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10. 2. 23. 13:43
이 글은 지난 2월 5일 EBS SPACE 공감에서의 송준서 트리오의 "강렬한 자화상"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3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2월 5일 EBS SPACE 공감
송준서(피아노), 김인영(베이스), 정승우(드럼)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피아니스트들이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연주한 연간 기획 시리즈 "재즈, 클래식을 품다"가 펼쳐졌다. 그 마지막 무대였던 "근현대 음악"의 피아니스트 송준서는 다른 연주자들과 어딘가 달랐다. 네 명의 여성 피아니스트들 속에서 남자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나, 그가 다뤘던 현대음악의 상대적 낯설음도 분명 작용했을 거다. 잠시 생각해보면 '자화상'이란 다분히 회화적인 소재다. 그림이 종교나 왕권을 표현하던 수단이었을 때도,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금기시됐거나 억압됐을 때도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만큼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묻어난 것이 자화상이다. 송준서의 자화상 같았던 이 무대는 어렴풋했던 그의 색깔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스퍼트까지 숨차게 달리는 듯한 그의 연주는 예쁘기보단 힘 있고 굵직한 리듬과 멜로디가 묵직한 터치로 가득 채워졌다. 'Windows'나 'Spain'이 포함돼 있기도 했지만 칙 코리아나 곤잘로 루발카바 같은 부피감과 섬세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곡 스타일의 피아노 독주로 마무리해 대비 효과를 준 쇼팽의 'Preludes No.4 in E minor'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는데,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스타일을 만나게 된 반가운 느낌이었다. 그의 즉흥연주에선 귀에 익은 클래식 멜로디들이 들키지 않을 만큼 들리기도 했다. 송준서는 클래식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소재로 자신의 색깔을 표현해내는 연주자다.

솜씨 좋은 사람이라도 음악을 글로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다시 오지 않는 순간에 대한 공연리뷰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이 날처럼 인상 깊은 연주를 접했을 땐 한 장의 앨범을 건네주듯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없음이 큰 아쉬움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에 대해서는 그게 가능하다. 녹화된 방송을 보는 방법도 있고 다시보기도 있기 때문이다. 송준서의 <Portrait> 앨범 레퍼토리로 연주된 공연이었지만 앨범과 또다른 맛이 있었다. 본방사수로 필자와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