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12. 2. 29. 21:39
저는 문제에 관심을 갖으면 그 과정도 지켜보려고 합니다. 생업이나 기타 다른 일들이 바빠서 그게 어려울 때가 많지만, 결론이라도 찾아보는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문제만 들쑤시고 지나쳐 가버리는 가벼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윤선씨의 Red Sea Jazz Festival 참가 문제에 대해서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올리브나무를 통해 뭔가 진척된 내용을 보일 줄 알았는데요. 나윤선과 관련되어 주도하셨고 제 글에 대해 위에 댓글을 열씸히 다셨던 냐옹님 말씀으로도, 나중에 글 올라오면 꼭 읽어봐달라고 하셨더랬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과정도 결론도 없습니다. 적어도 냐옹님께서 이야기하셨던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적 보이콧" 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죠.

결국 과분한 관심을 보인 게 되어버린 저로써는 실망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고, 팔연대를 사람만큼 가벼운 조직으로 오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저 냐옹님만의 책임지지 못할 해프닝이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당신은 참 가벼운 사람입니다. 비록 서로 반하는 의견을 갖기는 했어도 저는 성의를 다해 사유하고 이야기했었고, 이제 그걸 후회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간절함을 갖고 있긴 하나요? 그에 대한 문제를 오래 끌어가면서 해결할 인내심이나 자질은 있나요?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12. 1. 19. 18:46

무관심 속의 진실로 퍼져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왜곡되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있다. 인간이 너무 쉽게 반복하는 "착각" 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끌어왔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흥미가 갖기 시작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그러나 남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쏟기에 팔레스타인은 거리가 멀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와 관련된 아무런 동기부여가 없었다. 만약 문화적 흥미라도 갖게 됐더라면, 어쩌면 난 지금쯤 그곳에 여행도 가봤겠고, 그곳 문제에 대해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단체가 있다. 최근 그들이 운영하는 "올리브나무" 라는 웹진에서 흥미를 끄는 소재가 등장했는데, 이스라엘의 Red sea jazz festival 에서 공연할 계획인 재즈뮤지션 나윤선에게 공연에 대해 문화적 보이콧을 촉구하는 공개 편지였다.("이스라엘에서 공연을 계획하신 나윤선씨께") 재즈는 내가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품어온 대상이었다. 재즈는 적지 않은 음반컬랙션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종사자를 제외한 애호가 중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재즈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건 나의 관심의 방향이 해외를 통해 브랜딩되어 들어오는 뮤지션만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찾기 어려운 다양한 국내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향해있다는 데 있다. 나에게 재즈란 흥미를 넘어선 사랑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고,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은 채 국산(?)을 소외시키지 않는 등의 해야 할 일들을 기꺼이 하고 싶은 대상이란 말이다. 그렇게 재즈를 사랑해온 사람으로써, 동시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써,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공개편지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내용이 그럴싸하게 읽혔다. 하지만 한켠에 공감할 수 없는 다름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번 떠올려 생각한 끝에 그 다름이란 바로 "사랑"임을 알았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게 사랑이 있을까? 사실 그런 의문을 문장으로 만들지 않았을 뿐, 이 단체를 알게된 시점부터 품고있던 의구심이었다.

매번 올림픽이나 월드컵, 그밖의 국제적 스포츠 행사들을 볼때마다 대중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뻔뻔함, 비겁함, 잔인함 같은 게 있었다. 국내 축구리그 경기에는 관심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국가대표의 경기를 보면서는 실력을 질책하고 투혼을 강요하곤한다. 올림픽 메달 효자종목들 중에는 비인기종목이 상당수 있다는 것 자체로 사람들의 무관심을 탓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땄을 때 국민들이 보이는 실망을 보면서 참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닐꺼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적 관심 또는 애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윤선의 음악을 좋아하고, 재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미 계약되어있는 이스라엘 공연 스케쥴에 대해 문화적 보이콧을 하길 기대하는 것과, 단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리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대조적인 일이다. 그건 마치 나는 네가 운동경기하는 걸 지금 처음 봤음에도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우승을 통해 국위선양하길 강요한 것도 당연한 일이며, 네가 실망시켰기 때문에 그 결과가 너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이미 우리에게 널리 퍼진 그런 비겁함과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문화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사랑을 바탕으로 한 어떤 기대가 있을 수는 있을지언정 메달을 땄기 때문에 사랑해주겠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앞서말한 비겁함이 첫번째 이유고, 또한 문화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들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올리브나무에서 지난 18일에 번역게시한 "이스라엘에서 공연을 취소한 Tuba Skinny의 공식입장문"은 유치한 짓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Tuba Skinny, 그들의 정의로운 보이콧, 그제서야 들어보게 된 그들의 음악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된다는 싸구려 문화의식이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게 정의감이 있을지언정 사랑은 있는 걸까? 나윤선에게 문화적 보이콧을 요구하는 것은 정의감인가 사랑인가? 만약 사랑이 있다면 그건 가까운 우리의 뮤지션을 향한 사랑이기보다 멀리 이국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가까운 사랑일 것이다. 사실 이부분은 처음 이 단체를 알게 됐을 때부터 시작된 의문으로, 가까이서 사랑할 수많은 대상들을 넘어 그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어떤 것일까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니 사랑은 던져버리자. 단지 그들의 일련의 활동들이 정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들이라면, 정도를 넘어서 대중을 선동하는 식의 강요를 유도해서는 안된다. 문화인으로써 사랑 받기도 어려운 이땅의 뮤지션에게 대중들이 엉뚱한 이유로 돌을 던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건 정의를 명분으로 자행하는 또다른 부정이다.

지난 16일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사무실에서는 나윤선의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이야기마당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Tuba Skinny 의 보이콧 입장에 대해 웹진에 게시한 것을 보면 슬프게도 그들은 정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느라 문화적인 사랑은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난 그런 활동이 앞으로도 설득력을 갖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건 땡깡일 뿐.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