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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8 산과 산이 아닌 곳
A Day in the Life2009. 9. 28. 02:23
집에서부터 걸어다닐만한 곳에 있는 청계산을 오를 때 티셔츠와 반바지의 가벼운 차림이 좋다. 수건 하나 없이 옥녀봉이나 매봉까지 오르면 땀이 비오듯 하지만 바람에 말리면 그만이다. 물병 하나 없이 갈증에 목이 타더라도 몇 백 미터를 돌아서 들를 수 있었던 개나리 약수터를 그냥 지나쳤으므로 참을만하다는 거다. 수건이나 물을 들고 산에 오르면 땀 닦을 핑계로 발을 쉬게 하길 점점 더 할테고, 몇 모금씩 줄어드는 물병의 수위가 귀로를 생각나게 할 것만 같아 성가시다. 산에 흘려버릴 수도 있는 땀을 훔쳐낸 수건은 출발할 때보다 더 큰 짐이 될 꺼고, 갈증과 바꾼 빈 물병은 버리고 싶은 갈등이 될 수도 있다. 맨몸으로 오르는 청계산이 가장 시원하다.

산을 오르며 봐둔 쓰레기들은 내가 오른 길을 도로 내려감에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 처음 발견했던 건 내가 마지막으로 줍게 될 쓰레기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릴 깔고 앉아 각자 싸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먹는 걸 보게 되면 옥녀봉에 가까워졌다고 알 수 있다. 옥녀봉에 흙을 깔고 앉아서 땀을 식힌다. 높은 곳에 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 '야호'의 메아리를 기대하듯 그들에게 나 여기 올랐다고 알리고 싶어진다. 버려진 비닐봉지 하나쯤은 그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제 산을 내려갈 차례다. 버려진 비닐봉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채우면서.

쓰레기를 줍다 보면 이걸 버린 사람이 이 길을 올랐을까 혹은 내려갔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내려가는 길에 춥파츕스 막대기를 발견하고 그 뒤에 추파츕스 껍대기를 만나게 되면 그걸 버린 사람은 이 길을 오른 사람이다. 캬라멜 껍질이 주기적으로 버려진 경우 내려갔는지 혹은 올라갔는지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버린 사람의 흔적이 낯설지 않아지면서 어색한 반가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사탕껍질 따위보다 훨씬 큰 쓰레기들은 등산로 옆 수풀에 버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왠만하면 길을 조금 벗어나서라도 그것들을 주워담는다. 다음에 여길 지날 때 같은 걸 다시 보게 된다면, 오늘보다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줍지 않고 지나쳤었다는 것보다 아무도 그걸 줍지 않았다는 게 말이다. 그건 불편한 외로움이다.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고 짊어진 배낭에 물병을 두개씩 꼽은 채 지팡이까지 지고 가는 대부분의 등산객들과 마주칠 때면, 가벼운 차림에 봉지 하나 들고 내려가면서 이따금 허리를 숙이는 내가 멋쩍어진다. 너무 간소한 복장이 그렇고,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 또한 그렇다. 그들은 등산객이고 나는 청소부인 것만 같다. 그래서 보고 지나치는 것 없이 싹 다 주워야할 것은 부담감도 인다. 혹시 그들이 내 민망함을 따라서 격어보기로 한다거나, 오늘 내가 그들 앞에서 지나친 걸 대신 줍지 않아도 상관 없다. 줍는 사람보다 버리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산과 산이 아닌 곳의 경계는 어디일까. 매표소, 포장도로가 시작되는 곳, 녹음이 사라지고 부침개나 두부전골 또는 막걸리 따위의 냄새가 맡아지는 곳부터? 엉덩이와 다리의 경계처럼 어떤 팬티를 입었느냐에 따라 달리 생각될 수 있는 문제. 오늘은, 내가 더이상 쓰레기를 줍지 않은 거기서부터 산이 아니었다. 산이 아닌 곳에 쓰레기는 훨씬 더 많다. 나는 왜 줍기를 멈췄을까. 산과 산이 아닌 곳의 경계는 내 가식의 경계에 있다. '야호' 하지도 않고 메아리를 기대하지도 않는, 산이 아닌 내 일상은 쓰레기로 넘쳐난다. 거기서 나는 버리는 사람일 뿐이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