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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05 허지웅의 냉소
Every little thing2012. 9. 5. 21:53

나역시 냉소적인 사람이다. 아마 아버지에게 유전 또는 전염되었을 것 같은 나의 냉소는 어렸을 때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고 괴롭게 만들기까지했다. 그런데 여전히 그런 냉소를 가지고서도 나이먹을 수록 조금씩 편해지는 것은 어렸을 때보다 신중해지고 부드러워졌기 때문인 한편, 나의 냉소를 나이먹은 논리로 뒷받침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성숙한 논리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생각이 모자르고 표현도 잘 못하고 그래서 헛점을 더 드러내는 사람들 앞에서 꿀리지 않아서일 거다.) 그리고 또한 믿고 싶은 가치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가치를 남에게 전파할 수 있을만큼 성장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어떤 가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나의 냉소는 내가 믿는 가치들에 반하는 것들을 향해서만 작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세상에 냉소할 꺼리들이 참 많아서 여전히 나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내 자신도 그렇다보니 나는 냉소적인 태도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는데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 가끔씩 접하게 되는 허지웅을 싫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다만 허지웅의 글에서 자신의 냉소와 상대방의 진심에 대한 고민을 읽었을 때 그가 냉소하지 않는 가치는 어떤 것일지, 존해하기는 하는지 궁금해졌다.

 

허지웅이 찾아가서 격었다는 나이로비의 난민촌은 허지웅에게 진실일 뿐이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퉁쳐서 말하자면 내가 격은 난민은 달랐고, 동정은 그들에게 상품이었다. 또 인도의 한 난민촌에서는 상품인 정도를 넘어서 동정을 강탈당해야 하는 상황도 격어봤다. 허지웅의 키베라에서의 생각을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상대적이라는 거다. 어떤 아이는 돈을 바라고 어떤 아이는 온기를 바랬을 뿐 진심은 한가지가 아니다. 어떤 여행자는 동정을 배풀어 즐거움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를 찾기도 하고, 어떤 여행자는 마음 편하기 위해 간 인도여행에서 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인도 여행을 후회하기도 했다. 손을 내미는 사람도, 그 손에 무얼 쥐어주는 사람도 각자의 진심이 있는 거다.

  

누군가 자신의 진성성을 호소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진심은 믿고 싶은 사람에게만 설득력을 갖는다. 그건 일종의 희망이라고 하겠다. 내가 믿고 있거나 믿고 싶은 가치에 설득당하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성에 대한 호소가 냉소의 대상이 되는 건 상대방의 진심의 반대편에 서있을 때 차라리 의미를 갖게 되지, 맹목적인 냉소로 대하는 것은 잡아달라며 내민 손을, 또는 잡아주려고 내민 손을 뿌리치는 것과 같다. 손을 잡아주거나 먹을 걸 쥐어주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