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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31 소중한 것들의 사라짐에 대해서
A Day in the Life2008. 8. 31. 03:49
대전의 교보문고는 저에게 학창시절부터 많은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갈 때면 단골 음반가게였던 세레나데의 상희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되어야 했고, 두어시간 동안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진열된 음반들을 전부 다 손으로 훑곤했으면서도 단 한번도 거기 갔었다는 말은 상희누나에게 한적이 없었죠. 세레나데에 가면 듣고 싶은 음악이 있었고 또, 음악을 좋아하는 상희누나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반면 교보문고는 내가 살면서 익숙해진 동네는 아니었지만 더 넓고 희안한 것들로 가득한 해외여행지 같은 느낌이었죠.

지금 세레나데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대전에서 교보문고에 갔을 때 무척 당황했었죠. 층을 잘 못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믿어지질 않았어요. 그 쪼끄맣던 세레나데가 없어지는 건 차타고 지나가며 확인하면서도 마치 세월 탓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그 커다란 교보문고가 송두리째 없어져서 사무실들로 바껴있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어느덧 저는 상희 누나가 음악을 들려주지 않아도 될만큼 많은 음악들을 알게 됐고, 또 교보문고가 이젠 비좁다 여겨질만큼 다양한 음반 유통경로를 이용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오늘에까지 오게 했던 그것들이 사라졌다는 건 오래도록 씁쓸해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에요.

하긴 단골로 다니던 음식점이나 술집들도 어느새 가보면 사라지고 없죠. 특히 그런 곳들은 저 혼자서만 찾는 단골이 아니라 같이 갔던 이들과 다시 모였을 때 떠올리며 함께 했던 추억을 공감했기에 또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단골이 되기 때문에 사실은 없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으면서도 여러사람들이 모여 함께 아쉬워하곤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했던 곳도 또하나 사라진답니다. 오랜만에 교보문고를 찾았다가 충격을 받았던 그날에 뉴스를 통해 또한번 놀랐죠. 덕적도 옆의 작은 섬 굴업도가 리조트화 된다더군요. 아마 그 뉴스를 접한, 저와 그곳에 함께 있었던 모두가 서로 각자의 집 안방에서 저처럼 아쉬워했을껍니다. 나중에 꼭 다시 와서 무인도에 가까운 그곳의 해변을 벌거벗고 뛰어놀겠노라 생각했던 곳이, 이젠 다시 가도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곳으로 바뀐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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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이 사진 솜씨


앞으로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게 될 날보다,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왔었지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을 잃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중히 만드는 법을 까먹는 것과 동시에 잃어버리는 것도 익숙해질까요?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