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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2008. 2. 13. 01:32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이스탄불 공항 면세점에서 와인을 네 병 사왔다. 그중 셋은 터키 와인이고 나머지 하나가 Escudo Rojo. 한국에서도 어렵잖게 구해 마실 수 있는 칠레산 와인을 굳이 터키산 와인을 대신해 들고온 건 우리나라 할인마트에서 사는 값의 반 값도 안했기 때문이다. 망설일만큼 애매한 와인이 아니므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행'과 '경험'이란 의미를 뺀다면 알지도 못하는 터키 와인 따위 제끼고서 Escudo Rojo 만 들 수 있을만큼 가지고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이번 여행은 미련이 없는 것 이상으로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좋은 기억이 없는 건 아니지만 터키 여행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스스로 저지른 엉뚱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막바지엔 여행을 망쳐버린 경험까지 하게 됐으니 더 말해서 뭐할까. 그렇게 이번 여행의 먼지를 가득 쓸어담아 더 무거워진 배낭을 처진 어깨로 걸쳐 매고서, 그럼에도 조금 더 느껴보겠다며 듣도 보지도 못한 터키 와인들을 싸들고 왔던가보다.

더 실망하기엔 때가 좋지 않다 싶어 터키산 와인들은 뒤로 미루고 방금 전 Escudo Rojo 를 땄다. 잔에 따라 빙글빙글 돌리고 코에 가져다 댄다. 이렇게 두꺼웠나, 마치 처음 느껴본 것처럼 묵직하고 풍부한 아로마에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이거 참 다행이잖아.

조금 더 좋게 생각해보기로 하자.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