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 over Beethoven2009. 4. 9. 05:29
시즌 1부터 꾸준히 즐겨보던 미국드라마 하우스House의 등장인물 커트너가 며칠전 방송된 시즌5 스무번째 에피소드에서 갑짜기 자살했다. 로렌스 커트너의 케릭터는 낙천적인 성격에 천재는 아니지만 재치가 넘치고 그러면서 엉뚱한 면도 많아서, 냉소적이고 천재적인 Dr. 하우스(휴 로리)와 상충되는 이미지로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왔다. 그런 그가 너무 갑짝스럽게,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을 해버린 거다. 아무런 앞뒤 개연성 없는 사건도 황당했지만, 앞으로 커트너가 없는 하우스를 본다는 것이 섭섭해졌다.

'Dr.하우스'를 연기한 휴 로리, 그리고 로렌스 커트너 역의 칼 펜과 간접관계된 (정말) 조그만 사연 하나가 있는데, 작년에 쿠바를 여행할 때 만나서 1주일 정도를 함께 다녔던 루이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루이스는 Dr.하우스와 반대로 무척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격이긴 했지만 외모는 어딘지 모르게 Dr.하우스를 연상시켰고 그래서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그와함께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그는 트리니닷에서 다시 서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동쪽 끝까지 가겠다면서 관타나모Guantanamo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런 내게 그가 물었다.

"Do you think that is worth heading to Guantanamo?"

사실 그냥 경험해보고 싶다는 이유 말고는 특별한 동기는 없었는데 그에게는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관타나모 가는 길' (The road to Guantanamo) 핑계를 댔더랬다. 꽤 호평을 받은 영화였지만 대중적이진 않았던 이 영화를 역시 그는 모르는 듯 했고, 그대신 그가 '관타나모'를 키워드로 생각해낸 영화 하나를 말해준 게 있는 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 보게 됐다. '설마 내가 이 영화를 동기로 관타나모에 간다고 했을 꺼라고 그가 생각했을까!' 싶을만큼 유치한 영화였는데, 'Harold & Kumar Escape from Guantanamo Bay' 라는 2008년 개봉영화로 루이스가 내게 이야기해준 게 2008년 7월이었으니까 당시엔 최신영화였겠다.

2004년에 '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 을 시작으로 헤롤드와 쿠마 시리즈 2편 격인 이영화는 관타나모, 마리화나, 부시 대통령 등, 미국이 갖은 말하자면 어떤 모순점 같은 소재들을 역어 만든 풍자 코미디물인데, 정말 지저분하고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여자들의 헤어누드가 한 두명이 아닌 단체로 나오고, 남자 성기도 클로즈업 되어 나온다. 그렇다고 그 장면이 딱히 성적으로 묘사된 분위기는 아니어서 참 코메디 스럽긴 했다. 아직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코메디가 아니다보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거지 미국에서는 익숙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끝가지 봐야했던 이유가 루이스 생각이 나서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저질스런 역할은 전부 도맡아하는 쿠마 파텔 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바로 드라마 하우스의 커트너로 나와서 익숙해진 칼 펜이었기 때문이다. '커트너'와 '쿠마' 사이의 케릭터 갭이란 것은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나라 TV 드라마 배우가 포르노 영화에도 나온다고 상상하면 그 놀라움이 쉽게 전달될 것 같다.

왼쪽부터,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헤롤드 역), 칼 펜(쿠마 역), 그리고 결코 낯설지 않은 깜짝출연자, 천재소년 두기!!


정리하자면 루이스 > 하우스 > 관타나모 > 쿠마 > 커트너 > 하우스 로 연결지어진 여담이었는데, 그러니 이제 다시 하우스 이야기로 돌아가도 되겠네.

오늘 퇴근하면서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주파수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우연히 듣게 된 영어 방송이 있다. 저녁 7시 좀 넘은 시간이었는 데 두 명의 미국인이(아마 미국인 맞을 꺼다) 로켓 발사 같은 최근에 이슈되는 뉴스들을 다루는 AFKN 비슷한 방송의 한 프로그램이었다. 듣다보니 그들이 커트너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내막에는 배우 칼 펜이 오바마 선거운동에서 젊은 유권자들을 모으는 주요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결국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어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는 거다. 영화 속에서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대마초를 피울만큼 마리화나 메니아에다가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행동도 하는 사람이지만, 실제의 칼 펜은 전혀 다른 사회 모범적인 인간이란다. 영화속 이미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내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얻은 그를 오바마는 선거 운동에 요긴하게 이용했던 모양이다. 일단 유색인종에 종교적 다양성까지 포용할 수 있고, 또 영화 속의 반사회적인(?) 이미지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돌려 생각하면서 반대급부를 노린 전략일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결국 그는 Dr.House 를 떠나 White House 로 가버렸다. 우리나라같으면 저런 발탁이 이뤄질 수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아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애로 배우를 TV에 캐스팅하는 것만큼 벌어지지 않을 일이지 싶다. (그러고보니 아주 없진 않구나.)

스러져있는 저 몸은 칼 펜의 것이 아니겠죠.


그런 사정으로 에피소드#20에서는 커트너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쓰러친 장면으로 딱 한 장면 출연했는데, 그것도 얼굴은 나오지 않고 팔꿈치 이하 몸밖에 안 보인 걸로 봐서 커트너는 20편에 출연하지 않은 거다. 20편에 출연해서 자기 역할을 정리하지도 못했으니, 자살 스토리가 얼마나 빨리 급조된 건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래도 드라마 하우스는 참 센스 있는 것이, 아직 시청자들이 커트너의 죽음을 모르는 시작부분 부터 마지막 장례식 장면까지 어두운 조명으로 일관해서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라. 게다가 장례식을 인도식이라거나 이슬람식이라고 하기도 뭐하게 약간 오묘하게 연출해냈는데, 출연자들이 단체로 모여서서 그를 애도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히 커트너를 애도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로 비춰보이기도 한다.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