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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in the Life2008. 8. 1. 19:28

절박해하는 누군가의 자기소개서를 보고서 안스러운 마음에 대필을 해줬습니다. 처음엔 '첨삭지도'를 해주려고 시작했는데 그가 써온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보니 필요한 건 그게 아니라 대필일 것 같아서 그냥 갈아엎고 새로 써줬죠. 보통 창피한 생각에 자기소개서 보여주지 않으려고 할텐에 얼마나 절박하면 선듯 보여주기까지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이해가 되는 것이 요새 대기업들은 요상한 질문 같은 걸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작성하기도 까다롭고 하나 써놓은 걸로 다른 데 재활용하기도 곤란하게 만들더군요.

자기소개서가 최악인 경우는 '겸손'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모자라다고 쓰거나 지금은 경험이 없지만 앞으로 잘할 수 있다고 쓰는 건 겸손이기보다 회사에서 사람을 왜 쓰는지 그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이친구의 자기소개서에는 스스로가 모자란 사람이다라는 말이 너무나 많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없는 내용들을 지우기부터 해야 했습니다. 그친구가 제공한 내용은 아이디어 정도로만 활용하면서 거기서 그친구의 생각만 읽어낸 후, 평소 제가 알던 그친구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그안에서 처했을법한 난관과 설정했어야 할 목표 따위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도출했습니다. 그리고 그친구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왔으며 그것이 능력이다라는 식으로 바꿔 써줬죠. 한마디로 말해 거짓말을 주렁주렁 걸어줬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거짓말 하는 것도 어려운 모양이니 제가 대신해준 샘이죠.

일단 친구의 반응은 기대이상이다 였습니다. 오늘이 마감날이었는지라 근무중인 저에게 재촉하는 연락을 해왔는데, "쓰다보니 거의 대필이 되었고, 이건 밥으로 넘어갈 게 아닌 것 같다." 했더니 지랄하지 말고 얼렁 달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결과를 본 후엔 그친구도 밥 가지고 안되겠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제가 설정한 거짓말들이긴 하지만 그친구의 상황을 모른 채 아주 없는 이야길 써준 건 아닙니다. 그래서 남이 써준 자기소개서에 그친구도 상당히 공감해버리는 것 같네요. 저는 그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됐고, 자기소개서 대필 서비스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댓가를 바라는 건 아니고 그냥 밥이나 술 정도 사주면서 만족감을 표시해주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도 쓸 수는 있지만, 그사람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결국 모르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는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별로 알고싶지 않은 사람의 자기소개서도 쓸 수 없습니다. 안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좋게 거짓말을 할 자신은 없거든요. 혹시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어려움을 격고 있다면 저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당신을 이해하고, 또 그렇게 써진 제 글에 다시 당신이 공감하는 걸 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바랄 게 있다면, 입사지원을 하는 사람이 "그래,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면......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