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에 어떻게 간데요?"
뒤를 돌아보니 아까부터 보고있었다는 듯 길 건너편에서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플래시를 찾고 있잖아 라고 말하고 돌아섰는데, 속으로 너네 집에서 하루 재워줄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헬멧에 플래시를 머리에 하나 꼽고, 뒤에서 오는 차가 볼 수 있도록 안전등도 하나 달고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한 1km 쯤 갔을까? 눈 앞에 갑짜기 나타난 뭔가가 있었는데, 길 옆에 펼쳐놓고 말리던 쌀 낱알을 돌보러 온 농부 할아버지였다. (추수기라 그런지 여행 내내 낱알 말리는 풍경을 많이 봤다. 전부 다 도로 가길을 이용했기 때문에 자전거 여행중인 내게는 길을 빼앗긴 기분에 볼 때마다 반가울리 없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를 치진 않았지만 가뜩이나 조마조마하던 가슴을 오그라들게 하기에 충준했다. 그리고 얼마 더 못가 자전거를 되돌렸다. 아까 13번 국도와 19번 국도가 분기하기 직전에 보아뒀던 수남초등학교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학교에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눈치 볼 것도 없이 그대로 운동장 한구석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저녁 대신 양갱 두개를 오물오물 씹고서 일찍 누워서 잠을 청했다. 몸을 쉬게 했더니 밤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대신 외로워움이 밀려들었다. 여행 내내 충전이 어려운 휴대전화의 베터리를 아낄 생각으로 어딘가에 전화 한통 하지 않고 참았다. 사실 별로 전화할 곳도 없다는 생각에 더 쓸쓸했다. 가끔 휴대전화란 건 날 더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더라.
새벽 4시가 되자 전날에 내가 가을 날씨를 우습게 봤다는 걸 깨달았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짐을 뒤져 점퍼를 뽑아내 입어야 했고 몸을 웅크리고서 바들바들 떨면서 버텨야 했다. 6시가 조금 넘을 때까지 나의 비몽사몽간의 바이브레이션은 계속 됐다. 그러다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튀어나갔지만 밖의 엄청난 추위 때문에 곧바로 다시 안으로 뛰어들어와서 바이브레이션을 계속했다.
아침 7시쯤 되어 몸을 일으킨 것 같다. 그땐 밖이 제법 밝았기 때문에 안보다 밖이 더 따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좁은 텐트를 빠져나와 미끄럼틀 옆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운동장을 살펴봤다. 저 멀리서 한 꼬마아이가 공을 차다가 나를 외계인 바라보듯 낯설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전부터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가보다. 운동장 한구석에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만한 텐트 속에서 누군가 느릿느릿 밖으로 기어나와 웅크리고 있으니 아이의 흥미를 끌 수밖에. 그렇게 앉아있다가 조금 견딜만해지자 해가 잘 드는 곳에 침낭과 텐트를 널었다. 밤새 내 몸에서 증발한 수분과 새벽 이슬이 고여 텐트 안으로부터 물을 한바가지는 쏟아낸 것 같다.
시골 아이들은 학교에 참 일찍도 나오더라. 이른 아침부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몇몇 아이들이 쭈뼛쭈뼛 낯선 내게 다가왔다. 그중 어떤 한 무리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각자 세개씩 쓰레기를 주워오란 지령을 받고 신나게 출동했는데, 내가 어제 밤에 먹었던 양갱 껍질을 건내주자 그 중 한 녀석이 신나게 받고서 뛰어갔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녀석이 "저두요!" 하고서 나한테 달려들었는데 난 그녀석도 나에게 쓰레기를 달라는 건 줄 알았다. 실망하며 돌아서는 녀석을 보니 아마 녀석은 내가 쓰레기가 아닌 양갱을 나눠주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순간 가방에서 몇개 꺼내줄까 싶었지만 내 비상식량을 그렇게 방출했다가 남아날 게 있을까 싶어 참았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이 나와 접촉했던 걸 시작으로 운동장에 있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나를 거쳐갔다. 그 아이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내가 타고온 자전거의 안장을 낮춰서 태워주며 놀고 있었는데 아침조회가 시작되자 그 아이들은 나만 놔두고 우르르 가버렸다.
아침조회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앞으로나란히, 옆으로나란히 하면서 줄을 서다가 곧 시작된 교장선생님의 훈하말씀을 참아내느라 애쓰기 시작했다. 나역시 그 길고도 찬란한 훈하말씀을 운동장 뒷편에서 듣고 있었다. 실로 20년만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하말씀을 듣자니 저런 걸 매주 한편씩 준비해야 하는 교장선생님의 고충이 안스러워지기도 하더라. 나 어릴 때 다니던 학교와는 달리 단지 십수명이 그러고 있는 걸 보니 나에겐 그저 아기자기해보이고 정겨웠지만, 아마 아이들에게는 내 어린 기억과 똑같이 지겹기만할 게 뻔하다. 그건 마치 어려서 아버지가 보시던 9시뉴스를 도대체 무슨 재미로 보실까 영원히 이해 못할 것 같았던 내가 같은 시간의 뉴스를 흥미롭게 보고있는 지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같은 느낌이었다.
조회중에 말려놓은 텐트나 침낭을 접는 등 떠날 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기가 죄송스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조회가 끝나자 교장선생님이 텐트를 걷고 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자전거 여행 중이냐고, 좋은 경험 한다고 격려해주시던 중에 나에게 학생이냐고 물으셔서 아침부터 기운이 솓아났다.
처음 만져보는 디카였나보다. 내 카메라를 뺐어서 놀던 씩씩한 아이(앞)와 그 똘마니(뒤)
절대 사진 안찍히겠다고 피해다니던 녀석. 이른 아침 운동장에서 날 처음 발견하고 쭈뼛쭈뼛 관심 보이던 바로 그녀석이다. 안장 높이를 낮춰서 자전거 태워줬더니 자전거에서 내리다 제대로 자빠졌는데, 뻘쭘하니까 그길로 바로 철봉에 매달리더니 딴청을 피우는 귀여운 짜식. 저기 뒤에 일광욕 중인 침낭과 텐트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