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기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01 그간 거친 클래식기타들, 그리고 새로 구상중인 악기.
  2. 2007.10.05 Jose Ramirez 기타샵
Every little thing2009. 10. 1. 18:23
클래식 기타를 처음 시작하면서 샀던 기타가 무엇이었는지 이름도 잘 기억 안납니다. 아마 삼익이거나 세고비아쯤 됐겠죠. 합판에 락스칠 해놓고 하드케이스만 씌워서 '악기'의 뽀대만 내놓은 그런 기타였습니다. 지금에서나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당시로써는 그정도로 충분했었죠. 아직 기타에 대해 진지해지기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기타는 '원음'이라는 브랜드의 기타였습니다. 사실 이 악기는 썼다고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위에서 쓴 악기인 척하는 기타는 창피하다고까진 말하지 않습니다만 원음기타는 정말 창피합니다. 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국내 기타 제작자들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일부는 대학교 동아리나 학원들에 기타를 공급하면서 영업을 합니다. 단기간에 많이 만들 수 있는 저가형 모델들을 여러개 공급할 수 있고 재고 처리도 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제가 처음 다녔던 학원을 통해서 그런 제작사들 중 하나인 원음기타를 만났습니다. 그런 후에 기타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해지면서, 제 귀가 여러가지 악기들의 소리를 접해보게 됐고, 어느 순간에 제가 쓰는 악기는 완전히 사기라는 걸 알게 돼서 충격을 받았었죠. 창피해서 어떤 부분이 그랬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원음기타와, 그 악기를 공급하는 학원 둘 다에게 사기를 당한 샘입니다. 저는 그 악기를 사기 위해서 초,중,고등학교 때 저금했던 돈을 모두 썼었습니다. 어린시절의 절약이 결국 그런 형편없는 귀결로 이어졌다는 게 가장 미운 부분입니다.

세번째 악기는 라미레즈 였습니다. 상당히 전통있고 유명한 스페인의 기타 제작가문의 이름입니다. 라미레즈 3세 이후부터 대중적인 사업형을 지향하면서 공방이 공장으로 바뀐 이미지가 생긴데다가, 현대 제작기술로 좋은 악기를 만들어내는 많은 제작자들이 나타나서 지금은 그 위상이 상당히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름값을 못하는 악기는 아니고 당시 제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악기었습니다. 지금까지 따르고 있는 많은 기타 제작기법들이 라미레즈 1세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고, 세고비아를 비롯해서 수많은 유명 연주인들의 선택을 받았던 이름이죠. 선생님께서 유학가기 전에 쓰셨던 악기로 비록 라미레즈 연습용 모델이었지만, 당신께 처음 라미레즈를 받아서 연주해보았던 그날을 악기라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던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2002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저와 함께 하고 있는 네번째 악기는 그로피우스 입니다. 2002년에 독일 제작자 그로피우스가 열번째로 제작한 악기로 주문하고서 꽤 오랜 시간 기다렸더랬죠. 기타의 거의 모든 사양을 주문했습니다. 1번 줄은 20플랫까지 있어야 하고, 앞 판은 시더(Cedar), 측후판은 하카란다(Jacaranda) 라는 식으로요.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기타가 되어서 제게 왔습니다.

그런데 약간 후회되는 부분있는데, 그로피우스를 주문할 때 6현이 아닌 7현으로 했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여러번 했습니다. 기타연주곡 특성상 6현을 E 튜닝할 때도 있고 D 튜닝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 생기는데 7현으로 제작해서 7번째 줄을 D 튜닝해놓으면 편리하겠다는 거죠. 특히 류트(lute) 곡 연주할 때 7현이나 8현 기타가 힘을 발휘할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다보니 기타를 한 대 더 갖고 싶은 생각으로 발전해버렸네요. 그렇다고 그로피우스를 버릴 생각이 없기 때문에 함께 쓰려면 좀 다른 성향의 악기가 되어야겠죠. 

지금까지 생각한 사양은 대략 이렇습니다. 앞 판은 시더 더블탑 구조로 만들어서 단단한 소리가 났으면 합니다. 그로피우스는 앞판이 시더면서도 엄청 얇게 만들어서 소리가 무척 부드럽기는 하지만 콘트레라스나 라미레즈 같은 스페니시 기타와는 소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죠. 새로운 기타는 어택이 빠르고 스페니시 성향의 소리가 났으면 합니다. 측후판은 아프리칸블랙우드를 사용해서 전체적인 기타의 이미지가 고딕 스타일이게 하고 싶습니다. 혹시 제작자에게 무늬가 아름다운 하카란다가 있다면 그걸 쓸 생각이지만 제작자에게 무늬를 맞추는 센스가 없다면 그냥 인디안로즈우드로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현장은 650mm 으로 하고 7현 기타로 해서 7번 현을 D 튜닝 해서 쓰고 싶습니다. 튜너는 대중적인 금색의 튜너들이 식상해서 현대적인 느낌의 존길버트의 흑단 모델 또는 현재 그로피우스에 달려있는 프리윌의 다른 색깔 모델이었으면 합니다. 그로피우스가 앞 판과 넥이 수평이 아닌 각도를 이루도록 설계되어있는데, 하이포지션 운지할 때 그다지 편하다는 느낌은 없더군요. 그래서 라이징보드는 필요 없습니다. 더 세부적으로는 브리지에 구멍을 6개 아닌 12개를 뚫어서 기타줄을 맸을 때의 효율을 더 높힐 생각입니다. 칠은 물론 프랜치폴리싱 할껍니다. 로제트는 단순하면서도 각진 길버트(John Gilbert)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는데, 클래식기타에서 제작자의 개성이 가장 크게 들어가는 부분이어서 혹시 제작자에게 자신만의 개성이 있다면 따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제작자들 중 의뢰할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가격도 꽤 각오를 해야할 것 같군요.

Posted by Lyle
Magical Mystery Tour/Spain2007. 10. 5. 13:27

요샌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90년대에 '라미레즈'란 이름은 클래식기타 애호가들의 로망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카메라의 '라이카' 고, 허리띠의(?) '구찌' 또는 자동차의 '벤츠' 같은 거죠. 한번쯤 써보고 싶은 그런 것. 저역시 그런 라미레즈 기타를 스승님께서 물려주셔서 써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추어인 주제에 악기를 물려받았다는 말을 쓰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샀기 때문에 물려받았다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돈주고 샀다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공짜로 받은 것처럼 '물려받았다' 라고 말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을만큼,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악기를 얻었습니다.)

Jose Ramirez 는 1880년대부터 4대째 클래식기타를 제작하고 있는데, 95년에 Jose Ramirez IV 세가 죽으면서 여동생 Amalia 가 공방의 운영을 이어오고 있지만 사실상 기타제작가문으로써의 명맥은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4대째 이어온 기타제작의 노하우는 오랜 세월동안 라미레즈의 이름을 갖은자 말고도 여러 훌륭한 제작자들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Ramirez 라는 이름은 이미 그 이름 안에서만 의미가 한정되는 그런 이름이 아닌 거죠. 이미 많은 프로연주자들을 통해 널리 알려진 기타 제작자인 Ignacio Fleta 나 Paulino Bernabe, Manuel Contreras 등도 과거 Jose Ramirez 공방의 종업원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있는 악기를 사용했던 사람으로써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Jose Ramirez 샵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페인을 떠나는 당일날 살짝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던 6시무렵에 지도를 보고 찾아낸 Calle de la Paz 에서 Jose Ramirez 라고 적힌 샵을 발견할 수 있었죠. 스페인에서 찾아낸 그 어떤 곳만큼이나 참 반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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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Ramirez 기타샵. 창문에 비친 내모습도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데스크에서 한 여자분이 절 맞았습니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찾아가볼만한 곳으로도 나왔기 때문에 여타 다른 관광지에서 절 대하듯 할꺼라고 너무 당연하게 짐작했던 걸까요. 그 데스크의 여자분은 저를 그냥 일반 가게의 점원들이 하듯 대하더군요. 저는 갑짜기 관광객에서 샵에 찾아온 손님으로 저를 바꿔야 했기 때문에 약간은 당황해하며 그녀에게 물어봤습니다.

기타 박물관은 어디있나요?
론리플래닛에서는 기타샵에 기타 박물관이 함께 있다고 나와있었죠. 그녀는 지금 안에서 일 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내일 다시 오면 볼 수 있을 꺼라고 떠듬거리는 영어로 대답해줬습니다. 보이진 않았지만 문 하나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내부에서는 여러사람이 열띠게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래서 저역시 떠듬거리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서 다시 말해줬죠.

사실 저는 내일 제 나라로 돌아갑니다. 제가 라미레즈 기타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꼭 방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왔으니 여기 주변이라도 구경하고 가겠습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그녀는 약간 미안한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문제 없다며 사진찍는 것도 허락해줬습니다. 사실 제가 들어선 샵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아서 별로 볼 게 없었죠. 그래도 제가 서있는 곳이 Jose Ramirez 기타샵이고, 진열되어있는 악기들이 제가 썼던 악기처럼 기타리스트들에게 전달되기 전의 진열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그곳에 서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 뭔가를 이야기하더군요. 느낌상 저라는 손님이 찾아왔음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죠. 아니나다를까 그녀가 나와서는 환하게 웃으며 이제 들어가서 구경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안에서 제가 찾아온 경위에 대해 설명했나봅니다. 그런데 참으로 미안했던 것이 안에서 일 관계로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저대신 밖으로 나와서 이야길 계속 했고 저는 그들을 몰아내고 안쪽으로 들어가 진열된 오래된 기타들을 구경할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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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박물관


론리플래닛에 'guitar museum' 이라고 적혀있어서 대단한 걸 기대했었던 것 같은데 사실 기타박물관이란 것은 사진에 보이는 왼편 진열장 안에 있는 기타들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기타의 모델이며 기타의 스트라디바리라고 불리는 토레스의 악기부터 시작해서 여러 형태의 기타들이 Jose Ramirez 계보에 있는 악기들과 함께 진열되어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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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Ramirez 가 만든 LUTE

다시 밖으로 나왔더니 저 때문에 밖으로 나와준 사람들이 여전히 뭔가를 열씸히 토의하는 중이더군요. 사진 속의 할아버지가 Jose Ramirez 3세거나 혹은 4세였으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만 그들은 이미 95년과 2000년에 타계했습니다.
01

뭔가 기념이 될만한 걸 사가고 싶었지만 악기와 몇가지 악세서리 말고는 그럴만한 게 없더군요. 데스크에서 홍보용 책자와 카탈로그 하나씩을 집어들고 아주 조용히 인사하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