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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5 밤에 더 빛나는 것들
A Day in the Life2010. 4. 25. 17:40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 있다. 나는 그 소설의 내용보다 더 저 문장을 좋아한다. 실제로 10km 쯤 긴 터널을 빠져나온 순간에 눈 앞에 펼쳐졌다는 설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두운 밤이었기에 환하게 빛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상상하는 일은 질리지 않는 흥분을 가져다 준다.

밤이어서 유독 더 빛나보이는 것이 한가지 더 있는데, 이효석작가님은 그걸 메밀꽃이라 했지만 내게는 목련꽃이 그렇다. 고등학교 자율학습을 마치고 자정 무렵에 학교를 나서면 조명도 없이 깜깜한 학교의 텅빈 운동장에 유독 방글방글 빛나는 꽃이 있었는데 바로 목련이었다. 봄에 짧게 피어서 길게 만나보기 어려운 목련 꽃. 나를 마중나오셨던 어머니께 하루는 당신의 웃는 얼굴이 목련꽃을 닮았노라고 말씀드렸던 것에 당신은 오래오래 기뻐하시기도 했었다.

요즘 늦은 밤에 퇴근하면서 회사 건물을 나설 때마다 보게 되는 것이 벚꽃나무들이다. 매일 밤마다 지친 마음의 밑바닥까지 하얘지곤한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