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5. 8. 11. 02:20

아마도 은연중에 그일이(그럴 일이 있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이후로 난 짜증이 많아졌다. 스스로도 단속이 필요하겠다 싶을만큼이니 내 주변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고 있을까 생각하면 사람을 피하고 싶어지기도하다.

같은 강습시간에 수영하는 아줌마가 있다. 처음 그아줌마가 눈에 띈 건 그의 빨간 수영모보다 항상 대열의 맨 뒤에 선다는 걸 인식하게 됐을 때었다. 대열의 앞이나 중간쯤에 서면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유난히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꼭 대열의 맨 뒷자리를 고집하더라

수영 강습을 안받아본 사람들에게 설명하자면, 수영장 한 레인을 한개의 강습반이 줄을 서서 연습메뉴를 소화하는데, 레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우측통행으로 레인을 왕복하면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뒤에 서는 사람은 실제로 왕복코스를 다 활용할 수 없을 때가 있다. 10명이서 줄을 섰을 때 10m 정도가 필요하다면 25m 한 레인을 왕복해서 10명이 레인의 출발점에 나란히 줄서게 되면 대열의 첫번째 사람은 50m 를 수영하게 되지만 마지막 사람은 40m 를 수영하게 되는 샘이다. 그밖에 선두가 후미에 비해 상당히 많은 운동량을 더 소화해야한다는 등의 부담에 비하면, 사실 이 문제는 소소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수영강습에서 한가지 연습 메뉴는 여러바퀴를 연속으로 돌기 때문에 왕복코스에서 줄서있는 대열만큼을 손해보는 건 실제로는 마지막 한바퀴에서만 발생할뿐이기 때문이다.

빨간모자는 그 작은 손해가 불만인건지, 연습메뉴마다 마지막 바퀴를 돌때면 레인 끝에 도착하여 우측에 나란히 줄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사람들을 밀치듯 수영해 지나가서 레인 끝까지 가곤 했다. 거기까지만해도 눈에 띄는 행동인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헤집고 지나온 사람들을 거슬러 다시 대열의 끝으로 걸어돌아가면서 여기 서있으면 수영하는데 방해가 되니까 자기가 도착할 땐 비켜줘야한다는 식의 잔소리를 예외없이 항상 하곤 했다.

앞서 말했드시 대열의 후미만 고집하지 않으면 격지 않아도 될 손해임에도 항상 맨 끝에 서서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행동이 고약해보이기까지했다. 나는 항상 선두에 서기 때문에 그 빨간모자의 시비를 직접 접할 일이 없었지만 그 고양한 모습을 보기만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면서 눈가의 피부가 물안경을 꽈악 조이곤 했었다. 그런데 빨간모자와 내가 맨 끝과 맨 앞이어서 마주치지 않아도 됐던 편리함(?)이 머리와 꼬리가 만나는 일이 생기면서 부숴졌고 결국 빨간모자에게 짜증을 냈다.

접영을 하게 되면 레인을 우측통행 할 수가 없게 된다. 팔을 양쪽으로 넓게 벌리게 되는 영법이기 때문에 우측통행을 하면 오른팔은 레인을 가르는 줄과 닿게 되고 오른 팔은 돌아오는 사람과 부딪히게 되어 위험하다. 그래서 보통 접영 연습메뉴는 25m 레인을 편도로 사용하여 후미가 도착하면 선두가 다시 출발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때 역시 후미는 먼저 도착해서 서있는 대열의 길이만큼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접영을 왕복으로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강습레벨에서는 접영으로 25m를 갔다가 돌아올 때는 레인을 사용하는 폭이 좁은 크롤이나 한 팔 접영 같은 영법으로 왕복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후미가 접영으로 25m 를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빨간모자와 마찰이 생겼던 날에 그런 식의 접영 왕복 메뉴가 있었다. 강사는 1바퀴 왕복 단위로 끊어서 후미가 도착하면 다시 접영으로 출발하라고 말했는데, 선두였던 내가 한바퀴를 돌아 왔을 때 후미가 아직 출발하지도 못한 상태었기 때문에 후미가 돌아올 때까지를 기다려 다시 접영을 하려면 나를 꽤 기다리게 해야했다. 강습받는 사람들이 많고 선두와 후미의 실력차이가 나면 그 간격이 벌어져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강사가 선두인 나를 계속 기다리게 만들기가 뭐했는지 후미가 접영을 마치고 자유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 나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두바퀴 째를 돌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더니 후미었던 빨간모자가 나를 돌아도면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분명히 후미가 도착하면 출발하라고 말했어요!"

너무 뜬금 없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벌써 도착했느냐는 말인가 싶어서 쑥쓰럽게 웃으면서 뭐라고 했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따지듯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

"후미가 도착하면 출발하라고 분명히 말했다고요!"

그때서야 강사가 접영메뉴를 시작하기 전, 레인 왕복 후에 선두는 멈췄다가 후미가 도착하면 출발하라고 했던 말을 내가 어겼다고 잔소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짜고짜 따지고 드는 빨간모자가 황당하여 인상을 찌푸렸는데 물안경 밖으로 찌푸린 인상이 어떻게 비춰보였을런지...... 빨간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 때문에 팔이 부딪혀서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표정을 보고있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여러사람이 수영하면서 서로 부딪혀서 때로는 다치기도 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바로 잔날에도 앞자사람의 자유형 발차기에 손을 맞아서 왼손에 멍이 들었고 그날만해도 옆 레인에서 평영하던 사람의 발에, 배영하던 사람의 팔에 여러번 맞았다. 나역시 격고 있는 그런 일들 때문에 고의가 아닌 타인을 탓하는 것을, 그것도 내가 가해자가 아닌 상황에서 원망을 듣고 있자니 짜증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비교적 부드럽게 시작했다.

"네, 그런데 선생님이 출발하라고 해서 출발했어요.

내말은 듣지도 않고 부딪혀서 아프다는 말만 계속 하길래 빨간 모자의 말을 잘라먹고 짜증스런 어조로 말해줬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선생님이 출발하라고 해서 출발했거든요?"

그때서야 빨간모자는 고약한 표정을 풀더니 갑짜기 웃으면서 황당한 말을 하고는 돌아서는 거다.

"내말은 웃자는 거지!"

기가 막혀서 더 할 말도 없었지만 그때부터 다시 후미와 선두가 만나는 상황이 껄끄러워졌다. 다시 왕복해서 돌아왔을 때 여전히 후미에 서있는 빨간모자는 출발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빨간모자 뒤에 도착하자 꼭 내가 들으란 듯 이번엔 강사에게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후미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선두를 출발시켜서 팔을 부딪혔고 그래서 다쳤노라고. 강사가 어쩔줄 몰라 대꾸를 못하고 있으니까 빨간모자는 아까보다 더 황당한 말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그냥, 웃자고! 하하, 아~ 재밌다."

어쨌든 수강생의 불만을 듣게 된 강사는 다음 차례부터는 후미의 도착을 기다리도록 했다.

나이가 이모뻘 되는 사람임에도 그리 짜증이 나더라. 그런데 후미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내가 느끼는 정도라면 배열의 끝부분에 주로 서는 사람들은 나처럼 짜증내진 않더라도 속으로는 빨간모자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을게 뻔하다. 도착하면서 항상 자기들과 부딪히는 행동에서부터 힘들어서 천천히 출발하고 싶은데 항상 후미를 유지하기 위해 먼저 출발하라고 부추기는 걸 자주 당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에 또 마주치면 좀 더 대범하게 짜증을 부려볼지, 아니면 인격수양하는 샘치고 계속 참아볼지 생각중이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