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India2008. 2. 29. 14:07
슈림버를 우연히 다시 만난 그날은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엔 인디아게이트에서 만난 수많은 인도인들 속에 섞여 많은 시간을 보냈죠. 가족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가 늦은 시간까지 저를 오래 기다리는 것이 미안해지더군요. 그래서 돌아갈 때는 알아서 갈테니 그만 가보라고 했죠.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제가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찾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그의 머뭇거림을 봤는데, 처음엔 다음날 만날 수 없다는 뜻인가 싶었지만 곧 그가 아직 받지 못한 돈에 대해 걱정한다는 걸 알게 됐죠. 다행히 약속했던 일당을 계산해주고도 숙소로 돌아갈 택시비가 남았습니다.

슈림버를 보낸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저는 인도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감동을 선물받았습니다. 그날의 느낌을 길게 끌고 싶었던지 다음날 아침에는 늦잠을 자버렸죠. 그러다보니 외출 준비가 늦어졌고 슈림버와 약속한 아침 8시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기다리고있을지도 모를 그가 불안해하거나, 포기하고 실망한 채 가버렸을까봐 저는 무척 서둘러야 했죠. 준비하다 말고 일단 나가서 그에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들어올까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저는 그가 밖에 없을 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나 붙잡아 "헬로! 꼬레안? 웨어아유고잉?" 하는 릭샤왈라가 꼭 저를 태우기 위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사이클릭샤왈라도 저를 기다리기로 하고서는 다른 손님이 생기자 그냥 떠나버렸었는데, 인도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욕먹을 일도 아니었죠. 그래서 준비하던 도중에 나가보는 건 좀 우습다 여겨졌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거니와 괜히 그가 와있지 않음에 제가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갈 채비를 서둘렀지만 30분 이상을 늦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메인바자르로 들어서자 그곳엔 오늘도 파란색 스웨터의 작업 유니폼(?)을 입은 슈림버가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안녕하세요, 슈림버!"

저는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그에게 인사했습니다. 그가 거기 와있었던 건 약속을 지키기 행동이기보다 하루 일꺼리를 벌기위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가 안 왔다면 다른 릭샤를 타도 그만이었고요. 그런데 그는 약속도 지켰고 저를 기다리기까지 했지요. 제가 그가 기다릴 꺼라고 기대 안했던 것처럼 슈림버 역시 제가 다른 오토릭샤를 타고 나갔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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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메인바자르로 나와준 슈림버. 전날까진 사진찍길 거부했었는데 이날은 포즈를 취해줬다.


제가 그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을 때 그는 "노 프라블럼, 마이 프랜!" 했습니다. 인도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가벼운 말이지만 그때만큼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는 제가 그에게 보인 것 이상의 믿음을 보여줬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마이 프랜" 이란 말을 잘 쓰는 편도 아니었고요. 여기서 무겁게 '믿음' 이란 말을 쓰기보단 서로간에 어떤 긴장감이 덜어져 편한 느낌이 되었다고 하는게 더 어울릴 것 같네요.

그와 헤어질 때, 처음 델리를 떠나면서 역전에서 샀던 침낭을 그에게 선물했습니다. 어차피 버리려고 했던 물건이라 좀 미안했지만 그라면 그걸 팔 수도 있을꺼라고 생각했죠. 그가 가격을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흔쾌히 200루피 달라는 걸 100루피에 샀다고 말해줬고 팔아서 쓰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공항까지 태워가고 싶어했지만 훨씬 더 싼 셔틀버스도 있었고 돈도 거의 남아있질 않아서 그럴 수는 없었죠.

어쩌면 그가 오늘 절 기다렸던 건 공항까지 태우고 갈 수입까지를 계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좋게 받아들이면 그만인 일인데도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인도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슈림버는 헤어지면서 다시 또 델리에 오게 되면 전화하라고 말해주더군요. 아마도 저는 또 슈림버를 오해했던가봅니다. 언제나 그곳에 다시 가게 될지가 의문이지만, 그때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