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피아니스트 배장은과 이선지가 각자의 앨범 <Go>와 <The Swimmer>를 주제로 펼친 공연 리뷰로, 월간 재즈피플 4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배장은 쿼텟 2009년 3월 3일 at EBS SPACE
이선지 쿼텟 2009년 3월 19일 at EBS SPACE
'가요'라는 말을 '대중적 음악'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썼을 때 그것은 팝, 록, 재즈 등과 별개의 분류일 수 없다. 우리는 이 말을 '국산음악' 또는 '한국어 가사가 있는 노래'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유통 상의 분류가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예를 들어 음반가게들은 국산음악을 찾기 편하도록 별도로 구분해놓았고, 라디오방송도 가요프로와 팝음악프로가 따로 있는 식이다. 어쨌든 '가요'라는 개념이 '음악'을 즐기는 이에게 존재하진 않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을지라도 음반가게에서 카드를 긁을 결심이 서는 데는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실 이건 그것들 간의 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재즈에서는 그 전제가 약간 아리송하다. '한국 재즈'라는 단서가 붙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망설임이 일기도 하며, 상대적인 우위에 의해 밀려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 접한 서너 장의 한국 재즈 음반들이 더 크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겠다. 그 중 배장은이 그렉 오스비 등의 해외 연주자들과 작업한 <Go>와, 처음에는 갸우뚱해가며 듣다가 두 번째에서 더 맛을 느꼈던 이선지의 데뷔작 <The Swimmer>은 공연으로도 접할 수 있었기에 만족감이 더 컸다.
음반도 마찬가지지만, 이 둘의 공연에서 크게 기여한 관악 연주자들이 있었다. 배장은 쿼텟의 첫 곡 'Go'가 그렉 오스비(as)의 블로잉으로 시작됐을 때 이런 톤을 공연장에서 들은 게 언제였나 싶을 만큼 생경했는데, 일단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세계적 연주자들의 무대일지라도 언제나 수백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큰 무대였기에 느껴볼 수 없었던 탓일 거다. 이런 느낌은 이선지 쿼텟의 랠프 알레시(t)에게서도 받았는데, 그의 톤은 음계로 들려오는 것 훨씬 이상이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반의 녹음보다 창조적인 솔로를 연주한 배장은은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었다. 'Giant Steps'는 느리지만 공간미가 돋보인 편곡이었고, 쿼텟으로 바꿔 편성한 '고향의 봄'의 경우 후반부의 인상적인 심벌 연주가 고향의 밤에 반짝이는 별을 연상시키며 한국적 정서와 잘 어우러지기도 했다. 이날 출연한 아담 텍세이라(d)와 저스틴 그레이(b)는 음반 작업을 함께한 연주자들이 아닌데다 무척 어려 보이는 외모가 관록의 그렉 오스비와 대비되어 연주 시작 전에는 약간의 걱정을 샀다. 그러나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재기 발랄하게 활용한 그들이 공연의 재미를 더했음은 분명하다.
반면 이선지 쿼텟의 공연은 음반에 대한 만족도에 비해 약간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일단 연주 멤버의 변화가 아쉬움을 만든 것 같고, 일부 곡들에선 마무리가 흐지부지 되는 등 어색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연주도 들렸다. 그런가 하면 'On the Fly'에서 원곡의 피아노 왼손 프레이즈를 베이스 솔로 인트로로 활용했다가 다시 피아노가 이어받는 식의 흠미로운 편곡이 곳곳에서 보였다. 새로운 작곡인 'Fallen-Sun'의 경우 단순한 프레이즈들을 끈질기게 이어내면서 록 음악적인 몽환을 풍겼는데, 작곡가로서 일상의 모습들을 이미지화시키는 이선지의 역량을 보여주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 또한 갖게 만들었다. 앵콜로 연주된 '가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무대 또는 재즈를 찾아온 관객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됐을 거다.
단지 재즈이기 때문이 아니라 뮤지션이라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선택 받을 가치를 만드는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많아졌다. 배장은과 이선지의 경우 함께한 해외 연주자들의 역할도 컸던 게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좋은 작곡과 편곡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뮤지션들의 역량에 대한 구분만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내한했던 한 피아노 트리오는 동네 슈퍼에 다녀오는 듯한 차림으로 무대에 서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음악과 무성의해 보이는 연주를 펼쳤다. 그런 그들이 크나큰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까지 끌어낸 걸 보면, 한국 재즈라는 단서는 대중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