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2010. 9. 25. 12:21
유혹과 핑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봤어. 넌 이미 나와 함께 달리면서 앞으로 할 이야기를 내게 들었었단다. 그때 너의 반응은 좀 신경질적이었는데, 어쩌면 그토록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자꾸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짜증났을 수도 있었을 꺼야.  아니면 그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해봤으면 좋겠구나.

우린 그때 1km 를 6.5분 페이스로 뛰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7분을 살짝 넘기는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지. 그래서 결국 10km 를 1시간10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고. 그런데 코스 후반부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르막길을 만나면 걷고 내리막이 시작되면 다시 달리기 시작하곤 했던 걸 너도 봤지? 그 날의 코스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그렇게나 많을 거라고 내가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꽤 많은 날들을 달리면서 보냈기 때문에 후미 그룹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게 될 거라는 걸 예상하고는 있었어. 사실 그때문에 너에게 천천히 뛰더라도 절대 걷지 말자고 다짐을 받아뒀던 거란다. 주변에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커다란 유혹과 핑계로 작용하게 될테니까. 더구나 내 옆에서 열씸히 달려줬으면 하는 친구의 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거든.

10km 를 1시간 안에 들어오는 그룹에서는 그런 모습을 별로 볼 수가 없어. 그렇게 쉬어가다가는 그 시간 안에 들어올 수가 없거든. 바꿔 말하면 성의껏 준비한 노력보다는 의욕이 더 컸던 사람들 중에서 체력이 그 의욕을 받쳐주지 못하게 되는, 너무 당연히 찾아오게 될 그 시점부터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내리막에 스스로를 의지하게 되는 거야. 너와 함께 달리다가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들을 가리키며 너에게 내가 그렇게 말했었잖아.

"얼마나 삶에 대한 약은 태도니."

넌 짜증을 냈었지. 푸훗.

그렇게 약은 사람들은 출발선에서도 수백의 사람들을 비집고 되도록 앞에 서려고 한단다. 일일히 맞춰보지 않고서도 그렇다고 판단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내가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을 때, 나역시 선두그룹에 들어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중반 이후부터는 엄청 많은 사람들을 앞질러가게 되거든. 그렇다는 건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페이스란 것 자체를 모를 만큼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나보다 앞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거지. 더 힘차게 뛰어서 앞지를 생각을 하기보다는 시작부터 남들보다 앞에 서서 뛰려고 하는, 이또한 나에게는 자신에게 겸손하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보이기도 해.

사실 단지 하루 기분 좋게 땀을 내고 싶었을 뿐인 그들은 자기가 그렇게 앞섰던 의욕만큼 많은 추월을 당하게 되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을 꺼야. 또 그렇다한들 그게 비난 받을 일도 아니지. 더구나 그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혹시 너도 내 말을 들으면서 너를 거기 포함시켜넣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던 건 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약간 더 진지할 뿐인데, 그런 내게 그들이 어떻다고 평가할 자격은 없는 게 맞아. 그런데 내게 아무런 득이 될 것도 없는 손가락질을 하겠다는 건 아니란다. 그런 사람들과 섞여서 달리는 내가, 그리고 또 네가 가장 크게 얻었으면 하는 한가지가 있을 뿐이야.

내리막길에서 뛰고, 오르막에서 걷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보게 됐는지 생각나니? 오르막에서 우리가 그들을 앞질렀었는데 내리막에서는 도로 역전당하길 반복했었고, 그래서 낯익은 차림의 사람들이 주변에 계속 보였던 거고 아마도 결국 우리의 골인 기록도 그들보다 나을 게 없었을 꺼야. 우리가 그들을 앞지를 수 있었던 건 오르막에서도 달렸기 때문이고, 그들이 우릴 다시 앞지르게 된 건 내리막에서도 우리가 페이스를 유지했기 때문이란다. 어찌보면 달리다가 걷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분수에 맞는 페이스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야.  

앞에서 내가 그들의 겸손하지 못함과 약았음을 이야길 해놓고도, 결국엔 그들과 추월에 추월을 반복하면서 비슷한 기록의 결과를 냈다면 당연히 이렇게 의문을 갖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 '우리의 마라톤은 달리나 마나한 일이었던 걸까?' 그렇게 걷고 싶고 쉬고 싶은 유혹을 참아냈고, 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쉬어가고 있다는 핑계를 물리치면서 달렸는데도, 그렇게 순간, 순간들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그게 약음보다 나을 게 없다라면, 우리가 했던 마라톤과 네가 나와 했던 약속은 큰 의미는 없는 일이 되는 걸까?

사실 내 대답은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하나 마나 한 거였다는 것에 가까워. 남들보다 더 진지했던 시간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과는 같다는 것이 나에겐 약오르는 일이거든. 그런데 그런 결과에 대한 차이는 다시 또 그 진지함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아주 간단해. 네가 평소에 꾸준히 달렸더라면 추월했던 사람들에게 내리막에서 도로 추월당하는 일은 없었을 꺼야. 남을 이기기 위한 연습은 혹독할지 몰라도, 나의 진지함에 대해 공허해지지 않을 만큼의 훈련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결국 다시 말하건데, 인생도 마라톤도 출발선에 서서 시작되는 이벤트가 아닌 거야. 이미 우린 달리고 있다는 걸 너도 알잖아. 남을 이겨내기 위해 긴장을 유지하고 혹은 독기를 품고서 뛰는 일들은 난 정말 싫어. 하지만 내가 즐기는 것들을 대할 때, 말하자면 일할 때도, 달릴 때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친구인 너를 대할 때도 내리막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보다 오르막에서도 멈추지 않겠다는 진지함과 꾸준함, 그게 바로 너와의 마라톤에서 내가 귀하게 얻어낸 마음이었단다.


Posted by Lyle