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little thing2010. 2. 3. 00:07
드라마 "파스타" 를 즐겨보고 있습니다. 평소에 좋아했던 배우 이선균과 공효진의 출연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동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순전히 공효진 때문에 보고 있죠. 드라마 속에서 다른 배우들의 캐릭터가 파스타 같다면 공효진만 스파게티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특별할 것 없으면서도 특별해보이는, 반대로 특별하지만 특별할 게 없는 파스타보다 그냥 솔직하고 부담 없는 스파게티가 더 좋습니다.

파스타와 스파게티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파스타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이탈리아 음식을 말하고 스파게티는 그 파스타에 사용하는 수많은 밀가루 반죽 형태 중 얇고 가는 국수의 한 종류입니다. 흔히 알려진 마카로니도 있지만 만두처럼 속을 넣어 빚은 라비올리 같은 것도 파스타 일종이죠. 그런식으로 모양과 형태는 수십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요리법까지 따진다면 파스타란 정말 많고 다양한 요리를 통칭하는 말인 샘이죠.

또다른 관점에서 보면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스파게티는 미국에서 대중성을 띄게 되어 세계로 퍼진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 미국이 이탈리아로부터 스파게티라는 메뉴를 들여온 후 인스턴트 캔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대중화가 시작됐다는 말이 있죠. 저는 9살 때 처음 스파게티를 알게 됐고 이후 엄청나게 스파게티를 좋아했지만, 스파게티가 아닌 "파스타"라는 말을 알게 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좀 더 지나서부터였을 정도로 시간적 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미국에서 "스파게티"를 들여왔고 이후 경제적인 여유를 더 부릴 줄 알게 되고서부터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파스타란 쉽게 접할 수만은 없는 어딘가 특별한 음식으로써 생각되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남의 나라 음식에 대해서 특별함을 느끼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더 고급이어서가 아닌 것이, 우리보다 못 산다고 생각되어지는 나라의 음식들도 꽤 고급음식처럼 대접받고 있는 걸 볼 수 있고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에서도 그건 마찬가지니까요. 결국 그런 특별함은 얼마나 생활에 가까운 음식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촌스럽게 봐줄만한 건 음식 자체보다 겉멋에 치중하는 우리의 습관이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별 것 아닌 것이라도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그런 경향이 있죠. 가장 대표적인 건 와인이 있습니다. 이제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성공하는 사람이 마시는 것',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 마시는 것' 같은 이미지를 상징하게 되었죠. 그런 것들이 값을 더 비싸게 만드는 중요 요인이 되고요. 그런 식으로 실제 내용보다는 이미지가, 그리고 맛보다는 머리가 시켜서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를 한 번쯤 의심해봄직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 꽤 많습니다. 어쩌면 파스타도 그런 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드라마 "파스타"로 돌아가보죠. 드라마의 인기로 사람들은 파스타라는 음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까르보나라와 토마토 소스 프파게티 정도만 알았던 사람들도 알리오 올리오 라는 낯선 이름을 알게 됐겠죠. 그렇지만 아마도 겉멋에 짙을 수록, 남을 많이 의식할 수록 알리오 올리오를 전엔 몰랐었다고 하진 않을 겁니다. 드라마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싼 파스타라고 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피클에 설탕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뤄졌기 때문에 피클을 안 먹는 사람들도 적잖히 생겨났을 겁니다. 그밖에 국수는 어떻게 삶아야 하고, 새우나 조개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등 드라마 덕분에 아는 척 할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한가지 걱정되는 건 그렇게 드라마를 통해 파스타에 대해 더 알게된 사람들 중에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주방에서 쉐프를 불러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이 늘어나진 않을까 하는 거죠.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그런 드라마 "파스타" 에서 보여지는 것들 중 저는 마음에 안 드는 게 더 많습니다. 일단 저역시 전보다 더 피클을 싫어하게 됐고요, 너무 적은 량을 서빙하면서도 "양이 충분하다" 라는 대사가 간혹 나오는 것도 마음에 안 듭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제가 맛있게 먹었던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는 '토마토 국수무침', 까르보나라는 '생크림 비빔국수', 봉골레 스파게티는 '조개 볶음국수' 정도가 돼버린 것 같아서 기분도 좀 그래요. 이율배반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제가 공효진을 좋아하는 겁니다. 음식 자체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배경이나 조건 등, 뭔가 특별해보여야 하는 강박들이 뒤덮혀있는 드라마 속에서, 그녀는 파스타가 아닌 평소 좋아했었고 익숙했던 '스파게티' 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