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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25 시판돈 깜빠이
  2. 2011.10.31 Bye-bye, Lao
Magical Mystery Tour2014. 8. 25. 02:37


라오스에 시판돈(Si Pan Don)이란 이란 곳이 있다. 시판돈은 4천개의 섬이라는 뜻이고, 그 섬들 가운데 돈콩(Don Khong;콩섬), 돈뎃(Don Det;뎃섬) 등에 여행자들이 머문다. 나는 돈뎃에서 한 여흘 남짓 머물렀고 할 말이 참 많은 곳이지만 내 주변 사람들 중 거기 가서 좋아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아서 여행지로 추천할 마음은 없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그곳에 놓고 온 물건 하나가 마음을 그곳으로 돌아가게 만들곤 한다. 


깜빠이라고 하는 청년이 매일 방갈로로 찾아와 잠깐씩 놀다 가곤 했었다. 자신의 고기잡이 배를 태우기 위한 목적이 있어보였지만, 바쁘고 부지런한 여행자가 머무는 곳이 아니어서 주민들이 장사속 없이 순박하기만 하다보니 깜빠이역시 자주 찾아와도 거부감을 주지는 않았다. 낮부터 온종일 맥주를 마시다가 오줌이 차면 방갈로 발코니 밖 메콩강을 향해 지퍼를 내리고 올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취해서 골아떨어지곤 했기 때문에 깜빠이가 놀러오면 배 타러 가자던 그에게 되려 맥주와 뱀부봉을 권하곤 했다. 그때마다 깜빠이는 시도를 해보면서도 술도 봉도 맛없어서 못하겠다던 그런 순박한 청년이었다. 여행이라기엔 그곳에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으면서도 그렇게 잠깐씩 찾아와 고기잡이 배 이야기를 하던 깜빠이 배역시도 일관성있게 한번도 타지 않았다. 

그 섬을 떠나던 날 섬을 나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깜빠이가 내게 와서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며 내밀었다. 그러면서 내게 뭔가 선물을 교환하자고 했다. 그림은 여자 그림이었다. 벗은 것 같기도 하고 입은 것 같기도한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었는데, 내용이 뭐가 됐든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림은 아니었고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더욱이 뭔가와 바꾸길 기대하고 있는 그에게 이미 짐을 다 싸놓은 상태에서 떠날 생각만 하던 도중에 줄만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얼버무려서 거절하자 깜빠이는 그냥 그림을 내게 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떠났다. 둘둘 만 종이 그림을 덩그러니 손에 들고 배낭을 짊어진 채 배를 타러 가면서, 꽤 오랜 시간 차를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앞으로의 여정에 손에 든 깜빠이의 그림이 거추장스럽기만 했고, 결국 깜빠이가 없는 곳에서 한 상점 테이블 위에 그림을 놓고 섬을 나왔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걸 깜빡 잊은 것인냥 나는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지만 걸리지 않았다.


내가 놓고온 깜빠이의 그림은 어떻게 됐을까? 가게 주인이 주워다가 버렸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 작은 섬에서 도로 깜빠이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림을 버리고 간 걸 발견한 깜빠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내 기준으로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나 다음에 만난 친구에게 다시 그 그림을 내밀면서 내게 보였던 그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을지도...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1. 10. 31. 14:23
어느날에 문득 담배를 참기 시작하고서 5년이 지나도록 담배를 끊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담배 연기가 싫어지고 그 냄새가 몸에 밴 사람이 불편해질 정도가 되어서도 나 스스로조차 담배를 끊었다는 자신이 서질 않았다. 언젠가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났을 때 한 개피 담배가 그렇게나 간절했던 걸 꾹 참아낸 적이 있었는데, 그걸 간신히 참아낸 데 대한 안도와 함께 담배는 여전히 참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란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엔 교통사고의 충격보다 컸지만 지나서는 유치하기 그지 없는, 누구나 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상투적인 이유로 나는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담배연기였는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상관관계야 없겠지. 하지만 나 스스로가 담배가 되어갈 수록 이걸 다시 물게 만든 그 순간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으니까. 시간이 지날 수록 다시 헤어나올 수 있을까 걱정스럽게 만드는 건 담배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마는 그런 순간이 아니란 걸 알게 해줬으니까 말이다.

처음 그랬을 때처럼 이번에도 큰 결심 없이 문득 찾아온 어느날이 있었다. Beer Lao 를 핑계삼아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을 눌러앉힌 곳, 라오스의 국경에서였다. 각자 세 병째 비우던 중 한참동안 담배를 끊었던 친구는 내게 담배 한 개피를 달라고 했다. 내게 단 두 개피만 남아있는 걸 보고 그는 바로 사양했지만, 그 순간이 오래전에 문득 찾아왔었던 어느날과 같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나눠 피운 후로 지금까지 난 잘 참고 있다. 이제 지나고 나서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렇게 훈련된 나는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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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