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20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하고 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 2008.11.18 자화상 1
  3. 2008.01.28 성묘가는 길
A Day in the Life2009. 6. 20. 08:34
아침부터 아버지랑 말다툼을 했습니다. 우리 부자에게는 거의 없었던 일이죠. 화목해서가 아니라 별로 대화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조선일보 보세요."

제 말이 시발이 됐습니다.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이 묻어있는 말임을 아시고서 아버지께서 너도 큰일이라며 버럭 하셨겠지만, 아마 제게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해도 똑같이 그러셨을 꺼에요. 제가 조선일보에 대해 싫어하는 것처럼 보수세력에 가까운 아버지도 젊은 세대 하는 짓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거니까요. 당신이 언론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어서 항상 같은 세대의 비슷한 생각을 갖은 사람들하고만 맞장구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 겁니다. 저도 노인들 모여 진보세력에 대해 막무가내로 욕하는 걸 본 적 있어서 그게 어떤 모습이었을지 압니다. 그러나 반대 입장의 젊은 세대들과 그런 이야길 해보신 적이 별로 없으니 평소 젊은 세대들에게 말하고 싶은 불만이 많으셨겠죠. 그걸 저에게 쏟으신 거고요.

하고 싶으신 말씀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버지의 말씀은 중구난방 널뛰듯 했습니다. 신문에서 시작해서 갑짜기 노무현으로 뛰더니 공산당과 데모 등 서로 연관성을 짓지도 않고서 논쟁이 이어졌죠.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만 보고 생각을 조종당하듯 아버지도 신문만 보시고 실정을 모르셔서 오래 사시면서 경함한 통밥을 다 늘어놓으시는 거죠. 당신의 가장 큰 무기가 오랜 경험 뿐인 겁니다. 체력도 기술도 없고 단지 노련함만 남아있는 은퇴 직전의 운동선수처럼.

그런데 저라고 다른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 아버지께 맡서서 별로 논리적인 이야길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논리가 어떻게 틀린지 이야기하기에 급급하고 거기엔 제가 추구하거나 옳다고 말하는 주장 같은 건 들어있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역시 인터넷 따위에 한정되어 생각하는 젊은이들 중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광장에 나가지도 않고 경험해보지도 않은 걸 이야기할 땐 조선일보를 보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제가 다를 게 없다 싶네요.

그렇다고해서 광장에 몇 번 나가본 걸로는 별 도움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몇 번의 경험에 국한되어 입장이 굳어져 한쪽에서만 생각하게 된다면 안하느니만도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 읽고, 뭘 경험해봐야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생각하고 남들에게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1. 1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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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건 내가 당신을 부정했던 증거.


그렇게 닮기 싫고 이겨 넘어서고 싶었는데,

결국은 나를 부정하고 당신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훗날에 거울을 보다가 목 놓아 울기도 하겠지.

아니라 했었던 당신에 대한 그리움에.


Posted by Lyle
A Day in the Life2008. 1. 28. 00:31

아버지와 성묘를 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아버지께서 운전을 시작하신 후부터 어린 나를 조수석에 태운 채 향했던 그 길이다. 길은 넓혀지고 닦이면서 조금씩 변하기도했지만 변한 건 길뿐만이 아니다. 그길을 밟았던 아버지의 차도 포니부터 세번이나 바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그 길을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서 내가 운전해 간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떠나곤하던 아버지의 고향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늘상 조수석에 앉았던 난 항상 졸거나 자면서 아버지의 차를 타고갔었다. 하지만 그래도 얼추 다 기억나는 길이다. 처음 출발하면서는 꼬마였다가 도착할 때 쯤 되면 현재의 나로 성장해 있는 느낌을 주는 그런 길이니까. 내가 어린 나를 기억하는 만큼 아는 길이다.

아버지와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길은 아버지께서 늘상 잠든 나에게 매년 똑 같이 "숙박비 받아야 겠다"시며 놀리시곤 했던 그 길이다. 매년 잠들었다 일어나면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에게 언젠가부터 나는 가식적인 웃음만으로 응답하곤 했었다. 그랬던 그 길에서 이제 아버지를 조수석에 모시고 내가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버지께서 운전기사 있으니 편해서 좋다고 하시며, 당신의 어릴 적 말씀을 곁들여 고향에 다녀온 기분을 한껏 내셨다. 조금 더 일찍 면허를 딸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 없이 조용해지셨다.

아버지께서 주무신다, 내 옆에서...




앞으로 내달려가던 나는 아버지의 속도로, 천천히 속도를 줄인다.

나이드시면서 변하는 법을 잊어버리시고 점점 살아오신 고집만을 지키려하시는 아버지. 그분을 꺽지 못해, 나를 이해시키지 못해 갖었던 불만들이 어린시절부터 내가 앉았던 조수석에 함께 잠들어버린다. 그 모두를 아버지의 낮잠과 함께 잠재우고 이 순간만큼은, 잠든 나를 태우고 20여년을 묵묵히 당신의 어린 시절을 향해 운전해가셨던 그 길 위의 아버지가 되어본다. 아빠가 되어본다. 아빠... 아...

도착할 때쯤 아버지께서 깨시면 "숙박비 받아야겠어요." 할 생각이다. 아버지의 웃음이 기대된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