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5. 6. 19. 15:56
아침에 깨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매끈한 대머리 같아서 가발이라도 씌워야할 것 같았던 그의 잘려서 남은 다리었다. 그 옆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대머리의 아내가 그의 긴 다리를 잡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하얀 까운을 입은 의사가 그의 짧은 다리 끝에 약품을 발라 닦아내고 있었다. 그는 곧이어 하얀 붕대를 그위에 감았고, 나는 무더위에 붕대 때문에 땀띠가 돋을까 걱정스러웠다. 덥긴 한가보다, 그가 항상 환자복 앞섶을 풀어놓고 있는 걸 보면...

밤이 되자 문가에 누워서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눈을 멀뚱거리던 환자에게 설치되어있던 전자 장비에서 자꾸만 버저가 울렸다. 며칠 전부터 간병을 해왔던 환자의 딸로 보이는 여자는 그옆에서 쉬지않고 부채질을 했고 친구로 보이는 남자는 별로 하는 일 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부저가 울린다고 간호사가 달려오거나 간병인들이 부산을 떨지 않는 걸 보니 응급 상황은 아닌 것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그소리에 놀라다가 나중엔 양치기 소년의 외침 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듯 반복되던 부저 소리말고도 산소마스크 안에서 헉헉 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한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간병하던 아저씨가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간호사가 그를 따라 들어와서는 환자의 침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아저씨가 나머지 다섯개의 침대를 훑어보며 민망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진작에 옮겼어야 했는데 방해되서 미안하다고, 숨쉬기가 불편해서 그런 거라고. 내 옆에 누워있던, 코에 커다란 솜을 박아넣은 할아버지가 애써 일어나 되려 미안한듯 인사를 받는다. 난 그대로 누워서 읽던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못 본 척 했다.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산소마스크는 어디로 옮긴 걸까.

그날 밤도 잠이 오질 않아서 휴게실에서 책을 읽다가 새벽 2시가 지나서 자리로 돌아와 두웠다. 내 옆 침대의 할아버지가 코 속에 솜을 박아넣은 만큼이나 답답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할아버지한테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하려니 밖에서 한 여자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아까 밤에 병실을 옮긴 산소마스크의 멀뚱거리던 눈망울이 떠올랐다. 잠시 후 할아버지의 코골이가 멈춘 후부터는 여자의 곡하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때 난 직감했다. 이 병실 안의 모두는 지금 깨어있어 저 울음 소리만을 제외한 이 완벽한 정막을 연출하고 있다. 코골이를 멈췄던 할아버지가 정막을 깨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곧바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병실 사람들이 간밤에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병실들을 청소하러 다니는, 그래서 병실 사람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산소마스크의 최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사연들과 함께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렇게나 나이들어보이던 산소마스크는 사실 서른 여섯으로, 딸처럼 보이던 여자의 남편이었단다. 다섯 침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그 여자의 어린 아이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코골이 할아버지의 아들이 들어오면서 침대 하나가 빠진 걸 보고 퇴원한거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힘 빠진 외마디 웃음을 터뜨릴 때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안타깝게 대답했다.

"아주 갔어."

지금 내가 앉아있는 병원의 유료 PC 양 옆에서 꼬마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시끄럽게 놀고 있다. 정신없이 놀면서도 잠깐씩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 아이들에게 찢어지고 부어오른 내 얼굴은 내가 병실에서 본 것에 대한 느낌과는 다를 거다. 더 무섭기는 해도 더 슬프지는 않을테니까.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