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서 옥탑방 주변의 옥상 전체가 내 공간이었으면 했던 건 헛된 바램이었다.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떤 낭만 비슷한 걸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옥탑 주변은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쓰지 않는 물건들을쌓아놓는 지저분한 공간일
뿐이었다. 뿐만아니라 모든 세대가 빨래를 널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기에 늘상 침범당해야하는 게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침입을 막고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옥상 출입구를 걸어잠그고 다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나만의 공간이고 싶었던 그곳을 침범당한 경우는 그것들 말고도 또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깜깜한 밤이었는데, 술에 취해 돌아온 내가 얼얼해진 손에 쥔 열쇠로 빙글빙글 피해다니는 열쇠 구멍을 찌르느라 옥탑방의 알미늄샤시 문과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열쇠를 꽂는데 성공하고도 잠금쇠가 녹슬어 열쇠가 잘 돌아가질 않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열내고 있을 때였단 말이다. 불현듯 인기척을 느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거의 주저앉아버렸다. 1층에 사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빨래줄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나란히 누워계신 걸 그제서 발견한 거다. 아까부터 끙끙거리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계셨는데, 내가 문을 여느라 애쓰면서 당신들을 발견하지 못하자 멋적어지셨는지 숨까지 죽이고 계셨던가보다.
4층짜리 (내가 살던 옥탑까지 층으로 쳐준다면) 그건물의 1층에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아들 부부, 또 그밑에 고등학생이거나 막 대학에 입학했을 것 같은 형제까지 그들은 그렇게 여섯 가족이었다.
간혹 비가 오는 날 내가 널어놓고 나간 빨래를 대신 걷어주시곤 하셨던 할머니는 잘 걷지 못하시던 할아버지와 함께 두분이서 동네를
거니시는 다정한 모습과 여러차례 마주쳤었다. 또 그들의 아들 부부역시 내가 집에 없을 때 등기우편 따위를 대신 받아주시기도
하셨는데, 간혹 내가 오래 집을 비울 때면 한동안 안 보이는 것 같던데 어디 다녀왔느냐고 관심을 보이시는 등, 정말 건강한
가정의 가장과 며느리의 바로 그런 모습으로 비춰보였다. 그래서, 누가 사는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2층 사람들과 간혹 고성을
지르며 부부싸움을 해대던 3층 사람들과는 달리, 1층 분들과는 늘상 서로 후한 웃음으로 인사하며 지내곤했다.
그랬음에도 비록 한밤중의 그상황 탓에 그날은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하진 못했다. 그땐 옥상 전체를 내공간으로 하고 싶었던
만큼 어색한 상황에 대한 외면 이후 옥탑 문을 닫고나서도 그분들과 한 방에 함께 누워있는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
한 번 당황했던 때를 빼면 옥상에 놓인 물건들이나 빨래들을 볼 때마다 일던 침범당했다는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이후로도
왕왕 나란히 누워 열대야를 즐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마주칠 때면 옥탑에 돌출되어 늘상 혼자이고자 했던 내게까지 어떤 화목한
기운이 배어드는 기분이 됐다랄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의 어느 휴일이었다. 낯선 사람 하나가 옥탑방 문을 두드렸고, 그는 내게 1층에 사는 분들의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무슨일이냐 되물었을 때, 1층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아느냐며 문상을 가려는데 장례식장이
어딘지를 모르겠고 1층집에 전화연락도 안되어 답답한 마음에 찾아와봤다는 거다. 그가 돌아간 후 왠지 모르게 옥탑 알미늄샷시 문을
걸어닫기가 껄끄러웠다. 그리고 옥상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웅얼웅얼 말씀하셔서 알아듣기 어려웠던 그분을
두고 언젠가 나는 침범이라 생각하며 못마땅해한 적이 있었다.
이듬해 여름의 옥탑은 전보다 더 황량해진 느낌이 되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는데도 한동안 마주치지 못했던 할머니와 건물 앞에서 마주친 어느날이다. 반갑게 인사드렸지만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신 채 그냥 지나치셨다. 항상 풍성지게 매만져졌던 새하얀 머리칼은 편한대로 잘린 산발이 되어있었고, 통통하고 고우셨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많이 야위어버린 할머니. 그후로 어쩌다 내 인사를 받으실 때도 나를 "도련님" 이라 부르시며 이 빠진 웃음을 지으실 뿐이었다. 할머니께서 정신을 놓으신 것 같았다.
그러고서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따라가셨다. 옥상에 돗자리 깔고 나란히 누워계시던 것처럼 다시 또 나란히 누우신 거다. 그해 겨울 옥탑은 살기 싫어질만큼 추웠고, 결국 겨울을 나지 못하고서 나도 그곳을 떠나버렸다.내가 살던 옥탑. 옛기억에 다시 찾아갔었는데 이미 낯익기보다 낯설음이 훨씬 컸다. 올라가보기 위해 용기까지 필요했을만큼 말이다. 그러나 옥상 입구는 잠겨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