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8일 EBS SPACE 공감
송영주,배장은(피아노), 써니킴(노래), 김인영(베이스), 숀 피클러(드럼)
올해 4월로 EBS 스페이스 공감이 개관 6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면서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세 여성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기회가 마련됐다. 피아니스트 송영주, 배장은과 보컬리스트 써니 킴이 그 주인공들인데, 여기에 베이시스트 김인영과 숀 피클러(Shawn Pickler)의 드럼이 더해져 듀오에서부터 두 대의 피아노가 주도하는 퀸텟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편성을 들려줬다.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그간 EBS 스페이스 공감을 포함해 여러 무대에서 접해왔던 뮤지션들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사리 카페에서 만나게 될 것 같은 음악인들을 대하는 상투적인 느낌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건 공연 전에 머리로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막상 공연에서는 알면서도 속게 되는 마술 같은 홀림을 경험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번 공연이 마술 같았다는 비유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른 얘기지만, 마술쇼는 얼마나 뻔한 내용을 담고 있던가. 커다란 상자에 들어간 미녀의 허리가 곧 잘릴 거란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허리가 잘린 미녀는 말도 하고 심지어 잘려진 몸이 따로따로 움직일 거란 것도 안다. 그게 다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커다란 칼이 상자를 두 동강 내는 순간 더 실감나게 비명을 지르는 건 관객들이다. 재즈 공연도 쇼 비지니스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어느 공연이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획과 연출의 중요성을 빗대어 생각해볼 수는 있다. 수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양질의 공연과 방송을 제악해온 EBS 스페이스공감이 지난 6년 동안 올곧게 걸어온 것처럼 말이다.
그중 특별한 기획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재즈, 클래식을 품다'에서 인상 깊었던 '나비부인'을 이날 송영주와 배장은의 듀엣으로 다시 듣게 된 건 반가운 일이었다. 이어진 'Monk Medley' 에서 두 사람은 델로니어스 몽크를 모창하는 듯한 연주로 이 거장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영화 <Out Of Africa>를 통해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 익숙함 때문에 진행될 멜로디가 미리 떠오르는 곡이기도 하지만, 재즈 연주 속에서 이어질 멜로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전달됐다. 이날따라 써니 킴은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을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발성을 들려줬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작년에 가진 단독 공연 때도 연주됐던 'Everywhere' 의 경우 그런 발성이 보컬 이펙터와 시너지를 이뤄 또 다른 느낌으로 연출됐다. 전반적으로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연주를 펼쳤고, 특히 송영주의 'Yellow Brick Road' 에서 인상적인 드러밍을 들려준 숀 피클러에게는 환영인사를 전하고 싶다. 국적을 떠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좋은 연주자들이 많아지는 건 당장의 반가움 이상으로 좋은 일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의식적으로 공연에 너무 빠져들지 않으면서 어떤 특징적인 소재들을 찾아내고 연주 내내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을 이어가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느새 음악에 정신을 놓게 되는, 머리로는 어떻게 안되는 곤란한(?) 공연이었다. 이는 공연에 홀려버렸다는 앞서의 말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아껴 모든 용돈으로 음반 한장을 후회 없이 사기 위한 아슬아슬한 고민들을 동반하며 음악에 빠져들던 필자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줬던 매체는 바로 라디오였다. 이제 라디오에서 그런 음악방송이 사라지다시피하고 있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그런데 EBS 스페이스 공감의 방송이 호기심어린 세미마니아들에게 대안으로서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들이 점차 자신의 취향에 깊이를 더해 마니아가 되었을 때 결국 무대까지 찾게 되지 않을까. EBS 스페이스 공감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아는 이들이 찾는 '무대'가 있는 한편, 음악에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에게 깊이 있는 음악을 소개해주는 '방송' 또한 동시에 만들어진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그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면서, 또 앞을 향한 씨앗이 되기도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