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2008. 1. 29. 01:38
조금전 여행에서 돌아왔다. 얼마간 못 봤다고 나를 낯설어하는 탈리(고양이)만큼이나 나역시 어딘가 아직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두근거릴만큼 들떠있는 것이, 즐길 수 있는 만큼의 낯설음이 여행의 여운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그동안의 앞선 여행들이 고행을 닮았었다면 이번엔 휴식과 위안이 되어줬다. 그리고 또 이번 여행은 소설 같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 떠난듯한 여로형 소설 말이다.

바로셀로나 Joan Miro 미술관 앞에서 빨간 사과 한 알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던 사람. 인연이라 부르기도 쑥쓰러울만큼, 내가 타야했던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는 걸 서로가 알면서도 그렇게 몇 분간이지만 함께 버스를 기다려주었다.

세비야의 호스텔에서 내 윗 침대를 썼던 이를 꼬르도바에서 다시 만났을 때, 멀리서 그의 뒷모습과 함께 보였던 2유로짜리 반지를 내가 기억해내지 못했더라면, 그것에 우연이란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을 꺼라고 반가움 뒤에서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알던 그 누군가의,
그러나 내가 알 수 없었던 그의 과거 속 순간들을
그가 아닌, 하지만 그를 닮은 누군가와 함께 다니며 엿볼 수 있었던
마드리드에서의 하루.

그 모든 순간들마다 우리에겐 각자의 여행이 있을꺼라 아쉬움 이전의 이별을 했을 때, 모두가 다 소설 속의 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장소가 낯설어진만큼 길 위에서는 사람들도 함께 낯설어지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왠지 내가 가는 길 위에 필연적으로 등장했을 것 같은 그사람들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 모든 여로형 소설들의 결말이 그러하듯 나역시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와있다. 낯선 곳에서 얻은 무언가를 가슴에 담아갖고서.

우리가 이별을 하기 전부터 서로에겐 각자의 여행이 있었다.


2007년 10월 3일 새벽.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