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스의 고대 도시 유적에서 만난 고양이. 웅크리고 앉아 노려보고 있는 이친구에게 식당에서 챙겨놨던 빵을 뜯어 던졌다. 하지만 멀지 않은 내 앞에 던져놓았고 기실 그건 일종의 거래 같은 거다. 빵을 거저 주는 게 아니라 실은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의 댓가로 주는 거다. 나조차도 빵이 바닥에 떨어져 미끼로 변하는 걸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그 거래의 의미를 알아 차렸는지, 이친구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 빵을 집어 오물오물 먹었다. 그다음 손바닥에 물을 담아 그에게 내밀면서도 그걸 핥아 마실꺼라고 기대하진 않았었는데, 이친구의 대범한 행동은 나를 놀래켰다. 그때까지 내 손바닥에 올려놓은 무언가를 먹는 고양이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 손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내 손 위에 있는 걸 먹지는 않는데... (글 쓰고서 다시 테스트해보니 내 고양이도 손에 있는 걸 집어먹긴 한다. 짜식, 지긴 싫었던 게지...)
어쩌면 이 고대 도시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는 동화같은 생각을 해봤다. 이 곳에 사람이 살던 시절에도 이친구는 여기 살면서 사람들 다리 사이를 피해다니며 먹을 걸 구하러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꼭 이 친구가 수천년을 살아왔음에도 억울하게도 꼬리가 하나밖에 없을 뿐이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 그동안 엄청 많은 할아버지 고양이들이 방만하게 씨를 뿌리며 힘겨운 환생을 거듭해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오랜 세월동안 이친구가 배우고 길러온 사람을 대하는 요령은 겨우 몇십년 산 나보다 훨씬 나을테고, 이제 그 오랜 숙련으로 낯선이의 손바닥에 담긴 물도 마실 수 있게 된 거다.
언젠가 서점에서 읽었던 어느 일본 작가의 그림동화가 떠올랐다. 그책에서도 저렇게 표독스럽고 약간 성질있게 생긴 얼룩무늬 고양이가 나온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백만번이나 환생을 했다 하니, 어쩌면 이친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백만번 산 고양이 - 시노 요코
100만 년 동안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100만 번이나 죽고서도, 100만 번이나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정말 멋진 호랑이 같은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임금님이 싫었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을 잘하며, 언제나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를 멋진 상자에 넣어, 전쟁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어버렸습니다.
임금님은,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고양이를 안고 울었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을 그만두고,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왕궁의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 고양이가 뱃사람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바다가 싫었습니다.
뱃사람은, 세계 곳곳의 바다나, 항구에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가, 배에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고양이는 헤엄칠 줄을 몰랐습니다.
뱃사람이 서둘러 그물을 던져 끌어올렸으나, 고양이는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죽어버렸습니다.
뱃사람은, 물에 젖은 걸레처럼 축 늘어져 버린 고양이를 안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리고, 먼 항구 마을의 공원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 고양이가 서커스의 요술쟁이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서커스 따위는 싫었습니다.
요술쟁이는, 매일 고양이를 상자 안에 넣고서는, 톱으로 두동강이를 내었습니다.
그리고는 통째로 살아남은 고양이를 상자에서 꺼내 보여 주면서,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요술쟁이가 잘못하여, 진짜로 고양이를 두동강이로 내어버렸습니다.
요술쟁이는, 두동강이가 되어 버린 고양이를 두 손으로 쳐들고는,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요술쟁이는, 서커스 천막 뒤편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 고양이가 도둑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도둑이 몹시 싫었습니다.
도둑은, 고양이와 함게, 마치 고양이처럼 어두컴컴한 마을을 살금살금 걸어다녔습니다.
도둑은, 개가 있는 집만 찾아서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개가 고양이를 보고 멍멍 짖어대는 동안에, 도둑은 금고를 털었습니다.
어느 날, 개가, 고양이를 물어뜯어 죽여버렸습니다.
도둑은, 훔친 다이아몬드와 함께 고양이를 안고서, 큰소리로 울면서 어둠 속의 마을을 걸어다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 고양이가 혼자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할머니가 대단히 싫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고양이를 안고, 작은 창문 너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고양이는, 하루 종일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잠을 자곤 하였습니다.
이윽고,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 죽었습니다.
늙어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는, 늙어서 죽은 고양이를 안고,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뜰의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여자 아이가 매우 싫었습니다.
여자 아이는 고양이를 업어 주기도 하고, 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슬픈 일이 있어 울었을 때는, 고양이의 등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 업혀 있었는데, 묶은 띠가 목에 감겨, 죽었습니다.
머리가 흔들흔들거리는 고양이를 안고서, 그 여자 아이는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뜰의 나무 밑에 묻었습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그 고양이는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도둑 고양이였던 것입니다.
고양이는 비로소 자기 자신의 고양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양이는 자기 자신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어쨌든, 멋진 호랑이 같은 얼룩고양이였기 때문에, 멋진 도둑 고양이가 된 것입니다.
어떤 암코양이이건, 그 고양이의 짝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선물로 바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찐 쥐를 갖다 바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보기 드문 다래 열매를 선물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멋진 호랑이무늬를 하고 있는 그 고양이의 털을 핥아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다구. 이제 와서 뭐 새삼스럽게 그래. 세상에 나 원 참!'
고양이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좋았던 것입니다.
딱 한 마리, 그 고양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눈부시게 희고도 아름다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그 고양이는, 흰 털을 가진 고양이 옆으로 가서,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단 말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흰 털 고양이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가볍게 받아 넘겼습니다.
그 고양이는, 좀 화를 냈습니다.
어쨌든, 자기 자신을 참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 날도 고양이는, 흰 털을 가진 고양이에게 다가가서,
'넌 아직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흰 털의 고양이는,
'그렇단다.'
라고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흰 털을 가진 고양이 앞에서, 빙그르르 세 번이나 돌면서 말했습니다.
무슬림들의 예배당인 자미(Cami)는 그 규모가 클 수록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도 하겠지만, 규모가 작을 수록 왠지 모를 부담감에 안을 열어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관광지로써보다 더 제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이겠죠. 부르사를 대표하는 울루 Ulu 자미와 인접해 있으면서 그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예쉴 Yeşil 자미를 찾았을 땐 기도가 한창 진행중이었기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미 앞 정원에 유난히 고양이들이 많아 슬금슬금 다가가보기도 하고, 눈치채고 도망가면 쫓아다니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대치상황
상호외면
곧 기도가 끝났는지 자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문 밖에서 서로들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다가 그 앞에서 배급해준 간단한 음식물을 먹기 시작하더군요. 얼쩡거리면 제게도 기회가 올까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고요, 하지만 고양이들은 계속 배급의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어요. 그냥 괜히 정원에서 서성였던 게 아니라 그들도 예쉴 자미 앞에선 잔뼈가 굵은 고양이들이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