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선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1.22 벽선반
Every little thing2008. 1. 22. 01:06
지난 일요일 늦은 오후 벽선반을 설치하기 위해 벽에 드릴을 댔습니다. 그날의 작업을 위해 친구로부터 빌려온 전동드릴은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더군요. 선반 하나에 나사구멍 다섯개씩, 총 열개의 구멍을 콘크리트 벽에 뚫어야 했죠. 옆집 사는 이들이 쫓아올까봐 조마조마하고, 혹시나 그자들이 주인집에 일러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내려오실까봐 내내 불안해하면서 작업을 시작했죠. 두개쯤 뚫고서 귀 쫑끗하고 혹시 밖에 누가 와있잖나 살피다보니 작업은 더욱 더디게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열번째 구멍이 뚫리고 드릴이 멈추자 평화로운 정적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집 밖 동정을 살피며 여운 같은 불안함을 느껴야 했죠. 아니나다를까 주인이 사는 윗층 철문이 열리더니 쩌벅쩌벅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더군요. 숨죽이고서 드릴은 손에서 놓지도 못한 채 그 소리에 숨막혀하며 침만 삼켜야 했습니다.

기어이 초인종이 울리더군요.

윗층에서 내려왔으면 그건 집주인인겁니다. 순간 집에 없는 척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디 그게 먹혀들기나 하겠어요? 그 엄청난 소릴 내며 구멍을 열개나 뚫었는데...... 드릴을 조용히 내려놓고서 문앞으로 가는 짧은 순간 저는 용서를 구할 때 지어야 할 멋쩍은 표정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인터폰을 들고 누구냐 물었죠. 혹시라도 대답하는 이가 집주인이 아니라면 좀 만만하게 생각해보려고 실낱 같은 희망을 갖어봤습니다.

"나여~"

역시 집주인 할아버지! 허락도 없이 집에 구멍을 열개나 만든 거에 대해 저는 뭐라고 변명을 할 수 있을까요. 문을 열었고 저도 모르게 무슨 일이시냐고 뻔뻔하게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다그치시듯 말씀하셨죠.

"수도요금 좀 줘! 원래 벌써 받았어야 했는데 통 집에 없으니 만날 수가 있어야지~"

정말 기쁜 마음으로 8천원을 건내드리며 편안히 쉬시라고 90도로 인사를 하므로써 저의 벽 선반은 작업은 완벽하게 마무리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