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10. 5. 8. 00:29

이 글은 지난 4월 8일 EBS SPACE 공감에서의 "3색의 재즈 스펙트럼"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5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010년 4월 8일 EBS SPACE 공감
송영주,배장은(피아노), 써니킴(노래), 김인영(베이스), 숀 피클러(드럼)

올해 4월로 EBS 스페이스 공감이 개관 6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면서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세 여성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기회가 마련됐다. 피아니스트 송영주, 배장은과 보컬리스트 써니 킴이 그 주인공들인데, 여기에 베이시스트 김인영과 숀 피클러(Shawn Pickler)의 드럼이 더해져 듀오에서부터 두 대의 피아노가 주도하는 퀸텟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편성을 들려줬다.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그간 EBS 스페이스 공감을 포함해 여러 무대에서 접해왔던 뮤지션들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사리 카페에서 만나게 될 것 같은 음악인들을 대하는 상투적인 느낌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건 공연 전에 머리로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막상 공연에서는 알면서도 속게 되는 마술 같은 홀림을 경험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번 공연이 마술 같았다는 비유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른 얘기지만, 마술쇼는 얼마나 뻔한 내용을 담고 있던가. 커다란 상자에 들어간 미녀의 허리가 곧 잘릴 거란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허리가 잘린 미녀는 말도 하고 심지어 잘려진 몸이 따로따로 움직일 거란 것도 안다. 그게 다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커다란 칼이 상자를 두 동강 내는 순간 더 실감나게 비명을 지르는 건 관객들이다. 재즈 공연도 쇼 비지니스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어느 공연이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획과 연출의 중요성을 빗대어 생각해볼 수는 있다. 수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양질의 공연과 방송을 제악해온 EBS 스페이스공감이 지난 6년 동안 올곧게 걸어온 것처럼 말이다.

그중 특별한 기획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재즈, 클래식을 품다'에서 인상 깊었던 '나비부인'을 이날 송영주와 배장은의 듀엣으로 다시 듣게 된 건 반가운 일이었다. 이어진 'Monk Medley' 에서 두 사람은 델로니어스 몽크를 모창하는 듯한 연주로 이 거장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영화 <Out Of Africa>를 통해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 익숙함 때문에 진행될 멜로디가 미리 떠오르는 곡이기도 하지만, 재즈 연주 속에서 이어질 멜로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전달됐다. 이날따라 써니 킴은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을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발성을 들려줬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작년에 가진 단독 공연 때도 연주됐던 'Everywhere' 의 경우 그런 발성이 보컬 이펙터와 시너지를 이뤄 또 다른 느낌으로 연출됐다. 전반적으로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를 펼쳤고, 특히 송영주의 'Yellow Brick Road' 에서 인상적인 드러밍을 들려준 숀 피클러에게는 환영인사를 전하고 싶다. 국적을 떠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좋은 연주자들이 많아지는 건 당장의 반가움 이상으로 좋은 일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의식적으로 공연에 너무 빠져들지 않으면서 어떤 특징적인 소재들을 찾아내고 연주 내내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을 이어가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느새 음악에 정신을 놓게 되는, 머리로는 어떻게 안되는 곤란한(?) 공연이었다. 이는 공연에 홀려버렸다는 앞서의 말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아껴 모든 용돈으로 음반 한장을 후회 없이 사기 위한 아슬아슬한 고민들을 동반하며 음악에 빠져들던 필자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줬던 매체는 바로 라디오였다. 이제 라디오에서 그런 음악방송이 사라지다시피하고 있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방송이 호기심어린 세미마니아들에게 대안으로서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들이 점차 자신의 취향에 깊이를 더해 마니아가 되었을 때 결국 무대까지 찾게 되지 않을까. EBS 스페이스 공감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아는 이들이 찾는 '무대'가 있는 한편, 음악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에게 깊이 있는 음악을 소개해주는 '방송' 또한 동시에 만들어진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그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면서, 또 앞을 향한 씨앗이 되기도 할 거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7. 24. 10:44
이 글은 지난 6월 23일 LIG ArtHall 에서 펼쳐진 재즈피플 2009 리더스 폴 수상자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8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LIG ArtHall 2009년 6월 23일

2009 리더스 폴
배장은(p), 최은창(b), 크리스 바가(d), 손성제(s), 최우준(g)


프로그램을 받아든 순간 13곡이나 되는 곡 목록을 보면서 이날 공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시작되지도 않은 공연을 곡의 양으로 판단하는 것이 섣부른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연주되는 곡이 많다고 해서 마냥 좋은 공연이 될 리는 없고, 조용필이나 팻 메시니처럼 세 시간쯤 내리 음악을 쏟아내며 청중을 즐거움에 지치게 만드는 경우를 아무 때나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날의 연주자들이 서로 여러 차례 협연을 해왔겠지만, 리더스 폴 공연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여 “V.S.O.P.”를 펼치는 올스타밴드인 걸 생각했을 때 기대 반 의심 반의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라이징 스타 2009의 오프닝 무대로 공연이 시작됐다. 지난 6월의 “퓨처스 앙상블 2009” 공연을 통해 워낙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이어서 연주를 들으며 공연 시작 전의 우려를 잊어버린 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연주된 ‘Autumn Leaves’에서 트럼펫과 색소폰이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리듬의 변화와, 템포를 바꿔가며 진행되는 피아노 변주들은 스탠더드 곡들이 수도 없이 곱씹어 연주되어도 재즈를 재즈답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그들만의 모습이었다. 좀 생뚱한 비유지만 할 일 없는 주말에 만화책 수십 권을 옆에 쌓아놓고 누운 채 그 첫 권을 펼쳤을 때의 기분이랄까. 앞으로 즐길 거리가 얼마든지 많다는 풍족한 인상을 주는 오프닝이었다.


2009 리더스 폴 수상자들의 첫 곡은 칙 코리아의 ‘Windows'였다. 배장은의 최근 음반 <Go>의 첫 곡이기도 한데,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있었다. 무대에 홀로 오른 배장은의 인트로는 그녀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수 있을만한 연주였다. 그런 연주에 청중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를 보인 최은창과 크리스 바가는 인트로가 끝날 무렵 무대에 등장했고, 이내 트리오 편성으로 곡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곡이 끝날 무렵, 십여 곡의 곡목들을 보며 내용면에서 허술한 공연이 될지 모르겠다는 단편적인 우려가 다시 떠올랐다. 성급하게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더 즐길 게 나와 줘야 할 것 같은 아쉬움은 이어서 연주된 ‘Propose’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우준의 기타는 다시 한 번 절정을 향해 치달아야 한다고 느낀 순간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더 듣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곡 진행상의 아쉬움을 제쳐놓고 생각해도, 이날 연주된 곡들은 대개 연주자를 소개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으며, 진면목을 보여주는 연주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연주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인상 깊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보이기는 했다. ‘Chicken’을 연주하면서 기타 현 위에서 핑거링, 피킹, 스트로킹 같은 통상적인 주법 말고도 비비고 때리고 긁기도 하는 최우준의 연주는 그가 기타라는 도구적인 틀을 넘어섰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치 ‘식사’라는 곡을 연주할 때마다 하는 ‘밥 숟가락질’을 우리가 주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기타를 긁고 때리는 연주 자체가 특이하게 보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Moody's Mood For Love’에서 화려하면서도 다 보이지 않고 약간은 감춰진 듯한 배장은의 인트로는 또 한 번의 감명을 주었다. 콘트라베이스건 일렉트릭 베이스건 균형 있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최은창은 공연 내내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곡에서 그 자신의 역할을 말해주는 연주를 펼쳤다. 자신의 곡 ‘Carla’를 연주하기에 앞서 그는 한국의 재즈 무대에서 여러 연주자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평가로 이 자리에 선 것이며, 그것이 스스로에게도 기분 좋은 일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리더스 폴 2009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강대관 선생은 대한민국 재즈 1세대로서, 손자뻘 되는 3세대 연주자들과 ‘Summertime’을 협연했다. 마치 마일즈 데이비스가 초기 재즈 록 시절에 선보였던 스타일을 연상시킨 이 연주는 상대적으로 짧은 듯했지만 이날 공연에서 선보인 곡들 중에서 그 의미상 가장 흐뭇하고 멋진 순간이었다.


필자가 꾸준히 응원하는 종목은 재즈밖에 없다. 그러기에 스포츠 팬들이 농구나 야구의 올스타전을 구경 가는 느낌을 약간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리더스 폴이라는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이날의 공연을 마련한 재즈 팬들은, 결국 이 연주자들이 무언가 진한 승부를 내길 원했던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경기 내용이 대체로 싱거웠다는 이야길 하고 있기에 스스로 재즈 팬이 맞는지 헷갈려하고 있기도 하다. 또 모두 일어나서 응원을 하고 있을 때 팔짱 끼고 앉아서 분위기 망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올스타전을 즐기는 법, 그건 흥겨운 축제를 즐기는 기분과 같다는 걸 안다. 하지만 팽팽하게 전개되는 긴장감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요구할 수 있는 재즈 팬의 권리다. 마음만 먹었으면 그걸 충분히 해낼 연주자들이었다는 걸 잘 알기에 하는 소리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3. 24. 09:54
이글은 피아니스트 배장은과 이선지가 각자의 앨범 <Go>와 <The Swimmer>를 주제로 펼친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4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배장은 쿼텟 2009년 3월 3일 at EBS SPACE
이선지 쿼텟 2009년 3월 19일 at EBS SPACE

'가요'라는 말을 '대중적 음악'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썼을 때 그것은 팝, 록, 재즈 등과 별개의 분류일 수 없다. 우리는 이 말을 '국산음악' 또는 '한국어 가사가 있는 노래'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유통 상의 분류가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예를 들어 음반가게들은 국산음악을 찾기 편하도록 별도로 구분해놓았고, 라디오방송도 가요프로와 팝음악프로가 따로 있는 식이다. 어쨌든 '가요'라는 개념이 '음악'을 즐기는 이에게 존재하진 않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을지라도 음반가게에서 카드를 긁을 결심이 서는 데는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실 이건 그것들 간의 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재즈에서는 그 전제가 약간 아리송하다. '한국 재즈'라는 단서가 붙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망설임이 일기도 하며, 상대적인 우위에 의해 밀려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 접한 서너 장의 한국 재즈 음반들이 더 크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겠다. 그 중 배장은이 그렉 오스비 등의 해외 연주자들과 작업한 <Go>와, 처음에는 갸우뚱해가며 듣다가 두 번째에서 더 맛을 느꼈던 이선지의 데뷔작 <The Swimmer>은 공연으로도 접할 수 있었기에 만족감이 더 컸다.

음반도 마찬가지지만, 이 둘의 공연에서 크게 기여한 관악 연주자들이 있었다. 배장은 쿼텟의 첫 곡 'Go'가 그렉 오스비(as)의 블로잉으로 시작됐을 때 이런 톤을 공연장에서 들은 게 언제였나 싶을 만큼 생경했는데, 일단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세계적 연주자들의 무대일지라도 언제나 수백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큰 무대였기에 느껴볼 수 없었던 탓일 거다. 이런 느낌은 이선지 쿼텟의 랠프 알레시(t)에게서도 받았는데, 그의 톤은 음계로 들려오는 것 훨씬 이상이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반의 녹음보다 창조적인 솔로를 연주한 배장은은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었다. 'Giant Steps'는 느리지만 공간미가 돋보인 편곡이었고, 쿼텟으로 바꿔 편성한 '고향의 봄'의 경우 후반부의 인상적인 심벌 연주가 고향의 밤에 반짝이는 별을 연상시키며 한국적 정서와 잘 어우러지기도 했다. 이날 출연한 아담 텍세이라(d)와 저스틴 그레이(b)는 음반 작업을 함께한 연주자들이 아닌데다 무척 어려 보이는 외모가 관록의 그렉 오스비와 대비되어 연주 시작 전에는 약간의 걱정을 샀다. 그러나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재기 발랄하게 활용한 그들이 공연의 재미를 더했음은 분명하다.

반면 이선지 쿼텟의 공연은 음반에 대한 만족도에 비해 약간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일단 연주 멤버의 변화가 아쉬움을 만든 것 같고, 일부 곡들에선 마무리가 흐지부지 되는 등 어색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연주도 들렸다. 그런가 하면 'On the Fly'에서 원곡의 피아노 왼손 프레이즈를 베이스 솔로 인트로로 활용했다가 다시 피아노가 이어받는 식의 흠미로운 편곡이 곳곳에서 보였다. 새로운 작곡인 'Fallen-Sun'의 경우 단순한 프레이즈들을 끈질기게 이어내면서 록 음악적인 몽환을 풍겼는데, 작곡가로서 일상의 모습들을 이미지화시키는 이선지의 역량을 보여주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 또한 갖게 만들었다. 앵콜로 연주된 '가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무대 또는 재즈를 찾아온 관객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됐을 거다.

단지 재즈이기 때문이 아니라 뮤지션이라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선택 받을 가치를 만드는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많아졌다. 배장은과 이선지의 경우 함께한 해외 연주자들의 역할도 컸던 게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좋은 작곡과 편곡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뮤지션들의 역량에 대한 구분만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내한했던 한 피아노 트리오는 동네 슈퍼에 다녀오는 듯한 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음악과 무성의해 보이는 연주를 펼쳤다. 그런 그들이 크나큰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까지 끌어낸 걸 보면,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대중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Posted by Lyle
Roll over Beethoven2009. 1. 22. 17:19
이 글은 "재즈, 클래식을 품다" 여섯번째 마지막 공연인 '최고의 순간들'의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09년 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BS SPACE 2008년 12월 29일

클래식을 소재로 한 재즈의 변주들은 재즈의 대중화라는 이유를 상투적으로 보이게 할 만큼 지루하게 되풀이되어왔다. 하지만 그것들과 달리 EBS 스페이스가 기획한 "재즈, 클래식을 품다"는 확실히 재즈가 그 중심에 있었다. 말 그대로, "재즈가 클래식을 품었다." 그런 의미에 부응하듯 '해석'의 과제를 부여 받은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이전과는 차별화된 성과를 보여줬다. 르네상스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테마들을 아우르며 3월부터 시작된 다섯 번의 공연에서, 연주자들끼리 서로를 의식한 듯한 어떤 긴장감이 감돌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각자의 무대에서 저마다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이 일궈낸 성과와 상호간의 경쟁이 "최고의 순간들"이란 무대에서 어떤 식으로 결말지어질지 기대하며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은 이지영 퀸텟의 'Jesus, Joy Of Man's Desiring'으로 시작됐다. 경건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친숙한 바흐의 곡을 발랄함으로 윤색하여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연주였다. 이어서 이지영-임미정의 듀엣으로 바흐의 'Orchestral Suite No.2' 중 'Polonaise'가 연주되었다. 장중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Polonaise'의 선율은 산뜻한 편곡으로 되살아났고, 깔끔한 마무리까지 이어지면서 앞으로 이어질 피아노 듀엣 연주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렇게 빠른 템포와 발랄한 느낌의 편곡 다음에 이어진 임미정의 베토벤 '비창'은 흥분됐던 공연장 분위기를 정돈했다. 피아노 인트로와 색소폰 솔로까지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연주였는데, 특히 결말에서 일순간 꽃봉오리가 열리듯 피어오른 '비창'의 멜로디가 남은 감동을 자아내면서 앞서 펼쳐진 연주들도 필 듯 말 듯 참고 숨겨온 '비창'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미정은 '비창'의 주제 멜로디를 곡 후반에 배치했다.)

이후 등장한 송영주는 비제의 오페라 '진주잡이' 중 '신성한 사원에서'를 모던한 느낌의 여섯 박 편곡으로 들려줬다. 지난 9월에 쿼텟으로 연주된 곡이 트리오로 바뀌면서 조금 단조로워진 느낌은 종반부의 화려한 혼합연주 마무리로 해소되었다. 배장은과의 듀엣인 '나비부인' 중 '어느 갠 날'은 송영주-배장은이 번갈아 멜로디를 발전시켜나가는 편곡이 일품이었고 긴 연주 시간에도 반복적인 구성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오페라 중창곡을 트리오로 연주하고 아리아를 듀엣으로 연주했기에 두 곡의 편성을 서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배장은에 의해 퀸텟 연주로 재창조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독주곡 '프렐류드 op.3 no.2'는 원곡의 무거운 분위기를 살리면서 라틴의 느낌이 더해졌고, 송준서와의 듀엣 순서에서는 조지 거쉬윈의 'It Ain't Necessarily So'를 베이스와 드럼과 함께한 독특한 구성으로 연주하여 공연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송준서는 거쉬윈에 이어서 프란시스 플랑의 '토카타'까지 원곡에 솔직한 편곡을 보여줬다.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연주에서 약간의 광기어린 고집스러움을 느꼈던 것인데, 임달균의 색소폰 솔로 중에도 그는 자신의 연주에 한껏 몰입하고 있는 듯했다. 곧이어 휘몰아쳐 나오는 피아노 솔로로 연결되면서 그것은 이어달리기의 바통터치가 아닌 숨차게 달려온 러너의 라스트 스퍼트처럼 보였다.

준비된(?) 앵콜곡 'Rhapsody in Blue'를 들으면서 '최고의 순간들'이 갖는 여러 의미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일련의 공연들이 통시적으로 잘 기획된 하나의 공연으로 훌륭하게 마무리 되는 순간이란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다섯 명의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다른 무대를 꾸미면서도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펼쳐왔다. 그리고 이렇게 한 데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듀엣까지 엮어내게 됐고, 종국에는 하나의 릴레이 연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결말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른 공연장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드라마틱함을 안겨줬다.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훌륭한 기획공연을 꾸준히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한 가지 욕심이라도 부린다면 "재즈, 클래식을 품다"가 음반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