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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6 영화관에서 엔딩크레딧을 보나요? 3
Every little thing2009. 5. 16. 01:38
영화 관람은 아주 흔한 문화생활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생활을 조금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흔한 문화생활을 넘어서 일종의 취미로 인정하면서 취미가들 이라고 구분하여 말하기로 하죠.

그리고 영화 취미가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가 끝난 후에 객석에 남아 엔딩곡과 엔딩 크래딧을 즐기는 게 패턴화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또다른 관점에서는 영화가 끝나는 시점을 엔딩 크래딧까지 모두 끝났을 때로 봐야 맞겠지만,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마지막 장면이 꺼지면 영화가 끝나는 걸로 여기고 또 사람들이 일어서서 줄지어 나가면 영화가 끝난다고 받아들이죠. 역시 취미가들과 관람객들은 어딘가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런 차이를 단순히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 대한 정의만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테니 그들에겐 어떤 생각이 있는 거겠죠.

그런데 과연 취미가들이 영화의 엔딩크래딧까지 모두 보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한 걸까요 아니면 취미가들이 보통 그렇게 하기 때문에 본인을 취미가로 좀 더 진지하다고 생각할 자격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걸까요. 마치 관람객들이 다수의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나서는 패턴을 따라하듯 취미가들의 정반대로 객석에 남아있는 패턴을 따라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영화에 대해 더 진지해지기 위한 행동일 뿐 어떤 목적이나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그냥 비슷한 취미가들의 패턴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 행동일 수도 있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취미가들의 그런 패턴에 어울리는 이유들로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 대한 예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서."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엔딩 테마곡과 자막까지도 감상의 범위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저는 여운을 즐기기도 하고 엔딩 크래딧 때문에 극장에서 남아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와 함께 반반 정도 입니다. 영화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달라서 취미가들의 패턴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극장에서 일찍 빠져나갈 때 제 행보를 방해하는 취미가 역시도 다른 때 다른 영화관에서는 일찍 빠져나갈지도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여운이란 게 드문 코미디나 액션영화에서조차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행동을 취미가들의 패턴으로 보는 게 오해에서 비롯된 건 아닐 겁니다. 분명 취미가들에게 그런 패턴이 존재 합니다.

간혹 그렇지 않은 극장도 있지만 그런 취미가들의 패턴을 존중하기 위해서 엔딩크래딧이 모두 끝날 때까지 상영관의 불을 켜지 않는 극장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마지막 장면이 끝난 직후 일어서서 우르르 몰려나감에도 환하게 불을 밝혀주지 않는 건 충분히 취미가들을 존중해주는 이유겠죠. 극장측에서 아무리 그렇게 존중해준다 한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대중의 통행을 방해할지언정 극장 안에 있지도 않은 영화 제작진에 대한 예의만은 지켜주면서 또 엄청난 집중력으로 여운을 즐겨내는 건 아무리 진지하다 해도 분명 쉬운 일일 수는 없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취미가들의 앞 좌석과 그들의 무릎을 스치며 빠져나가면서 웅성거리는 속에서 집중이 어려운 게 당연할텐데도 취미가들은 그자리에 앉아 있는 겁니다. 같은 열에 앉아있던 관람객들의 통행을 막으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간혹 그들은 함께 극장에 동행한 친구가 극장을 나가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가 무안해하며 도로 앉게 만들기도 하는 데, 그래서 간혹 취미가들의 그런 행동이 오만해 보일 때가 있어요. 물론 진지한 취미가들의 입장에서 봤을 땐 보통의 관람객들이 진지한 그들의 감상행위를 방해하면서 극장을 빠져나간다고 생각한다면 화살은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향해야 겠죠. 하지만 다수의 관람객들 입장에서 그 반대의 경우는 분명 오만함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니 관람객과 취미가들을 모두 포함한 대중이란 무리 속에서는 다수의 행동을 방해하는 소수에게 어떤 이유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소수를 이해하려는 접근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대체 취미가들이 왜 영화관에서 엔딩크래딧까지 모두 보고 나오는지를 묻고 싶어졌습니다. 그나마 영어 크래딧이면 읽을 수나 있겠지만 간혹 이태리 영화나 프랑스 또는 남미 영화들에서 낯선 언어의 크래딧을 이해도 못하면서 읽는 시늉하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건 참 우스꽝스런 행동으로 보여지곤 하죠. 영화의 여운을 엔딩 테마곡과 함께 즐기고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봤을 땐, 과연 그들이 가만히 앉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음악 한 곡을 즐길 수 있는 음악취미가들과 교집합일 수 있는지도 의문을 품게 됩니다. 특히 그들 중 평소 음악 감상이 이어폰을 꼽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행위였다거나, 공공장소에서 주변의 소음에 대한 차단재로써 음악을 다루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일반 관람객이 아닌 진지한 취미가라면 분명 자신의 감상행위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통행을 불편하게 했다고 비난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과연 어떤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은 것 뿐이네요. 그리고 혹시 별 이유 없는 행동이라면 자신들의 허구성을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차라리 그 허구성을 깨는 것이 영화에 대해 더 진지한 태도가 아닐지 생각해보길 바라는 거죠. 궁극적으로는 취미가들 중 이유가 있는 사람은 소신껏 이유를 따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패턴까지 따라해야 진지해지는 건 아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