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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6 대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게 어떨까? 1
A Day in the Life2012. 7. 26. 02:52

대졸 구직자들이 입사지원서 한 장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에 관한 보고서가 있었다. 두어달 전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들은 내용인데, 대졸자가 일반적으로 요구받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비용을 입사지원자들이 만드는 이력서 숫자로 나누어 통계낸 것이었다. 대학등록금만이 아니라 어학 점수 및 자격증을 따기 위해 들인 학원 및 시험 비용, 그리고 어학연수 비용까지를 포함한 금액 등은, 그렇게 한줄씩 장식한 이력서 한 장의 가격을 상상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만들고 있다. 대학 입시가 과열되자 대학의 수를 늘려 고등학생의 80%를 대학에서 수용하게 했다. 졸업자 수가 늘어나니 당연히 취업의 문이 좁아졌고 단지 서류전형의 변별력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능력을 스펙으로 갖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는 대기업 신입사원들 중에 1,2년 정도의 인턴사원 경험을 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어졌는데, 이력서 한 장의 가격 통계는 이런 거품 가득한 취업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더이상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게 어떨까?


사실 이 생각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신입사원 초봉 인상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다. 수많은 대졸자들이 변별력 없는 이력서를 접수하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는 뽑아도뽑아도 남아돌기만 한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 뛰어난 인재들이 지원해주길 바라고, 이또한 기업들간의 경쟁일 수밖에 없다. 한편 대졸 신입사원들은 입사합격 후에 연수원에 들어가있다가도 갑짜기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구직자들에게도 입사하고 싶은 대기업의 순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위는 보통 기업이미지라는 말로 포장된 "대졸자 초봉" 에 크게 좌우된다. 결국 대기업들은 대졸 신입사원들의 연봉을 수년 간격으로 올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졸 초임의 연봉 수준이 재직자들과 함께 연동되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데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신입사원의 연봉 등급이 올라가더라도 같은 시점에 대리나 과장이 받게 되는 연봉의 수준이 함께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재직자들의 연봉 등급도 수년마다 한번씩 인상되기도 하지만 신입사원들의 연봉이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미약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직자는 경쟁을 통해 도퇴시키고 교채해야 할 존재들이므로 신입사원들과는 대우하는 방법이 다르다. 재직자들에게는 비교적 별별력있는 그 회사만의 기준을 적용해서 선별적으로 연봉인상을 해주므로써 필요한 인력만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란 연차간 연봉 수준의 역전 현상이다. 간단하다. 대졸 초임이 3천5백이었을 때 들어온 신입사원이 4년쯤 지나 대리가 되면서 4천만원의 연봉을 받게 되었는데, 막상 대리가 되었을 때 들어온 신입사원은 인상된 초봉을 적용받아 3천8백 정도를 받게 되었다고 하자. 낮은 연차의 연봉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 2백만원의 차이는 2,3년 안에 역전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대리가 과장이 되었을 때에 또다시 신입사원 연봉이 인상된다면, 높은 연차의 낮은 인상률을 적용받기 때문에 역전을 한 번 더 당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사실 연봉계약서에 연봉을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은 이런 문제를 감추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월급장이가 부속품일 뿐인 이 나라의 노동환경에서, 고용주의 입장은 한참 능력을 활발히 발휘할 4, 5년차 직원들의 단물을 빨아먹은 후 후배들에게 역전당하여 자연스레 도퇴시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본가들에게 유리하고 부속품들에게는 슬픔인 이런 현실을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업의 비용도 줄이고, 더불어 사회적인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대기업이 더이상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앞서 적었던 것처럼 대졸 신입사원들의 초봉 인상은, 어차피 변별력이 없는 신입 지원자들의 유치를 놓고 경쟁하기 위한 비효율적인 비용투자가 된다. 거기다 그렇게 뽑아놓은 신입사원들은 2년 정도의 직간접 수련을 거쳐야 제몫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 까지 드는 교육 비용과 --- 연수훈련 기간동안 월급도 주고 교육비용도 지출하지만 막상 일은 별로 못 시키는 --- 기회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적지않은 돈이 버려지는 샘이다. 


만약 대기업에서 2,3년차 경력사원들만을 채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졸자들은 중소기업에 분산지원을 하게 될테고, 몇몇 대기업으로 몰릴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의미 없는 스펙쌓기 과열경쟁은 사그라들게 된다. 상대적으로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격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이 될 수 있고, 동시에 대기업이 자리한 수도권으로 빨아올리기보다 지방의 기업에서 지역인력을 유치하기도 쉬워진다. 그렇게 중소기업에 분산된 대졸자들이 결국에 대기업으로 이직하겠다면 2,3년의 경력을 쌓는 동안 실질적인 변별력을 갖춰야 할테고, 그런 과정 속에서 대졸신입자들의 노력은 단순 스펙쌓기보다 훨씬 더 생산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경력사원을 유치한 대기업은 잘 훈련된 인력을 채용해서 적은 교육비용으로 활용하다가 단물 뽑아먹고 버릴 수가 있게 된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