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SPACE 2009년 6월 10일
퓨처스 앙상블 2009 배선용(t), 신명섭(ts), 윤석철(p), 정상이(b), 한웅원(d), 허소영(v)
‘퓨처스 앙상블(Future's Ensemble) 2009’의 무대가 마련된 공연 당일 EBS 방송국 앞의 매봉역 지하철 역사에는 거리 연주자들의 색소폰 연주가 벌어지고 있었다. 연주할 수 있는 무대로 행인 앞인들 마다하지 않는 즐거운 아마추어들이었지만, 그들 앞에 멈춰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 EBS의 <다큐프라임>은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다뤘다. 사람들의 착각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연주자의 학력이나 경력에 따라서 연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쉽게 예상되는 결과를 낸 그 실험은 국내 콩쿨 우승경력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통해 이뤄졌는데, 자연스럽게 한국의 재즈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한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재즈 연주자들 중 유학 경험이 없는 연주자가 얼마나 있던가. 그러나 그들의 프로필에 흔하게 등장하는 유학 경험이나 유명 연주자와의 협연 경험들이 한국의 재즈 팬들에게 어떤 작용을 기대한 결과물이라면 상당한 오해일 듯하다. 그들의 학력과 경력은 대중들에게 잘 모르는 연주자의 음반을 고를 때 비교적 친숙한 연주인과 협연한 음반부터 접해보는 정도의 참고적 의미 이상은 아닐 거라고 본다. 한국 재즈에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한다면 그건 평가절하의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을 테고, 다행히(?) 학력이나 경력으로 포장된 채 그들이 세계적인 연주자라는 대중의 착각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재즈 연주자들에게 유학경력이 흔하고 그것도 조기유학이 아닌 늑장유학인 경우가 많다는 건 단순히 한국에서 재즈를 배울 수 있는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리라는 생각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날 만난 여섯 연주자들에 대한 생뚱맞은 반가움은 거기서 비롯됐다.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유학 경력 없는) 이력의 20대 젊은 연주자들이 그렇게나 재즈를 훌륭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연주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거다. 기실 이런 젊은 연주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데 단지 필자의 경험이 미치지 못한 탓이라면 더 반가운 일이다. 솔직히 이날의 공연에 앞서 ‘실용음악’이란 이름으로 재즈를 포괄하고 있는 학과나 학원에서 공부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퓨처스 앙상블에 대한 의아함은 그들의 연주가 실용음악이 아닌 재즈였기 때문이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섹스텟 편성의 ‘Rising Starts’를 들을 때부터 그랬는데, 이 곡은 그날 연주된 곡들이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란 걸 눈치 채게 했다. 그러한 시작부터 나머지 공연 내내 스윙과 비밥을 기반으로 한 20대의 연주자들은 내게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재즈를 담고 있는 것처럼 얘기되는 ‘실용음악’이 사실 얼마나 재즈와 거리가 먼 표현이었던가.
여섯 명의 출연자가 서로를 소개해가며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윤석철이었다. 세 번째로 연주된 윤석철 작곡의 ‘Low Passion’에서 무거운 톤으로 철골 같이 심어지는 반복적인 리듬연주와 몰아치는 솔로는 남은 공연 내내 그를 주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찌나 인상 깊었던지 뒤이어진 허소영의 ‘Moody's Mood For Love’의 인트로까지 전 곡에서의 에너지가 이어지는 듯 했고 후반부의 ‘거울’이나 ‘Hope’까지 그의 거침없는 솔로는 계속 됐다. 전체 곡 분위기를 미리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던 ‘Moody's Mood For Love'의 피아노 인트로는 허소영이 곧바로 노래로 이어받기 아쉽게 만들었던가 보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기 전 그런 윤석철에게 박수를 보내는 여유를 보여준 허소영의 노래 또한 정말 대단했다. 제임스 무디(James Moody)의 솔로에 가사를 붙여 부른 그 곡은 그녀의 첫 앨범의 컨셉트를 대변하면서 블루지한 목소리와 함께 범상치 않은 신인임을 직감케 했다.
연주된 곡들은 대체로 직관적으로 이해되어 그 자리에서 즐길 수 있었던 곡들이었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아름답게 발전시켜나가는 신명섭의 ‘Hope’ 같은 곡은 특히 더 그랬다. 반면 배선용의 ‘거울’은 라이브라는 일회성이 아리송함을 남기는 곱씹어 보고픈 곡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곡에서 피아노에게 멋진 공간을 남겨주면서 스스로는 전면에서 내지르지 않는 모습이 의외였다. 다른 곡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절제된 건지 혹은 소극적인 모습인지 모를 일이지만 확실히 앞으로 더 기대해 볼 연주자였다. 공연 다음날 낯선 곡 하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곡은 한웅원의 ‘Strawberry Princess’였다. 정작 공연장에서는 좋은 리듬감 말고 특별한 감상 포인트를 잡지 못했었지만 역시 탄탄한 기본은 튀지 않고도 오랜 인상을 남긴다. 정상이는 자신의 곡 ‘May Dance’에서 주제를 담은 인트로 뿐 아니라 전곡에 걸쳐 범상치 않은 베이스 라인을 들려줬다.
퓨처스 앙상블과 같은 젊은 신인 연주자들은 어떤 해답과도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근래 들어 느끼고 있는 한국 재즈 연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즐거움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의문이 들 무렵에 이들의 무대를 통해 적절한 답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필자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닐 거다. 과거 국내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유학을 떠나 재즈를 배웠던 세대들과는 달리 지금은 국내에서도 재즈를 공부할 기반이 전보다 더 많이 갖춰져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게 한다. 더불어 어릴 때부터 재즈를 진지하게 듣고 연주하길 즐기던 스윙키즈들이 전보다 나아진 기반 위에서 재즈를 수련하며 앞으로도 재즈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자라나주고 있지 않을까. 이건 분명 즐겁고 설레는 기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