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스페인어학원에서 수업받던 중 쉬는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 허리에 통증이 왔다. 그 후로 허릴 구부릴 때 가끔씩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었지만 살살 다니니까 괜찮길래 자고나면 나아지길 바라면서 자고 또 잤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땐 통증이 더 심해져있었다. 이젠 허릴 구부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앉아있기도 힘이 들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사흘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세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마지막 LA 발 서울행 비행기는 공항 대기시간만도 12시간이고, 비행 시간은 그보다 길다. 그런 힘든 여정을 앞두고 이만큼 허리가 아프다는 건 여행이 여기서 끝났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건 아쉬움을 넘어 두려움에 가깝다.

약국엘 가서 진통제 두 알과 파스 한 장을 사왔다. 이 더운 날에 뜨거운 찜질 파스밖에 없다는데, 그것도 달랑 한 장에 17.8 께찰 (약 2,700원) 이나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일단 진통제부터 먹고 파스를 뜯었다. 혼자서 내 등허리에 파스를 붙여보려고 애쓰다가 파스가 반으로 접혀 붙어버렸다. 갑짜기 울컥해졌다. 혼자서 타지에 있을 때의 아픔은 고통스러움 보다 서러움이 더 크단 걸 경험해본 사람들은 그 기분을 알꺼다. 파스의 끈끈이가 어찌나 세던지 접혀서 붙은 걸 떼어서 써보려고 했지만 파스가 찢어질지언정 떨어지진 않았다. 잠시동안 가만히 분을 삭혀야만 했다.

파스를 쓰지 않고 진통제로만 참아보려고 생각했다. 17.8 께찰이 어찌나 아깝던지 말이다. 그러나 곧 다시 파스를 사러 나갔고 약국 아줌마가 18 께찰을 건낸 내게 "Está bien" 하면서 잔돈을 주지 않는 바람에 아줌마더러 등허리에 붙여달래볼까 하던 마음이 쏙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이번엔 아까의 시행착오를 딛고 제대로 붙여냈다.

그런데 파스가 어찌나 뜨거운지 허리 통증더러 저리가라 하는 것 같았다. 참아보려고 해도 신음이 절로 나왔고 그냥 뗘버리자 싶은 생각도 여러번 찾아왔다. 가만히 참고서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Flores 섬을 여러바퀴 돌았다. 섬을 둘러싼 호수에서 한가롭게 수영하는 사람들,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호수를 건너기 위해 배를 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걸 보면서 조금은 참아내기가 수월해졌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다가 숙소 바로 앞 맞은 편에서 약국을 발견했다. 여길 두고서 아까는 섬 반대편에 있는 약국까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씩씩대며 두번이나 다녀왔던 데 헛웃음을 짓는 되는 여유도 생겨버렸다.

그리고 뭔가가 그리워졌다. 나의 아픔에 주름을 더해가며 늙어가시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그래서 기쁜 일 말고는 차라리 숨길 수밖에 없게 되버린 부모님이 아니라 아직 잡히지 않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생겨난다. 잡아본 적 없는 것이 그리움이라고 불리는 건 그게 가족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쿠션이 다 망가진 침대에서 자는 일이 내게 어울리고 또 아무렇지 않게 견뎌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이젠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혼자 되는 것도 그렇다.

이 뜨거움도 통증만큼 쉽게 사그러들질 않는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