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걸려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역시 그랬다. 창문 하나 없이 벽 네 개와 출입문 하나, 그리고 침대가 전부인 걸 방이라고 불러보긴 처음이었다. 문을 걸어잠그고 침대에 누웠을 때 천장에 메달린 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선풍기를 발견했다. 비록 사물이었지만 나말고도 이곳에서 숨을 내뿜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는 걸 발견하고서 약간은 안심했다. 지금은 12월, 이내 선풍기도 낯설어졌다. 다행히 긴장감을 잠재울만큼, 나는 피곤했다. 쿠션이 다 망가져서 스폰지 같았던 침대 메트리스가 내 몸을 빨아들였다.
잠에서 깨었을 땐 아직 어둠이 가시기 전이었다. 어제 나는 이곳 빠하르간지 메인바자르(Main Bazaar)의 길가에 사이클 릭샤(인력거)를 세워놓고 잠들었었다.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종종 그렇게 하곤 한다. 그 이름처럼 이곳이 시장이긴 하지만, 사실 물건 사러온 손님들보다 훨씬 더 큰 돈벌이가 되는 건 여행자들이다. 뉴델리의 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묵고 있거나 인접해있는 "뉴델리 기차역" 에 드나드는 여행객들로 언제나 넘쳐난다. 여행자들이 흥정에 익숙해져있긴 하지만 여전히 나같은 릭샤 왈라(꾼)들에게 후한 편이어서 다른 곳보다 이곳에서의 벌이가 좋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깍았을지언정, 적어도 시장 손님들보다는 많이 준다.
하지만 오토릭샤들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내가 먼저 입질을 해도 내 뒤에서 오는 오토릭샤 왈라에게 손님을 빼앗기는 일들이 점점 더 자주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들에겐 오토릭샤 요금마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더 편한 수단을 선택하는 걸 꺼다. 그게 더 편하다는 것은 더 빠르고 안락해서일 수도 있지만, 힘들여 페달을 구르는 나를 등 뒤에서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릭샤 페달 밟으며 산다는 게 조금씩 더 어려워진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끄는 릭샤를 델리에서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밟아 가고 있잖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오토릭샤가 일을 나오기 전부터 난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거다.
시차를 극복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첫날부터 부지런을 떨 작정이긴 했지만 새벽 네시, 그렇게 잠을 일찍 깰 수 있었던 건 절반은 내 탓이 아니다. 침대에 말똥말똥 뜬 눈으로 여전히 돌고 있는 천장의 선풍기를 바라보며 한참을 있었지만 다시 잠들거나 하진 못했다. 내 일상 속의 평범한 아침은 이런 나를 낯설어할 거다. 천천히 그날의 채비를 하고서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는데 곧바로 도로 들어가버릴 뻔했다. 밖은 너무나 어두웠다. 창문이 없는 방에서 차고 있던 손목시계로만 가늠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시계가 고장인가 싶을만큼 현실감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뉴델리역에 가서 바라나시로 갈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고, 그전에 여행 여정을 짜는 데 무척 요긴하게 쓰일 'trains at a glance' 라는 기차시간표 책도 사야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빠하르간지란 곳에서 얼마 멀지 않다고 가이드북에 씌어있긴 했지만 그게 어느 방향인지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공항에서 날 픽업했던 사설택시가 이곳이 내가 예약한 숙소라며 데려다줬을 뿐, 난 내가 지도 위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됐다. 게다가 현위치가 어딘지 안다 해도 이런 어둠 속에서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릭샤라는 걸 탈 시기가 온 거다. 사람이 끌거나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가 끈다는, 인도에 가면 반드시 타게 된다는, 여행자의 발이 되어준다는, 감을 잡아가며 흥정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는 인도의 대중교통수단 말이다. 아직 인도 땅을 두 발로 걷기도 전이라 조금 이르고 어쩐지 준비가 덜 된 것 같긴하지만.
하루 일과중에 틈틈히 시간 날 때마다 잠을 자기 때문에 밤이라고 해서 그리 긴 시간을 잠들어있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릭샤를 침대 삼아 잠드는 건 나의 일상이 돼버렸다. 땅바닥에서 잠드는 게 더 편할진 모르지만 그랬다가는 릭샤를 도난당할지도 모른다. 임대료를 내고 쓰는 처지에 그건 절대 있어선 안되는 일이다. 고향을 떠나 돈을 벌러 델리에 와있는 같은 처지의 아이들끼리 모여사는, 그래서 집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은, 숙소에 가봐야 벽과 천장으로 가려져있을 뿐 잠자리로써 딱히 더 나을 것도 없다. 잠들기 직전까지만 참아내면 그만일 정도로 밤 추위에 익숙해진 후부터는, 그날그날 일이 끝난 곳이 내 집이고 잠든 곳이 내 방이 되어줬다.
밖엔 아무도 없었다. 땅에서 발을 뗄 때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모험 같이 느껴졌다. 릭샤를 찾아야 했지만 돌아오는 길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내 앞보다 뒤가 더 어두워졌을 때 쯤 사진으로만 봤던 사이클릭샤를 발견했다. 두 명의 손님을 앉힐 수 있는 수레가 자전거 뒷바퀴 대신 고정되어있었다. 길가 담벼락 옆 어둑한 곳에 세워져있었는데, 멀찌감치서 처음 발견했을 때는 주인 없이 그냥 서있는 줄 알았지만 조금 더 다가가서 보니 그 위에 사람이 누워있었다.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 위 허리를 받치고서 다리는 핸들에 걸친 채 어깨와 머리를 손님용 안장 쿠션에 눕힌 모습이었다. 그런 자세가 무척 익숙해보였고, 그가 자전거 프레임처럼 말랐기 때문에 어울려 보이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편안해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잠들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어두운 색 옷 아래로 앙상한 검은 발목과 맨발이 보였다. 나는 마치 그에게 다가가려던 게 아니었다는 듯 발길을 돌렸다. 어둠 속에 그의 하얀 눈이 돌아선 나를 바라보며 어딜가냐고, 데려다 주겠다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쫓아오거나 하진 않았다. 휴...
첫 손님을 발견했다. 나를 부르지도 않은 그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맞은편에서 또다른 사이클릭샤 한대가 나를 빗겨 갈 것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짓으로 그를 불러세웠다. 방법은 택시를 부를 때와 같았다. 단지 손을 흔드는 소극적인 정도로도 적극적인 그들이 반응하게 만드는 것. 익숙한 삶의 방법 중 하나가 여기서도 통한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릭샤 왈라는 스무 살도 채 안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 걸 기대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미국인을 만난 것처럼 한껏 발음을 굴리며 외쳐댔다. 되지도 않는 원어민 흉내가 내 딴에는 일종의 배려였달까? (아니다, 그건 그저 상습화된 가식인 듯.)
"아임 고잉 투 뉴델리 스테이션"
100루피를 불렀더니 그는 멈칫했다. 당황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보통 흥정을 시작할 때는 황당하게 하는 게 우리의 관례다.
어제 내가 머무른 숙소가 250루피었는데, 여기서 멀 것 같지도 않은 뉴델리역을 가기 위해 100루피는 말도 안된다. 하지만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어떻게 흥정을 해야 하는 건지 감도 못잡고 있는 상태여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난 아직 '루피' 에 낯설었다. 또다시 열씸히 발음을 굴려가면서 릭샤왈라가 알아듣던 말던 떠들어댔다. 기차역이 여기서 멀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 100루피는 너무 비싸다고 말이다. 그는 바로 출발해버릴 것 같은 자세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알아듣고도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깍나 싶어 말하기 미안한 감이 들었지만 마음 속으로 가격을 정했다. 그리고 그에게 30루피를 불렀다.
흥정엔 긴 말이 별로 필요 없다. 그저 짧게,
"50루피"
난 아까 했던 말들을 반복하고만 있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둥, 50루피는 너무 비싸다는 둥 말이다. 손가락을 펴보이며 5루피를 얹어줬다.
"35루피"
그렇게 그는 내 첫번째 릭샤 왈라가 됐다.
개시부터 35루피면 괜찮다.
릭샤 왈라는 나를 태우고서 내가 걷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릭샤가 덜컹거릴 때마다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한 채 서서 힘겹게 페달을 구르는 그가 더욱 힘들어 보였다. 조금씩 주변이 밝아지면서 내 지각은 어설프게 내가 어디쯤 와있나를 판단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뉴델리역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면서 느낌상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어차피 같은 돈인데 멀리 돌아갈 것 같진 않지만, 왠지 릭샤 왈라가 자전거를 모는 방향이 아까 들어왔던 방향을 돌아서 반대로 향하는 것만 같다.
걸어가도 될 거리를 35루피나 받고 가자니 어쩔 수 없었다. 오토릭샤를 탔더라도 35루피까지 필요 없는 거리였다. 미안해서라기보다 손님이 가까운 거리를 왔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약속한 35루피를 다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좀 태우고 도는 수밖에.
이른 아침 릭샤를 타고 쉽지않게 도착한 기차역에서 나는 또다른 우여곡절들을 격어야 했다. 그 시간들은 마치 오리엔테이션 같았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기차역에서 헤맸지만, 인도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많은 걸 배웠고 결국 원하던 기차표와 시간표책자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온전히 떠있는 해를 처음 봤다. 처음 내게 스스로를 열어보여준 거다. 햇볕을 쪼이며 빠르게 자신감을 회복한 나는 기차역에서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저 차도를 한 번 건넌 후 메인바자르라고 적힌 커다란 푯말의 시장 입구를 들어서서 줄곧 직진했을 뿐이다. 초행이었던 길이었음에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침에 50루피나 줬던 릭샤 왈라가 떠올랐다. 흥정에 조금 감을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