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와 강태환 트리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09년 1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피아니스트 사토코 후지이(Satoko Fujii)
베이시스트 마크 드레서(Mark Dresser)
드러머 짐 블랙(Jim Black)
앨토 색소포니스트 강태환
퍼커셔니스트 박재천
피아니스트 미연
서울 모차르트홀 2008년 12월 10일
‘대화’를 생각한다. 혼자 하면 독백이지만 둘 이상이 연주하면 음악도 대화다. 그들의 대화는 시종일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어울림만 있는 게 아니라 때론 누군가의 도발로 격앙된 싸움이 되거나 토론에 걸친 합의를 만들기도 하며 논쟁의 승리자를 낳기도한다.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와 강태환 트리오의 협연도 다양한 모습의 대화였다.
1부 첫 순서였던 강태환 트리오의연주는 그들의 오랜 협연 경험만큼 내게 익숙했다. 자유즉흥에 ‘익숙함’이란 말은 선뜻 쓰기 어렵지만, 연주자들과 공감하는 기회를많이 가질수록 예측불허의 변화 속에서도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가 눈앞에서 실현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강태환 트리오의 연주는 편안했고 전체 공연의 주제를 제시한 역할을 했다.
이어서 연주된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의구성즉흥곡 ‘Trace a River’에서 그 역할이 드러났다. 이들은 강태환 트리오의 자유즉흥연주를 반영했다. 그런 어법상의시도 때문인지 덜 정돈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적 모습을 되찾아가며 감동에 이은 여운까지 남겼다.쉬는 시간 동안 나는 마크 드레서의 보잉(bowing)이 담담하게 털어놓은 음울한 베이스라인을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매치-업(match-up) 대결이랄 수 있었던 2부의 듀오 연주들은 태권도나 유도의 단체전을 보는 듯했다. 그것들의 단체전경기 방식처럼 선봉, 중견, 대장의 대결구도였고, 마지막의 6인 혼합연주는 유도의 ‘자유연습’ 혹은 ‘소화다리’라 불리는 무한대련에 그 치열함을 빗댈 수 있었다.
첫 번째 피아노 듀오는 다른 듀오연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나기 어려운구성이니만큼 대결보다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했다. 그리고 상대와 조화를 이뤄내면서도 스스로 빛이 나는 걸 보면서,결국 그날 공연을 통틀어 가장 큰 감흥을 준 연주로 각인됐다. 반면 타악 듀오는 어울리는 듀오 편성이란 일반적인 예측과는 시작전부터 벗어나 있었다. 박재천의 타악이 정형화된 틀에서 한참 벗어나 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짐 블랙과 함께한협연은 일정한 불안요소를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 드러나면서 연주는 박재천의 압도로 시작됐다. 짐블랙은 박재천의 옆에서 탬버린과 캐스터네츠를 두드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잔인하다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박재천이 짐블랙의 어법으로 섞여들 수 있는 틈을 주었다. 이후로 긴장감에 눌려있던 감상의 재미가 살아났지만 조마조마함은 끝까지 계속됐다.박재천이 그의 방식으로 대화를 압도해나갔기에 연주는 승패를 닮은 결말로 이어졌지만, 그들의 멋진 대화에는 똑같이 박수를 보내고싶다.
앞선 타악 듀오에서 긴장을 놓지 못하게 했던 그 무언가는 결국 마지막의 6인 혼합연주에서 폭발해버리고말았다. 도장의 매트 위에서 닥치는 대로 대련을 벌이는 모습을 방불케 하다가 어느 정도 정리된 결말을 합의해나가고 있을 때,박재천의 갑작스런 도발이 불거졌다. 그들의 치열한 대화는 일순 엉뚱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 때부터 마크 드레서는 무대중앙에 우뚝 선 거인처럼 엄청나게 커 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박재천의 도발이 결국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시발점이었지만, 연주자모두와 함께 마지막 3분의 감동을 이끌어낸 것이 바로 마크 드레서였기 때문이다.
그런 거인들의 매치-업을빼놓을 수 없는데, 진정 양 팀의 대장전이라 할 수 있는 명연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처음 마주하거나 어떤 책이나 노래하나가 그동안 살아온 각자의 공간과 시간만큼을 연결시켜주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저 감성적으로 묶여있는 것만으로도 낯선 이와오랜 친구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강태환과 마크 드레서의 협연은 서로에게 그런 친구의 대화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날 공연이 다양한 느낌들을 일궈내긴 했지만 사토코 후지이 트리오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곡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떤 변형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