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09. 12. 24. 13:41
중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당시의 저는 꽤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죠. 지금처럼 논리나 근거를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도 서툴렀고 단지 삐뚤어진 시각으로 그때그때 반응하곤 했습니다. 그런 제가 하루는 담임 선생님께 보충수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죠. 매월 학생들한테서 수업료를 추가로 걷어서 이뤄지는 보충수업인데 체육대회 같은 일에 시간표가 겹치거나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보충수업이 이뤄지지 않는 날들에 대한 질문 같은 거였습니다. 아니, 사실은 질문 정도가 아니라 '부정부패', '비리' 같은 말들을 그 뜻도 모르면서 섞어썼던 것 같네요.

제게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히기도 했던 일은 제 담임선생님도 학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그 문제에 공감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그자리에서 채벌을 받고 말았을테죠. 그래서 그때는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시는 선생님이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죠. 왜냐면 선생님께선 교무회의 때 그 문제를 목소리 높혀 이야기하셨나봅니다. 그러면서 학생 하나한테서 그런 지적을 받는 일까지 생겨서야 되겠냐는 논조의 이야길 하셨던가 봅니다. 그리고 저는 교감 선생님께 불려가게 되고 나중에는 교장실에 혼자서 불려가게 되어서 결국 다행이라 여겼던 일이 커져버리는 바람에 그렇지 않은 일이 되버린 거죠.

교감선생님을 찾아가던 날 교감선생님의 교무탁자까지 가는 길을 꽤 멀었습니다. 마치 오락게임에서 끝왕을 쳐부수기 위해 그 앞에서 상대해야 하는 악의무리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죠. 일단 담임선생님 책상 앞에서 어떤 문제로 오게 됐다는 말씀을 들어야 했고, 교감선생님을 향해 걸어가던 중 술취한 기술선생님께(한낮에 술에 취해계신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붙잡혀서 따귀를 맞았습니다. 교무실에 들어서기 전까진 교무실로 불려온 영문도 모르던 제겐 참 당황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감선생님 앞까지 간 저를 물끄러미 보시던 교감선생님은 별 말씀 안하시고 저를 데리고 교장실로 가시더군요.

교장실 쇼파에 교장선생님과 단 둘이 마주보고 앉게 됐습니다. 보충수업료에 관한 문제로 선생님께 문제삼은 학생이 있다더니 어떤 학생인지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그냥 보고 싶었을 뿐이시라는데, 저는 제 의지도 아닌 그 분을 뵙는 일로 따귀까지 맞게 된 거죠. 사실 그때 저는 그냥 삐뚤어져있다가 선생님께 대들 꺼리로 보충수업 이야길 했을 뿐 뭔가 논리를 가지고 더 이야기할만한 꺼리를 갖고 있지도 않은 채로 일이 커진 것에 곤란해졌습니다. 저를 대변하겠답시고 겨우 만들어서 한다는 말이, 점심시간에 도시락 못 싸고오 라면 사먹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 학생들로부터 보충수업료를 똑같이 거둬들이고서 보충수업을 안하는 날들이 가끔 있는 것 같아서 궁금했다는 거였죠.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 제게 이렇게 여쭤보시더군요.

"보충수업이 국영수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체육선생님이나 그밖에 다른 과목 선생님들께는 수업료가 얼마 돌아가지 않는데, 만약 그렇게 남은 보충수업료를 체육대회 치르시느라 고생하신 체육선생님께 수고하셨다는 징표로 드렸다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할 말이 별로 없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대답하기 무척 어려워지더군요. 그런데 순간 그게 유도질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는 보충수업료가 새나가고 있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 제가 "아, 그렇게 좋게 사용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라고 바꿔말할 수는 없습니다. 혹은 그 반대로 보충수업을 하지도 않은 체육선생님께 수업료를 드린 것도 잘못됐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선생님의 수고를 모르는 나쁜 학생이 될 수도 있겠죠.

결국 엉겁결에 대답을 했더니 교장선생님께선 "알았다. 나가보거라." 하시더군요. 얼빠진 채 교장실을 나왔더니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여쭤보시더군요. 순진하게도 전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안스럽게 보시고 위로하러 와 계신다고 당시엔 생각했었지만, 어쩌면 혹시 당신께서 저를 소재삼아 교무회의 때 문제를 제기하셨듯, 저도 교장선생님께 담임 선생님 핑계를 댔을까 싶어서 오셨던 건지도 모릅니다. 중2 보다 그때의 선생님 나이에 가까워지다보니 옛날 일들이 그때와 다르게 다시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교장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니?"

"저는 보충수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고, 있다고 해도 그런 아이들을 대표해서 여기 와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 생각만 가지고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저를 보시더니 씨익 웃으시곤 저를 대리고 교실로 가셨습니다. 교실이 그렇게 편하고 안심이 되는 공간인 줄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 자리로 돌아와서 제가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잘 기억이 안나네요. 그게 제가 처한 작은 사회 속 현실에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말이죠.


Posted by L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