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2007. 9. 11. 17:59

8월 25일과 26일에 자전거를 타고 경상북도 김천으로 출발했다. 전 날 술을 좀 마셨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워낙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기 때문인지 술에 덜 깬 상태로 해뜰무렵에 일어나 느릿느릿 짐을 챙기다보니 어느덧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출발; 영등포구청--(안양천)-->안양시
내가 사는 영등포구청에서 출발해서 안양천을 따라 내려갔다. 초행이라 두어번 길을 벗어났다가 돌아왔는데 한 10km 갔더니 숙취 때문인지 기운이 쫙 빠지더라. 멈춰서 생각했다.

"돌아갈까..."

아직은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만큼 와있는 나. 좀 더 가면 돌아가기도 힘들어질텐데... 뭔가 놓고 온 게 있다면 그걸 핑계삼아 돌아갔다가, 아마 그대로 눌러앉는 수도 있겠지. 이럴 땐 패달을 열씸히 굴러야 한다. 나아가는 것보다 돌아가는 것이 더 힘든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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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 따라가기;아마 광명시 어디쯤일듯...


안양시--(1번,42번국도)-->이천시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안양천만 따라가다보니 어디쯤 왔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차도로 올라왔지만 역시 낯설더라. 수원가는 1번국도를 찾아갔더니 작년 이맘때 쯤 출장 때문에 차몰고 종종 오갔던 곳이 나타났다. 안양역과 명학역을 지나는 그길을 이번엔 자전거로 따라가려니 왠지 쑥쓰럽더라. 차 안에 숨어있을 때와 자전거 위에서 다 드러나있을 때의 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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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국도를 따라 수원까지 갔더니 또다시 차타고 몇 번 갔던 바로 그 길이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내가 자동차고 밟았던 도로보다 자전거로 달렸던 길이 더 많다. 언젠가는 거꾸로, 자전거로 내가 지나왔던 길을 자동차를 운전해서 지나치며 옛 생각에 잠길 날이 올꺼라고 기대한다.

팔달구 수원화성에서 다시 멈춰섰다. 햇볕이 뜨거워지면서 점점 더 더워지고 그래서 더 빨리 지치는 것 같았다. 물을 한껏 마시고 썬블럭 로션을 바르고서 다시 출발하려는데 어떤 아저씨 하나가 내 옆을 지나면서 머뭇머뭇 뭔가 말을 걸려는 눈치를 보인다. 내 자전거 트레일러가 관심의 대상인가본데, 그냥 무시하고 얼른 출발했다. 저런 아저씨들은 호기심이 앞서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거다. 여러번 격어봐서 알고 있다. 일단 말을 섞고나면 존중해줘야할 것 같아 그전에 도망가는 게 습관이 되버렸을만큼 잘 알고 또 익숙해져있다.

수원화성을 지나 42번국도로 들어서려고 할 때 또다른 자전거 라이더가 내 옆을 지나갔다. 진짜 라이더처럼 쫄쫄이복장까지 입었더라. 빨리 갈 수 있어 좋겠다. 당신은 곧 왔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나 난 돌아갈 생각이 없는 편도라서...


용인시에 접어들었을 때 길가에 어떤 여자아이 하나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힘내세요"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꼬마 하나가 방끗 웃고 있다. 힘에 부쳐 일그러졌던 표정을 펴진 못하고 입으로만 씰룩 웃어줘서 답례를 보냈다. 그아이가 내 얼굴을 웃는 얼굴로 봤어야 상처받지 않았을텐데...

용인시 도착했을 땐 긴 휴식도 필요했지만 점심을 먹어야 했다. 더 가버리면 점심먹을 곳이 마땅찮을 것 같았다. 밥먹을 곳을 찾아 시가지 골목골목을 드나들며 내 취향과 마침 지나가던 식당의 맞춤이라는 우연을 기다리거나 찾아헤맬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42번국도를 따라 용인터미널을 지나다보니 터미널에 롯데리아 간판이 보였다. 에너지 보충엔 밥이 좋겠지만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듯. 사실은 너무 더워서 팥빙수가 먹고싶어졌던 거다.

용인에서 이천까지 가는 사이의 42번국도는 정말 악몽이었다. 어찌나 덥던지, 살 때는 그렇게나 시원했던 물이 금새 미지근함을 지나 이글거리는 느낌이었고 그걸 마시고도 목축임과 배부름 외에 시원함을 구걸해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간신히 이천시에 도착했지만 이천시 시가지는 42번 국도와 멀찌감치 떨어져있었고, 또 갈아타야하는 3번국도와도 멀찌감치 사이가 안좋아보였다. 그렇게나 덥고 힘든 길을 참으면서 이천시에 가면 잠시동안이나마 문명의 숲에서 야성을 피해 안도감을 느껴보려고 했었는데... 3번국도로 접어들기 전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기대했던 안도감을 대신해야했다. 그곳에서 2L짜리 물을 한 병 더 샀다. 물은 내가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하고 있는 것처럼 바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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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가는 42번의 어딘가, 물을 너무 마셔대서 노상방뇨 해야했던 그곳.


이천시--(3번,38번국도)-->충주시
비교적 쉬운 길이었다. 땡볕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진건지 아까보다 수월하게 페달이 밟혔다. 38번 국도로 갈아타는 장호원 근방의 하나로마트에서 산 500ml 짜리 얼린물이 정말 큰 힘이 되어줬다. 밥이 먹힐 것 같지 않아서 또 맥주부터 한 캔 마셨는데, 뭔가 먹어야할 것 같아 냉면 한그릇 먹고 하나로마트를 떠났다. 아직 길위에 익숙해지기 이른 건지, 문명이 이렇게 반갑고 시원하게 느껴지다니.

국도를 벗어나 충주호까지 이어지는 남한강을 탄금대쪽으로 질러가는 599번 지방도를 탔다. 1차선 도로라서 길이 좁고 갓길이 없어 위험하긴 했지만 가로수가 우거져서 해를 가려준데다 호수가 보이는 길이어서 한결 나았다. '중원고구려비' 이정표가 보였는데 거기 가기 직전의 갈림길에서 520번으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들러보진 못했다. 언젠가 역사책에서 봤음직한 이름인데 십수년 지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 안되는 거리 앞에서 놓쳐야 하다니... "나중에 크면 하고 싶은 것 실컷 할 수 있다"던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그말씀, 난 그때도 다 거짓말이란 거 알고 있었다. 점점 더 시간에 쫓겨살면서 하고싶은 걸 참는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 그때도 예상했던 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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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로 들어가는 남한강을 막고 있는 '조정지댐'. 찍지 말라고 써있었지만 난 못봤다! ㅡㅡ;

수안보온천이 인접한 충주시에 설마 24시 찜질방 하나 없을까 싶었는데 딱 한 개 있다더라.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야 다음날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아 충주시 중심가를 지나쳐 건국대까지 와버렸는데 그제서야 그사실을 알게 된거다. 너무나 지쳐서 찜질방에서 편하게 쉬고 싶기도 하면서, 역시 너무나 지쳐서 24시 찜질방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느니 어딘가에서 야영을 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한 이율배반적 상황이라니...

결국 건국대학교 근방의 단월초등학교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해지기 직전에 텐트치고, 해지자마자 사람들 안보는 틈을 타서 학교 뒷편 수돗가에서 목욕과 빨래를 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맥주 두캔을 사다가 텐트를 설치한 놀이터 잔디밭에 앉아 유난히 밝은 달을 바라보며 뭔가 그리워할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야영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알게 됐지만 유난히 달이 밝고 붉은 빛을 띄어서 그동네 이름이 '단월동'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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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서 맥주마시는 동안 텐트에 침범해서 놀고 있던 개굴씨~ 안먹고 놔줌.


충주시--(3번국도)-->김천시

6시에 출발하고 싶었지만 해뜬 직후 일어나 밍기적거리다보니 7시에 충주를 떠났다. 지도에서 어림짐직했던 것과 실제 도로의 이정표상에서 확인한 거리의 차이가 상당했다. 게다가 어제에 비해 확연한 스테미너의 차이가 느껴져서 마음이 어찌나 급해졌는지... 밥을 먹고 출발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을 땐 이미 늦었다. 충주를 떠나자 밥먹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몇 번 경험했지만 에너지 소비가 극도로 많을 땐 정말 밥 한끼 먹고 안먹고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래도 출발 전 2L짜리 얼음물을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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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을 넘기 직전 휴게소에 식당이 있어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캔 뽑아마셨지만 갈증이 풀리지 않아 하날 더 뽑아마셨다. 조령을 간신히 넘어 내려갔더니 작은 마을이 나왔고 중국집 하나가 보였다. 그런데 아직 식사가 안된단다. 오전 10시를 막 지났는데 여길 지나게 되면 앞으로 어디서 밥을 구경할 수 있을지 몰라 조금 기다리기로 했고, 결국 밥먹고 쉬면서 거기서 1시간이나 보냈다. 그래도 역시 한국사람은 밥심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후로 상주시에 도착할 때까지 내 눈에 보인 건 땡볕과 흐르는 땀에 묻어내리는 뿌옇고 진득한 썬블럭 로션뿐이다. 상주시로 들어오기 직전의 3번국도는 자동차전용도로였는데, 지난 5월 속초여행 때 경찰에게 딱지를 떼인 기억 때문에 더위도 잊고서 정신없이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 전용도로 1km 남기고 중앙분리대 넘어에 경찰차가 서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 경찰차가 U턴해서 날 쫓아오기 전에 남은 1km 를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그것 말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태양을 등지고 페달을 구르며 땀흘리 것 말고는 내몸이 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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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를 지날 때부터는 마음이 놓였다. 김천에 제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데 목적지인 김천시를 10km 앞두고부터 갑짜기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그랬을까. 마치 출발 후 10km 를 지났을 때 돌아가고 싶어졌던 것처럼 도착 전 10km 를 앞둔 곳에 멈춰서서 나는 지금까지 왔던 260km 를 되돌아가야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왠지 끝을 봐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항상 그렇듯 길 위에서 무언가 찾아질꺼라고 기대했었는데, 출발할 때의 망설임과 끝날 때의 허탈함, 그 사이 250km 는 마음을 놓은 순간부터는 더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고통일 뿐이란 게 어찌나 허탈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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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역


도착, 김천역
그렇게 나는 경상북도 김천시 김천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출발 전에 상상했던 작은 불빛 하나를 찾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역전 새거창식당에서 설렁탕을 먹고 있는데 갑짜기 소낙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면서 뜨거워진 내 자전거를 식혀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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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150km, 둘째날 120km, 서울로 버스타고 돌아와서 고속터미널에서 집까지 30km. 총 300km 를 달렸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6. 10. 25. 16:50
원래 예정은 남원에 가서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날이 일찍부터 어둑어둑해지는바람에 13번, 19번 국도 분기지점을 지나서 길을 밝힐 플래시를 찾기 위해 자전거를 세웠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진 몰라도 자전거에서 내려 짐을 푸는 사이 순시간에 어두워져버린 것 같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에서 보이지 않는 짐을 뒤지며 플래시를 찾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두운에 어떻게 간데요?"

뒤를 돌아보니 아까부터 보고있었다는 듯 길 건너편에서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플래시를 찾고 있잖아 라고 말하고 돌아섰는데, 속으로 너네 집에서 하루 재워줄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헬멧에 플래시를 머리에 하나 꼽고, 뒤에서 오는 차가 볼 수 있도록 안전등도 하나 달고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한 1km 쯤 갔을까? 눈 앞에 갑짜기 나타난 뭔가가 있었는데, 길 옆에 펼쳐놓고 말리던 쌀 낱알을 돌보러 온 농부 할아버지였다. (추수기라 그런지 여행 내내 낱알 말리는 풍경을 많이 봤다. 전부 다 도로 가길을 이용했기 때문에 자전거 여행중인 내게는 길을 빼앗긴 기분에 볼 때마다 반가울리 없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를 치진 않았지만 가뜩이나 조마조마하던 가슴을 오그라들게 하기에 충준했다. 그리고 얼마 더 못가 자전거를 되돌렸다. 아까 13번 국도와 19번 국도가 분기하기 직전에 보아뒀던 수남초등학교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학교에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눈치 볼 것도 없이 그대로 운동장 한구석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저녁 대신 양갱 두개를 오물오물 씹고서 일찍 누워서 잠을 청했다. 몸을 쉬게 했더니 밤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대신 외로워움이 밀려들었다. 여행 내내 충전이 어려운 휴대전화의 베터리를 아낄 생각으로 어딘가에 전화 한통 하지 않고 참았다. 사실 별로 전화할 곳도 없다는 생각에 더 쓸쓸했다. 가끔 휴대전화란 건 날 더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더라.

새벽 4시가 되자 전날에 내가 가을 날씨를 우습게 봤다는 걸 깨달았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짐을 뒤져 점퍼를 뽑아내 입어야 했고 몸을 웅크리고서 바들바들 떨면서 버텨야 했다. 6시가 조금 넘을 때까지 나의 비몽사몽간의 바이브레이션은 계속 됐다. 그러다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튀어나갔지만 밖의 엄청난 추위 때문에 곧바로 다시 안으로 뛰어들어와서 바이브레이션을 계속했다.

아침 7시쯤 되어 몸을 일으킨 것 같다. 그땐 밖이 제법 밝았기 때문에 안보다 밖이 더 따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좁은 텐트를 빠져나와 미끄럼틀 옆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운동장을 살펴봤다. 저 멀리서 한 꼬마아이가 공을 차다가 나를 외계인 바라보듯 낯설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전부터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가보다. 운동장 한구석에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만한 텐트 속에서 누군가 느릿느릿 밖으로 기어나와 웅크리고 있으니 아이의 흥미를 끌 수밖에. 그렇게 앉아있다가 조금 견딜만해지자 해가 잘 드는 곳에 침낭과 텐트를 널었다. 밤새 내 몸에서 증발한 수분과 새벽 이슬이 고여 텐트 안으로부터 물을 한바가지는 쏟아낸 것 같다.

시골 아이들은 학교에 참 일찍도 나오더라. 이른 아침부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몇몇 아이들이 쭈뼛쭈뼛 낯선 내게 다가왔다. 그중 어떤 한 무리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각자 세개씩 쓰레기를 주워오란 지령을 받고 신나게 출동했는데, 내가 어제 밤에 먹었던 양갱 껍질을 건내주자 그 중 한 녀석이 신나게 받고서 뛰어갔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녀석이 "저두요!" 하고서 나한테 달려들었는데 난 그녀석도 나에게 쓰레기를 달라는 건 줄 알았다. 실망하며 돌아서는 녀석을 보니 아마 녀석은 내가 쓰레기가 아닌 양갱을 나눠주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순간 가방에서 몇개 꺼내줄까 싶었지만 내 비상식량을 그렇게 방출했다가 남아날 게 있을까 싶어 참았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이 나와 접촉했던 걸 시작으로 운동장에 있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나를 거쳐갔다. 그 아이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내가 타고온 자전거의 안장을 낮춰서 태워주며 놀고 있었는데 아침조회가 시작되자 그 아이들은 나만 놔두고 우르르 가버렸다.

아침조회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앞으로나란히, 옆으로나란히 하면서 줄을 서다가 곧 시작된 교장선생님의 훈하말씀을 참아내느라 애쓰기 시작했다. 나역시 그 길고도 찬란한 훈하말씀을 운동장 뒷편에서 듣고 있었다. 실로 20년만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하말씀을 듣자니 저런 걸 매주 한편씩 준비해야 하는 교장선생님의 고충이 안스러워지기도 하더라. 나 어릴 때 다니던 학교와는 달리 단지 십수명이 그러고 있는 걸 보니 나에겐 그저 아기자기해보이고 정겨웠지만, 아마 아이들에게는 내 어린 기억과 똑같이 지겹기만할 게 뻔하다. 그건 마치 어려서 아버지가 보시던 9시뉴스를 도대체 무슨 재미로 보실까 영원히 이해 못할 것 같았던 내가 같은 시간의 뉴스를 흥미롭게 보고있는 지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같은 느낌이었다.

조회중에 말려놓은 텐트나 침낭을 접는 등 떠날 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기가 죄송스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조회가 끝나자 교장선생님이 텐트를 걷고 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자전거 여행 중이냐고, 좋은 경험 한다고 격려해주시던 중에 나에게 학생이냐고 물으셔서 아침부터 기운이 솓아났다.

처음 만져보는 디카였나보다. 내 카메라를 뺐어서 놀던 씩씩한 아이(앞)와 그 똘마니(뒤)


절대 사진 안찍히겠다고 피해다니던 녀석. 이른 아침 운동장에서 날 처음 발견하고 쭈뼛쭈뼛 관심 보이던 바로 그녀석이다. 안장 높이를 낮춰서 자전거 태워줬더니 자전거에서 내리다 제대로 자빠졌는데, 뻘쭘하니까 그길로 바로 철봉에 매달리더니 딴청을 피우는 귀여운 짜식. 저기 뒤에 일광욕 중인 침낭과 텐트가 보인다.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6. 10. 25. 14:42

지난 제주도 하이킹 때 가장 큰 에로사항은 자전거 뒤에 설치하는 짐받이에 고무줄(?)로 묶는 것으로는 짐 들고다니기가 참 불편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텐트까지 갖고갈 이번 여행을 앞두고 트레일러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이물건을 찾아내서 폴란드에서 공수하느라 한달여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012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2006. 10. 6. 21:49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 어머니, 그래서 결국 어머니와 함께 그를 가두고 있는 길버트 그레이프의 집. 그는 어머니가 죽자 그동안 그의 발을 묶어두었던 그 집을 태워버리고서 여행을 떠난다.

9월 29일, 지난 2년동안 나를 묶어두었던 것으로부터 해방됐다. 믿을 사람 아무도 없었던 시작처럼, 그 끝 또한 쓸쓸하고 허탈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가 그럴 수 없음을 확인했던 그 시작처럼, 누군가로부터 그간 고생많았다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너무도 조용하고 허탈한 끝은 위로받을만한 여지를 남겨주지도 않았다.

그 허탈함 앞에서 제일 처음 하고 싶은 일은 떠나는 것. 정해진 시간 안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빨리 다 등져버리고 떠나는 것. 그렇게 떠난 후에 충청남도 금산을 지난 13번국도 위 어디쯤에서 땡볕을 등에 업고 땀을 쏟아내다가 불현듯 떠오른 것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였다.

"그래서 그가 집을 태우고 떠난 거였구나."

그는 트레일러를 타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