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일입니다. 굿모닝팝스라고 지금도 꽤 많은 사람들이 듣는 라디오 영어 프로그램이 있었죠. 당시 진행자가 곽영일에서
오성식으로 바뀐 후 그의 특유의 재치있는 진행으로 프로그램이 궤도에 올라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오성식의 영어를 들으면서
문득 어떤
의문이 생겼는데, 한국의 수도 서울을 우리말로 말할 때는 '서울' 이라고 발음하면서 영어 문장 안에서는 '써어올' 이라고 굴려
읽는 게 옳은 일일까 하는 거였죠.
그래서 저는 그 내용을 사대주의라는 표현과 함께 엽서에 적어서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보냈습니다. 그 엽서는 방송에 소개되었고 그 다음달 교제에도 인쇄되어 나왔죠. 그런데 그에 대한 오성식씨의 의견은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발음으로 읽어주고, 또 영어로 말할 때는 영어식으로 읽는 것이 맞는 것이므로 사대주의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제가 보낸 내용이 라디오에 소개되었던 게 반갑다기보다 저는 무척 답답했습니다. 영어로 표기되었을 때의 발음이 '서울' 이 아닌 '써어올' 이라해서 자국의 고유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그의 답변이 더욱 사대주의적으로 들렸죠. 게다가 저는 단 한 번의 문제 제기 기회만을 갖었을 뿐, 그의 그런 답변에 대한 반론을 할 수 없음과 동시에 그렇게 그대로 청취자들 사이에서 결론지어진다는 것이 방송 진행자의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게 상당한 상처였던지 아직도 이렇게 기억이 나는 거겠죠.
몇 달 전 로스엔젤레스와 멕시코를 오가다가 저는 낯선 말을 몇 번 듣게 됩니다. 멕시코에서는 Los Angeles 를 '로스 앙헬레스' 라고 읽더군요. 스페인어권에서 스페인어 표기대로 읽었으니 당연한 건 데 처음엔 참 낯설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건 낯선 게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 자체가 스페인어이기 때문이죠. Los 는 남성 정관사 el 의 복수형이고 Angeles 는 스페인어 '천사'의 복수형입니다. 만약 'The Angels' 라면 영어가 맞겠지만 'Los Angeles' 는 스페인어죠.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Los Angeles 는 스페인어 지명입니다. 최초 Los Angeles 가 생겨날 당시 스페인의 영토로써 이름지어졌고, 그다음엔 멕시코의 영토가 되었다가 다시 전쟁을 통해 미국의 영토가 되었기 때문에 Los Angeles 라는 이름 자체는 '로스엔젤레스' 보다 '로스 앙헬레스' 라고 읽혔던 역사가 더 길며 지금도 그땅의 전주인들은 그렇게 읽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스페인어 지명은 미국에 상당히 많이 있는데 몇가지 예를 들어보죠.
듣기에 익숙한 것들만 예시했을 뿐 미국에서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지명들이 스페인어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Los Angeles 의 경우가 다른 지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명을 영어식으로 읽는 게 보편화 되어있다는 거죠. 그건 아마 두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껍니다. 마침 '엔젤' 이라고 읽는 같은 뜻의 영어단어가 있었고 또 그 도시가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의 세계 도시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지명을 The Angels 로 바꾸지도 않았으면서 스페인어 정관사 Los 는 그대로 살린 채 Angeles 만을 영어식으로 읽고 있는 겁니다. 사실 말이 영어식이지 영어의 'angel' 의 복수형은 'angels' 이므로 '엔젤스' 라고 읽어야지 '엔젤레스' 는 아닙니다. 정말 이상한 정체불명의 지명이 되어버린 거죠.
이걸 우리가 미국인들의 주체성으로 봐야 한다면 참 엉성하기 짝이 없고 억지스럽게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차라리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변질된 걸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로스엔젤레스'라고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으며 스페인어를 쓰는 상당수의 나라들에서는 '로스 앙헬레스' 라고 부르고 있을껍니다. 그걸 일일히 찾아다니면서 확인해본 바는 아니지만 '로스엔젤레스'가 정답이 아님을 알려주는 예시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인했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보면, '서울'은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스페인어를 쓰는 멕시코인들이 타국의 스페인어 지명인 'Los Angeles' 를 '로스 앙헬레스'라고 읽는것에 반해 우리는 우리말로 지어진 자국의 지명을 외국인들에게 '써어올' 이라고 읽어주고 있습니다. 그 외국인이 영어권 사람이건 스페인어권 사람이건 심지어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이더라도 상관 없이 영어로 말할 때 서울은 '서울'이 아닌 '써어올' 이라고 우린 배웠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세계가 자신들의 방식을 따르게 만든 어슬프고 억지스런 주체성을 갖은 미국인들을 그대로 존중해주는 걸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건 남의 나라 일이니까 그들의 방식을 존중해준다고 넘어가자면, 자국의 수도 이름을 '서울'이 아닌 '써어올' 이라고 읽음으로써 자기보다 강한 영어권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주체성 없는 행동이 사대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성식씨!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문화유산은 물론 언어까지도 스페인에 잠식당한 걸 보면서 거리가 멀어서 몰랐을 뿐 스페인이 일본보다 더 지독한 제국주의의 원조였음을 생각하게 됐고, 그나마 문화유산도 보전하고 언어까지 지켜낸 우리는 식민국의 아픔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우린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미 자기들의 언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쓰고 있으면서도 인접 강대국인 미국이 '로스엔젤레스'라고 하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로스 앙헬레스' 라고 하는 멕시코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해 우린 어떻습니까. 우리의 언어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서울도 순 우리말로 지명을 붙였지만 그말을 영어처럼 쓰는 데 주저하질 않고 또 그렇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죠.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에 우리 언어는 우리가 지킬려고 했기 때문에 지켜진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내용을 사대주의라는 표현과 함께 엽서에 적어서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보냈습니다. 그 엽서는 방송에 소개되었고 그 다음달 교제에도 인쇄되어 나왔죠. 그런데 그에 대한 오성식씨의 의견은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발음으로 읽어주고, 또 영어로 말할 때는 영어식으로 읽는 것이 맞는 것이므로 사대주의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제가 보낸 내용이 라디오에 소개되었던 게 반갑다기보다 저는 무척 답답했습니다. 영어로 표기되었을 때의 발음이 '서울' 이 아닌 '써어올' 이라해서 자국의 고유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그의 답변이 더욱 사대주의적으로 들렸죠. 게다가 저는 단 한 번의 문제 제기 기회만을 갖었을 뿐, 그의 그런 답변에 대한 반론을 할 수 없음과 동시에 그렇게 그대로 청취자들 사이에서 결론지어진다는 것이 방송 진행자의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게 상당한 상처였던지 아직도 이렇게 기억이 나는 거겠죠.
몇 달 전 로스엔젤레스와 멕시코를 오가다가 저는 낯선 말을 몇 번 듣게 됩니다. 멕시코에서는 Los Angeles 를 '로스 앙헬레스' 라고 읽더군요. 스페인어권에서 스페인어 표기대로 읽었으니 당연한 건 데 처음엔 참 낯설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건 낯선 게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 자체가 스페인어이기 때문이죠. Los 는 남성 정관사 el 의 복수형이고 Angeles 는 스페인어 '천사'의 복수형입니다. 만약 'The Angels' 라면 영어가 맞겠지만 'Los Angeles' 는 스페인어죠.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Los Angeles 는 스페인어 지명입니다. 최초 Los Angeles 가 생겨날 당시 스페인의 영토로써 이름지어졌고, 그다음엔 멕시코의 영토가 되었다가 다시 전쟁을 통해 미국의 영토가 되었기 때문에 Los Angeles 라는 이름 자체는 '로스엔젤레스' 보다 '로스 앙헬레스' 라고 읽혔던 역사가 더 길며 지금도 그땅의 전주인들은 그렇게 읽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스페인어 지명은 미국에 상당히 많이 있는데 몇가지 예를 들어보죠.
- 엘파소 : 텍사스 로키와 멕시코의 후아레즈 산맥 사이에서 입구역할을 하던 지역으로 'El Paso' 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통로' 라는 뜻.
- 라스베가스 : 평야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Vega 의 복수형과 여성 정관사 la 의 복수형 Las 가 연결된 형태의 지명.
- 네바다 : 스페인어에서 nevar 는 '눈이오다' 이며 명사형으로 '눈이옴'의 뜻으로 nevada 라고 써서 자주 눈에 덮혀있는 곳의 지명이 됨.
듣기에 익숙한 것들만 예시했을 뿐 미국에서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지명들이 스페인어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Los Angeles 의 경우가 다른 지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명을 영어식으로 읽는 게 보편화 되어있다는 거죠. 그건 아마 두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껍니다. 마침 '엔젤' 이라고 읽는 같은 뜻의 영어단어가 있었고 또 그 도시가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의 세계 도시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지명을 The Angels 로 바꾸지도 않았으면서 스페인어 정관사 Los 는 그대로 살린 채 Angeles 만을 영어식으로 읽고 있는 겁니다. 사실 말이 영어식이지 영어의 'angel' 의 복수형은 'angels' 이므로 '엔젤스' 라고 읽어야지 '엔젤레스' 는 아닙니다. 정말 이상한 정체불명의 지명이 되어버린 거죠.
이걸 우리가 미국인들의 주체성으로 봐야 한다면 참 엉성하기 짝이 없고 억지스럽게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차라리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변질된 걸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로스엔젤레스'라고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으며 스페인어를 쓰는 상당수의 나라들에서는 '로스 앙헬레스' 라고 부르고 있을껍니다. 그걸 일일히 찾아다니면서 확인해본 바는 아니지만 '로스엔젤레스'가 정답이 아님을 알려주는 예시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인했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보면, '서울'은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스페인어를 쓰는 멕시코인들이 타국의 스페인어 지명인 'Los Angeles' 를 '로스 앙헬레스'라고 읽는것에 반해 우리는 우리말로 지어진 자국의 지명을 외국인들에게 '써어올' 이라고 읽어주고 있습니다. 그 외국인이 영어권 사람이건 스페인어권 사람이건 심지어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이더라도 상관 없이 영어로 말할 때 서울은 '서울'이 아닌 '써어올' 이라고 우린 배웠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세계가 자신들의 방식을 따르게 만든 어슬프고 억지스런 주체성을 갖은 미국인들을 그대로 존중해주는 걸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건 남의 나라 일이니까 그들의 방식을 존중해준다고 넘어가자면, 자국의 수도 이름을 '서울'이 아닌 '써어올' 이라고 읽음으로써 자기보다 강한 영어권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주체성 없는 행동이 사대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성식씨!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문화유산은 물론 언어까지도 스페인에 잠식당한 걸 보면서 거리가 멀어서 몰랐을 뿐 스페인이 일본보다 더 지독한 제국주의의 원조였음을 생각하게 됐고, 그나마 문화유산도 보전하고 언어까지 지켜낸 우리는 식민국의 아픔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우린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미 자기들의 언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쓰고 있으면서도 인접 강대국인 미국이 '로스엔젤레스'라고 하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로스 앙헬레스' 라고 하는 멕시코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해 우린 어떻습니까. 우리의 언어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서울도 순 우리말로 지명을 붙였지만 그말을 영어처럼 쓰는 데 주저하질 않고 또 그렇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죠.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에 우리 언어는 우리가 지킬려고 했기 때문에 지켜진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