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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5 붉은 비단보 - 권지예
her Little White Book2009. 9. 25. 03:00
권지예의 첫번째 장편 '아름다운 지옥' 만 빼고 그녀의 다른 책들은 모두 읽었기 때문에 권지예 작가의 두번째 장편이자 내게는 그녀의 첫번째 장편인 '붉은 비단보'는 그 자체로써도 낯선 경험이었다. 그것 말고도 이 책에는 몇가지 낯설음이 더 있는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역사 속의 특정 인물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권지예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녀는 일단 한국적인 것에 낯선 사람이고 (한국사람이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보다 토속적인 것보다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성격이 어울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하물며 그 옛날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이야기라니...) 더구나 그런 어색해보이는 소재를 다루기 위해 사용한 어휘들도 그녀에게 낯설었다. 아마도 권지예 스스로도 그런 낯설음을 좁히고자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꺼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조선시대의 예술가적 자아를 갖은 세 명의 여인들,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을 모델로 삼고 그들의 특징과 에피소드들을 역어넣은 것은 소설의 내용이 상투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곳에 다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을 동시대 인물로 역어낸다던지 상호간의 관계적 장치들이나 소재들에서 느낀 참신함이 더 컸다. 그렇기에 옛 전설이나 역사속 인물을 중심 소재로한, 심심찮게 나오는 그런 소설들과 구별되는 특색도 갖고 있다.

서사가 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읽지 않고 지나가는 문장이나 문단들도 있었다. 다음을 예측하기 쉽다는 것이 되려 의외성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 기대는 필요 없을 정도다. 항아와 서로 사랑했던 준서가 사실은 죽지 않았고, 또 그가 죽지 않았음에도 죽은 걸로 항아에게 알려지게 된 사연도 어떻게 된 일인지 뻔히 보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들 속에서 곳곳의 묘사가 상당히 감각적이다. 그래서 읽기에 즐거운 글이었고 되도록 띄어넘지 않고 읽게 만들었다.

계연성 없는 사건들이 불편했다. 빈이가 금강산으로 떠나는 이유가 빈약했고, 죽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작품들 중 남길 걸 정리하고 없앨 껄 없애려는 항아 또한 그래야 할 이유가 없이 현실 속에 남겨져있는 신사임당의 작품들과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항아보다 먼저간 가연이 또한 그녀의 작품들을 죽기 직전에 정리하고 없애버리는 공통적인 행동 패턴을 그려내어 항아의 행동이 약간은 자연스럽게 보이게 했을 뿐이다.

예술적 자아를 억압 받을 수밖에 없었던 옛 시간 속 여인들을 그리면서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석하지 말고 그냥 보여주기만 했으면 어땠을까. 항아와 초롱을 비교하고, 가연과 항아를 비교한다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삶에 대해 작가가 항아의 생각이라는 형식을 빌려 의미를 부여해준다던지 어떤 해설을 하면서 개입하려는 것들이 어색했다.

구성에 있어서도 의아한 부분이 있다. 항아의 죽음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되는데 바로 그다음 부터는 항아의 유년시절로 돌아가 그녀의 오십 년 평생을 시간순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거기서 항아의 죽음을 궂이 앞에 짧막하게 배치한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그냥 시간 순서대로 서술했다면 너무 단조로운 느낌이 있을 것 같긴 하다. 아마 그걸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거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식의 구성이 사람의 일대기를 그리는데 일반적이기도 하고, 그럴 때 사람의 시각의 도움으로 맨 앞과 맨 뒤의 장면 연결이 더 자연스럽긴 하다. 과연 소설에서도 그만큼의 효과를 준 구성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소설 주제를 생각했을 항아라는 인물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그런 구성이 약간의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흔하고 단순히 장면 오려붙이기의 편집적인 구성이기도 하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