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9. 5. 23. 20:05
16대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점심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싫어하시는 아버지의 전화 때문에도 그랬었지만, 인터넷 상의 게시판들을 보고도 기분이 착잡해진건 좀 다른 의미었다. 닉네임에 검은 리본을 달고 저마다 뭐라뭐라 추모의 게시글들을 토해내고 있고, 그와 관련지어 현 정권을 비판하거나 현실을 한탄하는 내용들을 적어내는 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투표나 하지..."

아마 전자투표라는 것이 있었다면 20대, 30대의 투표율을 100%를 육박했을 꺼다. 그들이 인터넷에서 쏟아내는 관심들을 보면 쉽게 그렇게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이 현 정권을 비판하고 현실을 한탄하는 관심들을 손가락으로 실천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자발적 기권이라면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밉상들은 전자투표 형태의 선거에서는 보이지 않을 거다.

이와 비슷한 느낌은 08년 하반기에 국민행사처럼 벌어졌던 소위 '촛불집회', '초불문화제' 등으로 불렸던 시위때도 마찬가지었다. 참여자들의 대다수가 2030들이었고, 집회참가자들 중 과격시위를 벌여 언론에 노출된 사람들 역시도 2030들이었다. 그때도 그들이 과연 성의있는 투표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투표를 했다 해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후보자를 선택했을까. 선거권 행사를 무성의하게 했거나, 아예 하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 자체가 현 정권을 선택한 거나 마찬가지 결과라고 본다. 뽑을 때 그리도 소극적이던 자들이 현 정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물대포를 맞는 모습은 다친 그들에게 또는 민주주의에게 미안하지만 쌤통인 면이 있다.

물론 그들이 선거에 무관심했다 해서 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데 자격미달이라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현 정권이 바른 말을 허락하지 않고, 나서는 자들을 탄압한다는 핑계로 인터넷 뒤에 숨어서 게시판에서나 목소리를 높히고 있는 사람들 중 투표하지 않은 자들의 소극성이나 비겁함이 과거에 있었을지라도, 그들은 민주주권자의 한사람으로써 어떤 큰 일이 벌어졌을 때 하고 싶은 말을 얼마든지 내뱉을 수 있다. 다만 그들의 그런 행동이 주변에서 쉽게 옮는 유행성 감기 같은 게 아닐까, 그냥 단발성에 그치는 행동이 아닐까 싶은, 그래서 너무 가볍게 보이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는 거다.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터넷 상의 추모와 그와 연관지어 인터넷에서나 쉽게쉽게 키보드를 두들기는 행동들에서도 그런 우려를 느낀다.

그건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광장에 응원차 모인 (평소 타인에게 절대 호의적이지 않던) 사람들이 서로서로 얼싸안고 함께 소리를 질러대던 것처럼, 혹은 평소 때는 환경운동이나 자원봉사 따위에 소극적이었던 사람들이 서해안에 기름이 유출됐을 때는 방제복이 무슨 붉은악마 티셔츠나 되는 듯 입고, 쓰고, 쭈그리고 앉아서 기름을 닦던 모습처럼 일회성 이벤트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볼 때면 '평소 한국 축구에 관심 좀 갖지.', '평소에 환경 보전에 신경 좀 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촛불시위 때도 그런 행동들이 다음번 선거에 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에 대해 신물을 느꼈다며, 그래서 선거권 행사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휴일인 선거일을 이용해 놀러나가거나 하지나 않을까? 힘들어 포기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보고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며 그들은 또다시 다음 선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의 가벼움에 비하면 지금 전대통령의 서거에 기가막히면서도 차라리 아무말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뭔가 더 큰 생각을 속으로 품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더 꾸준했으면 좋겠고, 그 꾸준함도 키보드 위에 놀리는 손가락들보다 그들의 발을 움직이는 형태였으면 좋겠다.

20대 30대의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분석

최근 선거의 연령대별 투표율 변화 (출처: 선거관리 위원회)


16대 대선 때 노무현이 인터넷의 힘을 입었다곤 하지만 인터넷의 최대 이용층인 2030의 투표율은 60%를 넘지 못한다. 다른 선거에 비해 2030의 투표율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16대 대선은 모든 연령층의 참여율이 그 이전이나 이후보다 높았다. (물론 3김 시대의 투표율에 비하면 투표율 하락세는 지속되는 추세다.) 게다가 16대 대선의 다른 연령대의 투표율에 비해 2030이 낮은 투표율을 보인 건 다른 선거 때 보인 결과와 저조하긴 마찬가지다.

17대 대선의 성별,연령대별 투표율 (출처: 선거관리위원회)


투표율이 가장 저조했던 건 남성 20대 후반이었다. 여성 20대와 비교해보면 재밌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여성 20대투표율이 46%대인데 반해 남성 20대 전반은 그보다 10%나 높고, 남성 20대 후반은 6%나 저조하다. 이유는 남성 20대 전반이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를 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은 영향이다. 30대라고 달라질 것 없지만, 남성 20대들이 얼마나 투표에 성의가 없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선거의 성별,연령대별 투표율 변화 (출처: 선거관리위원회)


17대 대선을 16대 대선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투표율이 떨어진 연령대는 남성 30대 전반(-13.6%) 과 남성 30대 후반(-13.4%) 이다. 17대 대선 당시보다 5년 전이었던 16대 대선 때 남성 30대 전반은 20대 후반이었고, 30대 후반은 30대 전반이었던 걸 생각해보자. 그들은 5년 전보다도 투표를 안했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실소할 수밖에 없는 건, 16대 대선 당시 군인이었을 남성 20대 전반이 부재자 투표의 힘을 빌어 63.1%의 투표율을 보였던 것에 반해, 5년 후인 17대 대선에서 남성 20대 후반이 39.9%에 머물고 있단 점이다. 20대가 이토록 꼴통이니, 현재 남성 20대 전반의 전경들이 일회성 이벤트 시위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한 2030들 중 일부 꼴통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다는 게 우습지 않은가.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