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무렵 우연히 몰스킨 공책을 발견했습니다. 하드커버로 씌워진 조그만 수첩 하나가 크기에 따라 16천원에서 23천원까지 엄청 비싸기도 하면서 뭔가 있어보임직한 이미지를 덧씌워보이는 것 때문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죠. 이런 걸 '수첩'이나 '공책' 이라고 하기보다 '노트북'이라고 불러줘야 제대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 자체가 지불한 재화가치를 따지는 것보다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소비재라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몰스킨은 종류가 참 다양하더군요. 큰 것, 작은 것, 편선지, 모눈종이, 제본된 방향까지... 그 중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이 바로 '씨티 시리즈' 였습니다. 세계 여러 도시들을 테마로 만든 여행용 수첩이죠.
몰스킨 스페인, 바로셀로나
정말 유용한 지도
저는 론리플래닛 지도가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있어서 거기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따로 지도를 마련하지 않아도 될만큼 론리플래닛의 지도는 표기방식과 지역 분류 및 확대지도가 여행자에게 참 유용하게 만들어져있죠. 그런데 몰스킨씨티의 지도 역시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있고 또 보기도 편하고 예쁘게 되어있습니다. 일단 큼직큼직하게 확대되어있고 거리 이름과 광장 이름이 지도 안에 표기되어있으며 왠만환 관광지 역시 지도에 씌어져있어 보기 편리합니다. 론리플래닛에서는 번호로 표시되어있고 인덱스에서 장소의 이름을 찾아야하는 번거로움에 비하면 확실한 편리함이죠.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론리플래닛에 비해 지도가 너무 확대되어있어서 더 많은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그래서 하나의 지도 안에 표시되어있지 않은 두 장소간의 거리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찬기지 이유 때문에 약간 변두리지역에 대해서는 나와있지가 않아요. 예를 들면 바로셀로나의 몬주익 지구라던지...... 하지만 지도 상하자우에 바로 옆 지역이나 아래 지역을 이어주는 지도의 번호가 표시되어있어 보는 방법만 조금 더 익숙해진다면 지도가 크게 확대되어있기만 하다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지도에 덧씌우는 비닐
보석같은 지도 인덱스
그리고 제가 몰스킨씨티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길거리 또는 광장 이름으로 지도를 찾을 수 있는 인덱스 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론리플래닛이나 여타 다른 가이북들의 지도보다 몰스킨씨티의 지도가 여행자에게 더 유용하게 만든 장점이기도 합니다. 지도들 바로 뒤에 해당 도시의 모든 거리 이름과 광장 이름이 나열되어있는데, 알게모르게 참 기특한 역할을 하더군요. 만약 여행 가이드책이나 인터넷에서 가보고싶은 곳을 찾았는데 지도에 표시되어있지 않고 주소만 있다면, 론리플래닛 지도에서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거리들 중 해당 거리 이름을 찾기 위해 지도를 이잡듯 뒤져야 하지만 몰스킨씨티의 지도에서는 정말 간단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는 현지에서 누군가에게 길을 물었는데 "그거 메르세 거리에 가면 있어" 라고 대답해준다면 역시 몰스킨씨티를 보고 금새 찾을 수 있겠죠. 이런 건 정말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 만든 보석같은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류용 탭메모
지도에 비하면 조금 평범한 기능이 되겠지만 카테고리로 분류해서 메모할 수 있는 탭메모 공간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식당', '까페', '숙소', '즐길것', '정보 또는 쇼핑', '문화' 등의 여섯가지로 나뉘어져있고 사용자가 임의로 카테고리를 만들어 개인화 분류할 수 있는 탭들이 여섯개가 더 있어 총 열두개의 탭메모 공간을 가지고 있죠. 아래 사진에 보이듯 마치 옛날에 쓰던 전화번호수첩처럼 되어있습니다.
탭(tab)메모
이렇게 쓰는 건 어떨까
여행다니면서 가이드북을 들고다니는 건 조금 짜증나는 일입니다. 뭘 하나 하려고 해도 가이드북을 펼치고 어떻게 갈지, 어디로 갈지를 찾아헤매야하는 게 적잖은 스트레스죠. 게다가 가이드북은 대게 크기도 상당합니다. 저처럼 론리플래닛을 가이드북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정말 괴로울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사전에 가야할 곳과 루트를 몰스킨에 표기해놨습니다. 분류용 탭메모에 관광지나 그밖에 찾아갈 곳들을 적고 몰스킨지도의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표시해놓고서 지도에는 돌아다닐 동선표시까지 해놓은 거죠. 그리고 탭메모에 목적지에서 봐야할 관전포인트(?)나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옮겨적어서 막상 도착했을 때 가이드북을 펼치고 독서를 시작해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합니다. 물론 가이드북을 들고가긴 하겠지만 숙소에 놓고서 외출할 때는 간편하게 몰스킨씨티 하나만 들고나갈 수 있도록 여행준비를 하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사소한 기능이지만 몰스킨씨티가 얼마나 여행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제작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또하나의 기능을 소개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바로 책갈피처럼 쓰이는 천으로 된 끈인데, 그게 한 개가 아니라 두 개 세 개씩 붙어있네요. 그런데 제 수첩이 불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셀로나에는 두 개, 마드리드에는 세 개가 붙어있습니다. 지도에 하나 탭메모에 하나 끼우면 여행다니면서 수첩에 손가락을 책갈피처럼 끼우거나 지저분하게 접거나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급하다고 해서 이렇게 비싼 수첩을 마구 접는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