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09. 12. 21. 19:12
이 글은 지난 12월 2일 EBS 스페이스공감에서의 오정수밴드 공연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2010년 1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BS Space 공감 2009년 12월 2일
오정수 어쿠스틱 듀오 오정수(g), 김창현(b)
오정수 일렉트릭 밴드 오정수(g), 배장은(k), 김지석(as), 최은창(b), 이도헌(d), 김민채(vo)


악기의 톤을 테크닉으로만 본다면 그건 키스를 글로 배운 것과 같다. 기타의 경우 손의 자세, 손톱의 모양, 탄현 방법 등 물리적인 요소들도 영향을 미치지만, 결국 좋은 톤을 만드는 건 8할이 음악에 대한 느낌을 살리는 일이다. 다른 악기도 방법이 다를 뿐 이치는 같다. 그렇기에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톤이란 그것이 어쿠스틱이거나 전자악기거나 상관없이 결국 음악을 만드는 요소로서 다르지 않다. 나아가 테크닉 또한 음악 위에서 만들어지기에 연주를 해보지 않은 대중들도 그 차이를 느끼게 되는 거다.

이날 EBS 스페이스 공감의 무대에는 좋은 작곡과 해석을 바탕으로 최선의 톤을 빚어낸 연주자가 있었다. 오정수는 명징한, 기억에 잘 남는 작곡을 보여준다. 이날 연주된 'Song for Nature'나 'New York' 같은 곡에서는 다이내믹하게 전환되는 구성과 리듬이 돋보였고, 대부분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바탕으로 그 특징들을 잘 살린 솔로와 톤을 들려주었다.

공연은 베이시스트 김창현과의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됐다. 오정수의 <Invisible Worth> 에 수록된 곡들이 연주됐는데 음반에서 조지 가존(George Garzon)이 연주한 주선율들을 오정수의 어쿠스틱 기타로 들을 수 있었다. 이후 배장은의 글루미한 피아노 전주와 오정수의 심장 고동소리 같은 기타효과음을 시작으로 피아노-기타 듀오의 'Throughout'이 연주됐다. 그에 이어진 즉흥연주부터는 최은창, 김지석, 이도헌 등이 가세한 밴드로 연주됐고, 중간에 객원보컬 김민채가 등장하는 등 다채로운 편성을 보여줬다.


연주는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를 더했지만, 'Throughout'부터 이어진 즉흥연주와 'The Weak' 까지의 연결에서는 관객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공연 프로그렘에는 'Throughout', 'Free Improvisation', 'The Weak'로 구분돼 있었는데, 오정수는 이 셋을 분위기 전환만으로 이어붙이면서 각각의 곡을 명확하게 마무리 짓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낯설음이었다. 다양한 공연을 많이 경험해도 그런 가능성을 이성적으로 머리에 넣고 있거나 혹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훈련된 감상자는 드물다. 관객들을 눈치9단으로 단련시켜주는 자유즉흥 또는 구성즉흥 무대라면 모를까, 이날의 관객들에게서 연주자의 의도에 대한 인사이트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곡들이 전환되며 이어지는 두 개의 공간에서 단 한명도 박수로 흐름을 끊지 않았다는 건 무척 고무적이었다. 짐작하건데 누군가 기침소리라도 냈다면 그것을 핑계 삼아 관객들은 참았던 박수를 터뜨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 두 번의 정적 속에서 오정수 밴드가 의도한 음악에 집중하며 침묵을 지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자들의 의도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 이러한 우연은 까치설날이나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바란다고 해서 이뤄지지도 않고, 예측 후엔 틀리기 마련이며, 아니라도 즐거움을 망치진 않는---즐거움이었다고나 할까?


주목받는 뮤지션은 음악적 행보에 '발전'과 '변화',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대중의 기대에서 이내 멀어지게 된다.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것만큼이나 작품을 신중히 선택해서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영역을 넓히듯---하다못해 성형수술을 통한 '변신'도 '변화'로 봐주자.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대중이므로---재즈 또한 발전과 변화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생각이다. 변화는 발전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그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짧은 인생에서 발전보다는 변화의 한계점이 더 멀기 때문에 변화에는 시도의 의미도 반영될 수 있고 완성도에 대해 관대하기도 하다.

오정수는 이날 공연에서 두 가지 편성을 보여줬고, 그 자신이 곡마다 연주의 변화를 준만큼 다른 멤버들과 함께한 음악 색깔 또한 다양했다. 공연이 짧게 지나갔던 것은 다행히도 그런 의도된 변화가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냈고 지루할 틈 없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사실 더 많은 걸 보여주려는 부담에서 자유로웠을, 예전에 마주한 클럽 공연에서 오정수는 더 인상 깊었다. 하지만 앞으로 오정수의 음악이 재즈 팬들을 '숨죽이게 할' 발전과 변화의 연속일 거라는 기대를 품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