 새벽 네시, 그렇게 잠을 일찍 깰 수 있었던 건 절반은 내 탓이 아니다. 침대에 말똥말똥 뜬 눈으로 여전히 돌고 있는 천장의 선풍기를 바라보며 한참을 있었지만 다시 잠들거나 하진 못했다. 내 일상 속의 평범한 아침은 이런 나를 낯설어할 거다. 천천히 그날의 채비를 하고서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는데 곧바로 도로 들어가버릴 뻔했다. 밖은 너무나 어두웠다. 창문이 없는 방에서 차고 있던 손목시계로만 가늠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시계가 고장인가 싶을만큼 현실감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뉴델리역에 가서 바라나시로 갈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고, 그전에 여행 여정을 짜는 데 무척 요긴하게 쓰일 'trains at a glance' 라는 기차시간표 책도 사야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빠하르간지란 곳에서 얼마 멀지 않다고 가이드북에 씌어있긴 했지만 그게 어느 방향인지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공항에서 날 픽업했던 사설택시가 이곳이 내가 예약한 숙소라며 데려다줬을 뿐, 난 내가 지도 위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됐다. 게다가 현위치가 어딘지 안다 해도 이런 어둠 속에서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릭샤라는 걸 탈 시기가 온 거다. 사람이 끌거나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가 끈다는, 인도에 가면 반드시 타게 된다는, 여행자의 발이 되어준다는, 감을 잡아가며 흥정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는 인도의 대중교통수단 말이다. 아직 인도 땅을 두 발로 걷기도 전이라 조금 이르고 어쩐지 준비가 덜 된 것 같긴하지만.



하루 일과중에 틈틈히 시간 날 때마다 잠을 자기 때문에 밤이라고 해서 그리 긴 시간을 잠들어있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릭샤를 침대 삼아 잠드는 건 나의 일상이 돼버렸다. 땅바닥에서 잠드는 게 더 편할진 모르지만 그랬다가는 릭샤를 도난당할지도 모른다. 임대료를 내고 쓰는 처지에 그건 절대 있어선 안되는 일이다. 고향을 떠나 돈을 벌러 델리에 와있는 같은 처지의 아이들끼리 모여사는, 그래서 집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은, 숙소에 가봐야 벽과 천장으로 가려져있을 뿐 잠자리로써 딱히 더 나을 것도 없다. 잠들기 직전까지만 참아내면 그만일 정도로 밤 추위에 익숙해진 후부터는, 그날그날 일이 끝난 곳이 내 집이고 잠든 곳이 내 방이 되어줬다.



밖엔 아무도 없었다. 땅에서 발을 뗄 때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모험 같이 느껴졌다. 릭샤를 찾아야 했지만 돌아오는 길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내 앞보다 뒤가 더 어두워졌을 때 쯤 사진으로만 봤던 사이클릭샤를 발견했다. 두 명의 손님을 앉힐 수 있는 수레가 자전거 뒷바퀴 대신 고정되어있었다. 길가 담벼락 옆 어둑한 곳에 세워져있었는데, 멀찌감치서 처음 발견했을 때는 주인 없이 그냥 서있는 줄 알았지만 조금 더 다가가서 보니 그 위에 사람이 누워있었다.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 위 허리를 받치고서 다리는 핸들에 걸친 채 어깨와 머리를 손님용 안장 쿠션에 눕힌 모습이었다. 그런 자세가 무척 익숙해보였고, 그가 자전거 프레임처럼 말랐기 때문에 어울려 보이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편안해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잠들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어두운 색 옷 아래로 앙상한 검은 발목과 맨발이 보였다. 나는 마치 그에게 다가가려던 게 아니었다는 듯 발길을 돌렸다. 어둠 속에 그의 하얀 눈이 돌아선 나를 바라보며 어딜가냐고, 데려다 주겠다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쫓아오거나 하진 않았다. 휴...



첫 손님을 발견했다. 나를 부르지도 않은 그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맞은편에서 또다른 사이클릭샤 한대가 나를 빗겨 갈 것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짓으로 그를 불러세웠다. 방법은 택시를 부를 때와 같았다. 단지 손을 흔드는 소극적인 정도로도 적극적인 그들이 반응하게 만드는 것. 익숙한 삶의 방법 중 하나가 여기서도 통한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릭샤 왈라는 스무 살도 채 안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 걸 기대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미국인을 만난 것처럼 한껏 발음을 굴리며 외쳐댔다. 되지도 않는 원어민 흉내가 내 딴에는 일종의 배려였달까? (아니다, 그건 그저 상습화된 가식인 듯.)

"아임 고잉 투 뉴델리 스테이션"



 100루피를 불렀더니 그는 멈칫했다. 당황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보통 흥정을 시작할 때는 황당하게 하는 게 우리의 관례다.



어제 내가 머무른 숙소가 250루피었는데, 여기서 멀 것 같지도 않은 뉴델리역을 가기 위해 100루피는 말도 안된다. 하지만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어떻게 흥정을 해야 하는 건지 감도 못잡고 있는 상태여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난 아직 '루피' 에 낯설었다. 또다시 열씸히 발음을 굴려가면서 릭샤왈라가 알아듣던 말던 떠들어댔다. 기차역이 여기서 멀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 100루피는 너무 비싸다고 말이다. 그는 바로 출발해버릴 것 같은 자세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알아듣고도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깍나 싶어 말하기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마음 속으로 가격을 정했다. 그리고 그에게 30루피를 불렀다.



흥정엔 긴 말이 별로 필요 없다. 그저 짧게,

"50루피"



난 아까 했던 말들을 반복하고만 있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둥, 50루피는 너무 비싸다는 둥 말이다. 손가락을 펴보이며 5루피를 얹어줬다.

"35루피"

그렇게 그는 내 첫번째 릭샤 왈라가 됐다.



개시부터 35루피면 괜찮다.



릭샤 왈라는 나를 태우고서 내가 걷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릭샤가 덜컹거릴 때마다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한 채 서서 힘겹게 페달을 구르는 그가 더욱 힘들어 보였다. 조금씩 주변이 밝아지면서 내 지각은 어설프게 내가 어디쯤 와있나를 판단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뉴델리역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면서 느낌상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어차피 같은 돈인데 멀리 돌아갈 것 같진 않지만, 왠지 릭샤 왈라가 자전거를 모는 방향이 아까 들어왔던 방향을 돌아서 반대로 향하는 것만 같다.



걸어가도 될 거리를 35루피나 받고 가자니 어쩔 수 없었다. 오토릭샤를 탔더라도 35루피까지 필요 없는 거리였다. 미안해서라기보다 손님이 가까운 거리를 왔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약속한 35루피를 다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좀 태우고 도는 수밖에.



릭샤왈라에게 돈을 지불하려고 했을 때 50루피보다 작은 잔돈이 없었다. 그나마 50루피도 어제 방값을 지불하고서 거슬러받았기 망정이지, 공항에서 환전했을 땐 100루피, 500루피, 1000루피 지폐들 뿐이었다. 50루피를 받아든 릭샤왈라는 어째 거스름돈 주기를 망설이는 것 같다.


  
잔돈을 갖겠다는 시늉을 해봤다. 그럴 땐 갖고 있는 잔돈이 없어서 못 주는 상황이라는 것과 불쌍한 척을 함께 해야 한다. 알아든는 여행자들에겐 "박시시" 하면서 자비를 구하면 통할 때가 있지만, 그는 아직 여행자라기보다 이방인일 뿐이다..



이른 아침 릭샤를 타고 쉽지않게 도착한 기차역에서 나는 또다른 우여곡절들을 격어야 했다. 그 시간들은 마치 오리엔테이션 같았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기차역에서 헤맸지만, 인도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많은 걸 배웠고 결국 원하던 기차표와 시간표책자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온전히 떠있는 해를 처음 봤다. 처음 내게 스스로를 열어보여준 거다. 햇볕을 쪼이며 빠르게 자신감을 회복한 나는 기차역에서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저 차도를 한 번 건넌 후 메인바자르라고 적힌 커다란 푯말의 시장 입구를 들어서서 줄곧 직진했을 뿐이다. 초행이었던 길이었음에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침에 50루피나 줬던 릭샤 왈라가 떠올랐다. 흥정에 조금 감을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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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궁전, 하와 마할

2005년의 새해를 맞이한 곳은 인도의 핑크시티 자이뿌르였다.

인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델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자정이 되기 두어시간 전이었는데, 새벽에 출발할 기차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 될 무렵이기도 했다. 기차 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전화가게에 들러 쓸쓸히 새해를 맞으실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인도는 아직 2004년이었다.

내가 예약해놓은 기차는 일반적으로 배낭여행자들이 이용하는 SL 클래스가 아닌 2A 클래스였다. 하나의 컴파트먼트의 양쪽 벽에 3개씩 총 6개의 간이침대가 설치된 SL 클래스와 달리, 2A 클래스는 더 넓고 깨끗한 간이 침대가 벽에 2개씩 총 4개가 설치되어있고 게다가 에어컨에 식사까지 나온다. 화장실 역시도 뭔가 묻을 것 같아 쪼그리고 앉기 어렵게 만드는 SL 클래스의 그것과는, 일단 앉지 못할 거부담이 없다는 정도로 달랐다. 자기 자리가 아닌데도 껴서 타는 현지인들과 섞여야 하는 SL 과 달리 내 공간을 침범하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2A 클래스 표를 사는 현지인들의 카스트(?)가 달라서 되려 내가 천민인 것 같은 미안한 느낌마저 든다. 한마디로 인도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황송한 여행이 가능하다. 기차삯도 2A 는 SL 보다 두 세 배 이상이다. 그렇다고 돈으로 서로 다른 카스트를 넘어 설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거기서 외국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SL 이 아닌 2A 클래스를 선택한 이유는 그런 안락함(?) 때문이 아닌 다른 데 있었다. 자정 넘어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시간까지 숙소에서 머물다가는 자이뿌르의 비싼 숙박비 하루치를 더 부담해야 할 판이었다. 전 날 새벽에 체크인했음에도 자정을 넘기면 돈을 더 내야한다고 융통성 없이 구는 숙소 리셉셔니스트에게 맘이 상해버렸다. 자정 전에 체크아웃을 하게 된다면 그 시간에 딱히 갈 곳이 없었고, 결국 화장실과 샤워시설까지 있는 --- 그런 게 있어도 별로 이용할 것 같진 않지만 --- 깨끗한 대기실(waiting room)이 제공되는 2A 클래스를 예약한 거다. 어차피 비싼 자이뿌르의 하루 숙박비를 보태면 SL 에서 2A 로 점프가 가능했으니 기회비용을 따졌을 때 2A 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마지막 행선지 델리를 앞두고 인도사람들에게 상당히 피곤해져있었다. 그래서 2A 클래스 열차는 여행에 지친 나를 달래는 일종의 장치 같았달까. 인도의 기차역에서는 마치 추석 귀성 열차표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울역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은 양반이다 싶게 여겨질만큼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 걸 보게 된다. 그렇게 또 현지 사람들 사이에 시선을 받으며 둘러쌓이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연착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기차를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고보니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건 바로 휴식이고 위로였다. 아마 그시점에 새해를 맞으며 부모님 생각이 났던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던 듯. 일반 대기실이 아닌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의 기다림은, 비록 그 안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심심하긴 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휴식이 되어준 것 같다.

꽤나 빡빡했던 여행 일정 속에서 이제 코 앞의 델리행 기차를 놓치지 않는 것 외에도 내겐 해결되지 않은 걱정거리 하나가 남아있었다. 나는 과연 델리에 도착해서 트리베니에서 보낸 사람을 만나 시타르를 건내받을 수 있을까!

트리베니 뮤직센터에 처음 갔던 날 시따르를 주문하면서 돈을 지불할 때 레디시는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에 악기를 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케이스 제작을 이류로 한 번 미루고 두 번 미루더니 결국 받지 못하고 바라나시를 떠날 판이 되었다. '그럼 그렇지' 하며 화가나기까지 했다. 인도는 당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약속이란 건 있지도 않을 뿐더러 해도 믿을 것이 못되는 곳이란 걸 되새기게 됐다. 그리고 그건 인도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중 하나였다. 

내가 할 말을 잃고서 난감해하자 레디시는 내게 앞으로의 행선지를 물었다. 다른 도시들을 며칠간 돌다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델리로 들어갈꺼라고 했더니 델리에 머무는 날에 맞춰 숙소로 사람을 보내 내게 악기를 건내주겠단다. 그러면서 운송료로 2000루피를 요구했다. 일단 그 운송비란 게 상당한 금액이었고 악기 출고를 미룬 게 그들임에도 운송비를 내가 부담해야하는 상황도 따져묻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악기를 인편에 전해주겠다는 그 말을 믿어도 될지가 내겐 가장 큰 의문이었다. 만약 그게 사기라면 나는 너무나 바보 같이 행동해서 어디 말하지도 못하는 창피함을 인도에 대한 상처로 가져야 할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행내내 커다란 시따르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건 되려 다행이었고, 또 나흘간 매일 트리베니로 레슨받으러 다니면서 봤던 그들과 얼굴 붉혀가며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냥 환불을 요구해서 시타르를 사오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던지, 밑도 끝도 없는 약속을 받아들이던지 둘 중 하나였다. 낯선 곳인 델리에서 누군가와 접선을 시도해야하고 실패하면 더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도 컸지만, 결국 2000루피를 더 줘버렸다. 뭔가 모를 좋은 기운에 이끌려서 그들과 믿지 못할 약속을 해버린 거다. 영수증이야 받았지만 이틀 머문 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델리에서 그런 게 무슨 소용있겠나. 더구나 인도에서.

그런 사연이 델리에 들어가면 뭔가 일이 벌어질 꺼란 긴장 섞인 불안감을 피워냈고, 난 그걸 차분히 눌러가면서 자이뿌르 기차역 대기실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델리보다 더 '관광사기업'에 집중하는 아그라와 자이뿌르에서 나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시도하는 인도 사람들로부터의 시달림에서 벗어나 모처럼의 한적함을 즐기고 있었다. 나 말고도 한 무리의 현지들 서넛이 거기 더 있었지만 난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참동안 정적이 유지되나 싶었을 때 그들이 갑짜기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번갈아 얼싸안으며 큰 소릴 내기 시작했다. 자정이 되어 그들끼리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있음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내게도 새해 인사를 건내며 다가왔다. 그러면서 그들과 말문을 트게 됐는데, 그때만큼은 그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니 피하고 싶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그들의 새해 인사가 의외로 내게 커다른 위안이 됐던 것 같다.

인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은 후로, 난 외로웠던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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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나오면서 천가방을 술집에 두고 나온 적이 있었다. 인도 여행중에 산 이후로 지금까지도 즐겨 들고다니는 천가방이었다.

"왕걸레 가져가셔야죠."

술집 문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던 나를 뒤쫓아나온 여자 종업원이 그렇게 불러세웠다. 그녀에게 내 가방은 '왕걸레'로 보였나보다. 물건을 잊고 나온 쑥쓰러움과 그녀의 '왕걸레' 소리에 웃음이 났다. 그순간 트리베니 뮤직센터 생각이 났는데, 내가 거기서 봤던 파파그루의 가방 역시 처음엔 왕걸레로 보였던 탓이다. 지금의 내 것보다 훨씬 더 걸레에 가까웠던 그 가방이 탐이나서 결국 같은 걸 사기까지 했으니 그녀의 '왕걸레'라는 표현이 기가 막히면서도 반가웠다.

바라나시에 머물던 중 하루는 파파그루가 매고 있던 천가방이 눈에 띄었다. 걸레같은 모습이었지만 묘한 매력을 느꼈기에 결국 파파그루에게 어디서 샀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의 짧막한 대답은 알아듣기에 아리송했다. 우물쭈물 눈치를 보다가 다시 질문했는데 그제서야 아들 레디시를 불러 뭐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레디시는 나중에 자기 딸을 따라가보라고 통역하듯 알려주었고, 결국 난 할아버지에게 질문하고 대답은 손녀에게서 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다지 삼대를 기다려서 깨달아야 할만한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날의 시타르 레슨이 끝난 후 파파그루의 손녀딸은 나를 데리고 겐지스강 주변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쳐갔다. 그리고 어느새 우린 옷과 첫가방 만드는 상점에 도착했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에 나에게 한마디도 건내지 않은 채 그저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뒤를 돌아봄으로써 따르는 나를 인도하던 그아이는, 상점 주인에게 뭐라고 몇마디 말하곤 돌아서더니 나에게는 내가 찾는 곳이 여기라는 눈짓만을 남기고서 돌아서려고 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삼대를 기다렸음에도, 결국 현자를 만나게 해줬으니 또다시 깨달음을 빌어보라는 거다. 말 한 마디 없이도 우린 그렇게 통했다.

난 그 깜찍한 아이에게 주머니에서 5루피짜리 동전을 내밀었다. 인도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도움으로 응당 기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의 길안내 심부름이 무척 기특하고 똘똘해보였던 이유가 더 컸다. 다시 말해 그건 댓가성이라기보단 나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아이는 싫다는 손짓을 하더니 내가 다시 권할 틈도 주지 않고 망설임 없이 나를 지나쳐 돌아가버렸다.

그순간은 나에게 정말 충격이었다. 주는 돈을 받지 않는 것도 낯설었거니와, 인도에서 처음으로 댓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받았기 때문일 거다. 같은 날 오전에 트리베니를 찾아가던 길을 헤매다 (그곳을 찾아갈 때마다 헤맸다. 물론 돌아올 때도 헤맸다.) 우연히 만났던 여자아이와도 대조되어 더욱 그랬다. 그 아이는 자기 사진을 찍으라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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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불러 세우고는 옆에 묶여있던 염소를 끌어안고 포즈를 취하더니 결국 내가 예상했던 바대로 돈을 달라고 했었다. 인도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그런 식이다. 귀찮게 따라다니며 아무 이유 없이 돈을 달라고 조르거나 내가 바라지도 않은 친절을 쏟아내고는 결국에 가서 손을 내밀곤 하는 꼬마아이들을 도처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 둘러쌓이다시피하여 길을 거닐다보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일조차 피곤함으로 다가올 때가 생긴다. 그런 피곤함도 어느정도 익숙해졌을 때 별다를 게 없어보이는 여자아이 하나에게서 느꼈던 게 바로 휴식같은 친절이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그 트리베니의 소녀가 머뭇거림 없이 돌아서서 가버렸을 때 나는 멍해져버렸다.

그리고 그건 이 왕걸레스러운 천가방이 아직도 내게 소중한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술집 종업원의 '왕걸레'라는 장난스런 부름에도 난 기분 상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친절'에 감사할 뿐이다. 물론 그녀가 부르지 않았더라도 바로 찾으러 들어갔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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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림버를 우연히 다시 만난 그날은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엔 인디아게이트에서 만난 수많은 인도인들 속에 섞여 많은 시간을 보냈죠. 가족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가 늦은 시간까지 저를 오래 기다리는 것이 미안해지더군요. 그래서 돌아갈 때는 알아서 갈테니 그만 가보라고 했죠.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제가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찾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그의 머뭇거림을 봤는데, 처음엔 다음날 만날 수 없다는 뜻인가 싶었지만 곧 그가 아직 받지 못한 돈에 대해 걱정한다는 걸 알게 됐죠. 다행히 약속했던 일당을 계산해주고도 숙소로 돌아갈 택시비가 남았습니다.

슈림버를 보낸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저는 인도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감동을 선물받았습니다. 그날의 느낌을 길게 끌고 싶었던지 다음날 아침에는 늦잠을 자버렸죠. 그러다보니 외출 준비가 늦어졌고 슈림버와 약속한 아침 8시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기다리고있을지도 모를 그가 불안해하거나, 포기하고 실망한 채 가버렸을까봐 저는 무척 서둘러야 했죠. 준비하다 말고 일단 나가서 그에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들어올까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저는 그가 밖에 없을 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나 붙잡아 "헬로! 꼬레안? 웨어아유고잉?" 하는 릭샤왈라가 꼭 저를 태우기 위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사이클릭샤왈라도 저를 기다리기로 하고서는 다른 손님이 생기자 그냥 떠나버렸었는데, 인도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욕먹을 일도 아니었죠. 그래서 준비하던 도중에 나가보는 건 좀 우습다 여겨졌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거니와 괜히 그가 와있지 않음에 제가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갈 채비를 서둘렀지만 30분 이상을 늦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메인바자르로 들어서자 그곳엔 오늘도 파란색 스웨터의 작업 유니폼(?)을 입은 슈림버가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안녕하세요, 슈림버!"

저는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그에게 인사했습니다. 그가 거기 와있었던 건 약속을 지키기 행동이기보다 하루 일꺼리를 벌기위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가 안 왔다면 다른 릭샤를 타도 그만이었고요. 그런데 그는 약속도 지켰고 저를 기다리기까지 했지요. 제가 그가 기다릴 꺼라고 기대 안했던 것처럼 슈림버 역시 제가 다른 오토릭샤를 타고 나갔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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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메인바자르로 나와준 슈림버. 전날까진 사진찍길 거부했었는데 이날은 포즈를 취해줬다.


제가 그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을 때 그는 "노 프라블럼, 마이 프랜!" 했습니다. 인도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가벼운 말이지만 그때만큼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는 제가 그에게 보인 것 이상의 믿음을 보여줬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마이 프랜" 이란 말을 잘 쓰는 편도 아니었고요. 여기서 무겁게 '믿음' 이란 말을 쓰기보단 서로간에 어떤 긴장감이 덜어져 편한 느낌이 되었다고 하는게 더 어울릴 것 같네요.

그와 헤어질 때, 처음 델리를 떠나면서 역전에서 샀던 침낭을 그에게 선물했습니다. 어차피 버리려고 했던 물건이라 좀 미안했지만 그라면 그걸 팔 수도 있을꺼라고 생각했죠. 그가 가격을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흔쾌히 200루피 달라는 걸 100루피에 샀다고 말해줬고 팔아서 쓰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공항까지 태워가고 싶어했지만 훨씬 더 싼 셔틀버스도 있었고 돈도 거의 남아있질 않아서 그럴 수는 없었죠.

어쩌면 그가 오늘 절 기다렸던 건 공항까지 태우고 갈 수입까지를 계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좋게 받아들이면 그만인 일인데도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인도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슈림버는 헤어지면서 다시 또 델리에 오게 되면 전화하라고 말해주더군요. 아마도 저는 또 슈림버를 오해했던가봅니다. 언제나 그곳에 다시 가게 될지가 의문이지만, 그때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Lyle

스무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서 아그라에 도착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무척 피곤했다. 그렇다고 인도의 기차역이 피곤한 여행자를 쉬게 내버려두는 곳이던가. "어딜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따라와봐라", "이것 좀 사라", "돈 좀 달라". 이런것들을 뿌리친 뒤에도 끝없이 계속 되는 갖가지 성가신 찝쩍거림들은 어쩔 수가 없다. 그중 으뜸은 역전 릭샤왈라들의 호객행위. 그들을 피해 일단 역을 빠져나오고 보니 어느새 나는 목적지도 없이 한적한 곳을 향해 무작정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걷던 길 옆엔 아그라포트로 보이는 붉은색 성벽이 보였는데 그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알진 못했어도 잘못된 길이건 아니건 그냥 편안했다. 그리고 그 무렵 그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무나칸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내게 호객을 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인도 사람들이 모르는 걸 그는 알고 있었는데, 날 피곤하게 만들어서 이득될 게 없다는 것 말고도 그는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느새 그런 그의 릭샤에 올라타있었는데, 그의 싸이클릭샤(자전거 인력거)가 오르막에서 올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나에게 내려서 밀어달라고까지 할만큼 그는 정말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릭샤왈라(인력거꾼)였다.

무나칸의 속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묘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면서 함부러 할 수도 없었는데 가끔은 그가 무섭기까지 했다. 아마 그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그에 비해 일반적인 인도의 단순한 사람들에 비해 너무도 다른 그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있는 데서 비롯된 듯 했다. 여하튼 난 그런 그에게 얼마만큼은 압도되어 끌려다닌 걸 부인할 수 없다.

아그라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빠떼뿌르 씨크리(Fathepur Sikri) 행 버스표를 살 때도 무나칸은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정거장에서 기다리겠다며 돌아오는 시간약속을 요구했는데, 내가 돌아오는 시간을 꼭 정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그리고 사실 약간 부담스럽기도 한 그의 릭샤를 다시 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약속은 내게서 깨지기보다 인도에서 깨지기 쉽기 때문에 난 인도의 약속을 그에게 해주고서 그곳을 떠났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버스 정거장 앞에서 그를 찾았다. 건성이긴 했지만 그건 최소한의 성의 같은 거라기보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해야만 했달까?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나와서 그가 없다고 생각하며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될 무렵에 그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이클릭샤 위에 다릴 꼬은 채 팔장을 끼고 누워서 날 지켜보고 있는 그를 발견한 거다. 정말 귀신을 만난 듯 흠짓 놀랐다. 그는 나를 놓치거나 내가 다른 릭샤를 탔을까봐 안달복달 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편안한 자세로 정거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누워 내가 그곳을 지나갈 꺼란 걸 알고 있었던 듯 날 기다렸던 거다. 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았던 거에 대해 변명부터 하게 됐다. 다시 한 번 그에게 압도당해버린 거다.

숙소로 돌아갈 때도, 다음 행선지인 자이뿌르로 갈 버스를 예약할 때도 그는 나에게 필요한 걸 제안하면서 탈 것을 제공하고 버스표를 살 여행사를 소개했다. 심지어 그 자이뿌르행 야간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짐을 맡길 곳이 필요한 것까지 간파하고서 그는 내 짐을 여행사에 맡기게 하여 거기서 버스표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후엔 날 태우고 다니면서 쇼핑을 시켰다. 거기선 내가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손님을 태우고 온 릭샤왈라에게 커미션을 준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다. (델리의 순박한 슈림버가 그렇다고 알려줬다.)

그렇다고 무나칸 때문에 내가 손해본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되려 편안하게 필요한 것들을 얻었다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찜찜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가 없었어도 될 여행에서 너무 능숙하게 날 파악하고 다루는 범상치 않은 인도인을 만났기 때문일 꺼다. 그리고 그가 되어 생각해보면서 그로부터 한가지를 배웠고, 사람들을 대할 때 간혹 실천하고 있다. 꽤 효과적이다.

자이뿌르행 버스에 오르기 전 그와 헤어지면서 그에게 일당을 거의 지불하질 않았다. 우린 그에 대해 미리 흥정하질 않았었고, 내가 흥정을 요구한 적이 있긴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no problem" 이라고만 일관했다. 그는 결국 나에게 성의껏 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합리적인 돈을 줬다.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한 그에게 당신이 날 데리고 다니며 받은 커미션을 알고 있으며, 마지막에 쇼핑을 시켜서 돈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에 남은 루피가 그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대신 미안하다며 한국 동전 5백원을 주면서 루피로는 꽤 작지 않아고 알려줬다. 하지만 은행에서 동전은 환전이 되질 않는다. 영리한 그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서 능숙하게 그돈을 루피로 바꿨을지 모른다. 그러니 아마도 그 5백원은 다시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을꺼다.

무나칸 뒷모습

무나칸의 앞모습은 대략이나마 아직도 기억난다. 꽤 부리부리한 눈을 갖고 있다고만 말해두자. 뒷모습에서 더더욱 카리스마적 얼굴이 상상될 수도 있으니까.

Posted by Lyle

여행이 끝나갈 무렵 다시 찾은 뉴델리. 역전의 빠하르간지 메인바자르를 따라 걷다보면 여행자들에게 꽤 유명한 라씨(요구르트 음료) 가게가 보입니다. 처음 그곳을 지날 땐 그런게 눈에 잘 띄지도 않았을뿐더러 발견했다 해도 들어가질 못했었는데, 이제 라씨가게에 찾아들게 될 만큼 이곳에 익숙해진 거죠. 그런데 그럴 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라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라씨 한 잔을 주문하려는데 왠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는 자기도 한 잔 사달라고 합니다. 여행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게으른 인도 사람 중 하나였을 그의 이름은 "언감생심" 이었죠. 내가 왜 너에게 사줘야 하느냐고 웃으며 놀려주곤 보냈습니다. 그렇게 라씨 한 잔을 받아들고 라씨 가게를 등지고 서서 메인바자르 거리를 바라보며 라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앞을 지나가던 오토릭샤 한 대가 서더니 저에게 "미스터 리" 하고 소리치더군요. 빠하르간지 골목을 걷고 있자면 그렇게 저를 불러잡고 "웨어 아 유 고잉?" 하는 릭샤왈라(릭샤 운전사)들을 무척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은 릭샤왈라들에게 눈길도 안 주고 무시하기가 일수였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건 제 이름을 불러준 릭샤왈라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바라봤을 때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죠. 처음 델리에 도착했을 때 저를 태우고 다녔던 릭샤왈라 슈림버 였습니다. 그때와 옷도 똑같더군요. 나름 작업복이었을까요?

그는 사실 제가 델리에 도착하고 이틀째 되는 날 온종일 저를 태우고 다녔던 오토릭샤 운전사였죠. 제가 델리를 떠날 때 델리에 다시 들르게 되면 연락달라며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델리에 돌아왔을 때 낯선 사람보단 나을 꺼란 생각에 그에게 전화를 해볼까 했었죠. 하지만 아무데서나 잡히는 릭샤를 타기 위해서 굳이 전화를 걸어야 할까 하고 망설이던 중이었는데 그렇게 그를 다시 만난 겁니다. 결국 그런 우연한 만남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줬지요.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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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짜기 오토릭샤를 세우더니 담배를 사러 달려나간 슈림버.


슈림버 아저씨는 착하고 재밌는 사람입니다. 자꾸만 쇼핑을 시키려고 해서 귀찮았고, 그럴 때마다 시간 없으니 안된다고 할 때면 가끔 못들은 척하거나, 이해 못 한 것처럼 능청떠는 게 얄밉기도 했지만 잔머릴 굴리거나 하는 낌새를 느낄 수는 없었죠. 그래서 그의 오토릭샤를 타는 건 참 편했습니다. 그는 운전하면서도 심심찮게 영어 단어를 나열하는 식의 의사소통을 저에게 시도했는데, 제가 이해를 못했을까봐 시간이 좀 지나서도 같은 말을 다시 반복하곤 했고 전 그런 그를 재밌어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죠.

"폴리스 컴, 노 미털? 유, 미털, 미털"

그 말은 경찰이 와서("폴리스 컴") 미터기 안 쓰고 있냐고 묻거든("노 미털?"), 미터기로 가고 있다고("유, 미털, 미털") 대답해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한 세 번은 들은 것 같아요. (지방마다 다르지만 델리의 오토릭샤는 흥정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달려있는 미터기는 그냥 폼이었습니다. 그런데 슈림버는 아마도 단속이 두려웠나보죠. 그러나 한 번도 경찰이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가 필요한 모든 이야기를 저에게 했죠. 저역시 제가 아는 영어를 전부 동원해 그에게 제가 필요한 말들을 했지만 그가 알아듣기엔 너무나 불피요한 단어들이 많이 섞여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사실 유창하지도 못 한 제가 그에게 유창한 것처럼 영어를 말할 필요가 없는 건데 말이죠. 결국 그렇게 어렵게 영어를 쏟아내고 있는 제가 우스워지더군요. 아마도 의사소통이 목적이 아닌, 영어를 목적으로 공부해왔기 때문인가 싶어지기도......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8.01.15 09:25
Pune Railway Station

인도의 기차역은...



                           
언제나 생경하지만,


그런 선자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곳.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