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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6 태안 기름유출사고현장 자원봉사
Every little thing2007. 12. 26. 11:51

나에겐 2002년 태풍 루사가 재난복구 자원봉사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홀로 강릉에 가게 됐던 건지 지금은 기억나질 않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매년 재난이 발생하면 왕왕 출동하곤 했었다. 주로 홍수나 태풍등의 재난이었기 때문에 활동 시기는 항상 더운 여름이었다. 주로 했던 일들은 무너진 도로에 모래푸대 쌓기, 쓰러진 벼 세우기, 침수된 곳에서 가재도구 끌어내기 등이었다. 그런데 이번 재난은 시기적으로 추운 겨울인데가 그간 해왔던 일과 전혀 달라서 조금 낯선 기분이다. 그리고 이번 기름유출 피해현장 자원봉사에 또한가지 더 낯선 것은 엄청난 국민적 관심에 따른 넘쳐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넘쳐나는 자원봉사자들

지난 22일과 23일에 학암포와 구름포에 자원봉사를 출발하기 전, 나는 이번 자원봉사의 의미를 이전과 다른 데 두려고 했었다. 어찌보면 필요 이상으로 낭비된다 싶기도 할 만큼의 자원봉사자들이 재난복구에 몰려드는 걸 보면서 약오름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언젠가 강릉에서 제방을 쌓고 있을 때 무너진 도로 탓에 승용차를 저속 주행하며 짜증내던 관광객들이 지나가며 바라보던 무관심의 시선들이 떠올랐다. 그때 언론에선 이미 복구가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보도되었었지만 실정은 달랐었다. 그때도 나는 사람들에게서 똑같은 약오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요즘같이 언제나 있어왔던 자원봉사자들이 조명을 받았던 적도 없었다.

태안을 향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유행성 군중심리로 한철 관광코스 또는 체험 관광코스에 몰려드는 느낌이다. 마치 뚜렷한 주장 없이 군중 심리나 언론에 이끌려 시청앞에 촛불을 들고 몰려드는 군중들 처럼, 혹은 누군가의 잘못으로 경제가 파탄났을 때 국가나 특정 사람들의 잘못을 메우기 위해 금을 모아대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난 이번에도 그때처럼 우리의 이런 주장 없는 군중성향이 또다시 해외토픽으로 기사화되는 걸 보면서 전혀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되려 쪽팔림까지 느끼게 됐다. 강릉이란 지역은 작년에 발생했던 재난이 올해도 똑같이 발생한다. 멍청하게도 그렇게 반복되는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 하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의 손을 빌려 문제의 복구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우리다. 홍수나 태풍이 자나갈 때도 그랬고, IMF 때도 그랬고, 촛불 시위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이번 기름유출사고도 똑같이 될 것 같아 나는 화가 났던 거다.

그래도 눈으로 보고 싶었고 직접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게 바로 이번 자원봉사의 출발 전 의미었다. 누군가 저질러놓은 걸 치우기에 화가났던 나는 굳이 돕겠다기보단 몸으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가해자가 뚜렷한 재난

예년의 재난들에 비해 이번 서해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것의 심각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솔찍히 생태계 파괴 이외에 태풍이나 홍수 보다 심각할 게 있나 싶기도 하다. 우리가 눈 앞의 먹고 사는 문제 말고 생태계 따위에 관심을 두긴 했었던가? 양식업이나 해수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재난지역이 치유될 때까지 몇년동안 생계수단을 잃게 됐다지만, 홍수나 태풍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임시로 지원받았던 컨테이너에서조차 대여기간이 지났다며 쫓겨나서 살 곳을 잃게 된 경우에 비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게다가 이번 기름유출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던가를 생각해보면 차라리 홍수나 태풍따위의 재난보다 상황이 더 나아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도대체 이번 재난이 뭐가 더 특별하여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를 모으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결국 하나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바로 가해자가 뚜렷한 재난이었다는 것.


가해자가 뚜렷하다는 상황이 자원봉사자들의 발을 움직이게 한 것은 아니지만 언론의 집중 포화를 유발했고 그에 따른 국민적 관심도를 집중시킨 것은 확실하다. 그런 관심 속에서 언론이 자원봉사자들을 두각시키게 됐고 그게 촉매로 작용해서 자원봉사에 대한 국민적 붐을 이루게 된 거다.

자원봉사는 얇고 긴 게 좋다 

내가 처음 재난복구 자원봉사를 갔을 때 나는 머리로 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엔 가슴으로 갔었는데 지금은 그냥 몸으로 간다. 머리로 가면 겁이 많아져서 첫 출발이 어려워지며 다녀온 후로 '다음'이 없다. 가슴으로 가게 되면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몸으로 간다. 이거저거 따지지 않고 너무 큰 의미를 두고서 보람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으며 그냥 튼튼한 몸 하나 움직여 웃으며 즐겁게 일하고 올 뿐이다. 그덕에 지치지 않고 갔던 곳에 또 가고 다음에 또 가게 되는 것 같다.

자원봉사는 얇고 긴 게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길 하길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라고들 하는데, 사실 그런 이야길 들을 때마다 나는 다른 부연설명 없이 "얇고 긴 게 좋으니 부담 갖지 말고 갈 수 있을 때 가라." 라고 말한다. 사실 그 말 뜻은 작정을 하고서 일회성으로 체험삼아 가는 것보다 시간여유 있을 때 소일꺼리로 꾸준히 갔으면 한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이해해서 듣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냥 이성적으로 가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을 갖으려고 하거나 또는 돕고 싶다는 열망으로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가고려고들 하니까.

이번 태안 자원봉사자들도 아마 그럴꺼다. 다들 머리와 가슴으로 움직인 사람들일꺼고, 일정 시간이 지나 언론에서 다른 이슈를 일면으로 하게 되면서부터는 시들해질 게 분명하다. 그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이미 앞서 이야기 했었다. 이번 재난지역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건 앞으로 불과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을 꺼다. 그런데 유행 같이 번진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까? 부디 꾸준히, 오랜 관심 속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었으면 한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